어떤 말을 해줘야 아들이 무사히 어둠을 지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까. 말해 줄 수 있는 건 그저 뻔한 진부한 이야기들이었다. 더 해줄 그럴듯한 말도 있었겠지만, 딱 애미의 그릇만큼 이었다.
얘기해 줘서 고마워
"혼자서 해결하지 못할것 같은 아픔을 엄마에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엄마한테 말을 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거야. 잘했어." 언젠가 내가 아들의 인생에서 퇴장해야 할 때가 오겠지만, 아들이 원하는 한, 아들에게 벅찬 힘든 일이 있을 땐 꼭 옆에서 들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길 바란다. 상처를 보이는 것이 약점 잡히는 일이라고 절대 나의 아픔을 친구에게도 발설해선 안된다는 자기 계발서의 말들이 난무하지만, 힘이 들 때 고민을 털어놓는 것도 용기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해결해 보려는 의지의 시작일 수 있으니, 꼭 누군가에게 말해 보길. 엄마가 좀 더 욕심 내보자면, 옆에 그런 사람 한명쯤은 꼭 두고 살길.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야
"아들, 처음에 엄마에게 말하고 몇 달이 지났는데, 뭔가 해결된 게 있니?"
"뭐,, 그럭저럭..."
"그 아이들과의 관계가 좋아지거나, 획기적으로 달라진 게 있는 것 같아?"
"아.. 니."
"맞아, 크게 달라진 게 없었어. 사실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어. 특히 친구관계는 오롯이 아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야. 엄마가 한 일은 선생님께 상황을 언급하고, 네가 할 수 없는 증거 수집이나 사례들을 기록하는 것 따위였어. 그저 너의 무기를 만들어 준 것뿐이야. 결국에 앞에서 나가 싸워야 하고 해결해야 하는 사람은 너뿐이야. 이 말 이해 하지?"
아들은 그 아이들과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내게 말해주었고, 관계에서 스스로 거리를 두고, 그 아이들과 딱히 관계없는 친구들과 친구를 맺으면서 해로운 관계에서 빠져나오는 중이었다. 아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상황과 싸우고 있었다. 역공술까지 펼치면서 고군분투 한 아들을 응원한다. 어려움을 잘 이겨내서 효능감을 얻게 되길 바란다.
건강하지 않은 관계는 바로 빠져나오는 게 상책, 도망친다고 생각하지 마.
관계에서 누군가 일방적으로 상처를 받는 관계는 건강한 관계가 아니야. 너의 경우도 그 아이들은 때론 너와 놀아주지만, 일방적으로 상처는 너만 받았잖아. 그저 저 애가 기분 나쁘다 정도가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상처를 받잖아. 그런 관계는 빠져나와야 해. 이거 비겁하거나 도망치는 거 아니야. 과일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것과 같아. 가끔은 도려내도 보이지 않는 균이 전체에 퍼져버려서 먹으면 안 되는 것들도 있거든? 그럴 땐 어떻게 하지? 그냥 버리지? 관계도 그런 거야. 그냥 버리는 거야. 썩은 거 버리는 게 도망치는 것은 아니잖아. 그리고 상대가 반성을 하고 너에게 친절히 다가오면 그때 받아주면 돼.
혹시 엄마가 너를 혼낼 때 흥분해서 정도에 지나친 말을 하면, 반항해. (사실 엄마가 다그치게 되는 경우가 아주 빈번히 발생하는데, 아들이 그것에 대해 반항을 하면 화가 나다가도 다행이다 싶다. 얘가 네네 하며 의기소침해하는 줄만 알았는데, 대들 줄도 아는구나 하고) 그렇게 얘기하는 건 상처라고. 그럼 엄마가 안 할게. 안 하도록 주의할게. 그럼 엄마는 줄이려고 하겠지? 왜냐하면 너한테 상처가 된다는 걸 아니까. 그게 건강한 관계야. 문제가 생기고 혹시 상처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바로 끊어버리는 게 아니라,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해 가는 거. 그게 안된다고 판단하면 엄마고 뭐고 그냥 버려.
누구도 '감히' 함부로 널 아프게 할 수 없어
이 말은 어떤 매체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오은영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감히' 마치 조선시대 왕에게 감히 무례를 저질러 납작 엎드린 신하가 연상되는 단어다. 이런 이유로 남편은 이 단어에 반감을 느꼈다.
내 딴에 의미를 풀어보면 이렇다.
"아들, 감히 누구도 널 아프게 할 수 없어. 그러니 감히 너도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면 안 돼." 말의 방점은 뒷 문장에 있다. 네가 소중한 것처럼 남도 귀하고 소중한 존재이니, 감히 상대를 함부로 대하거나 상처를 주면 안 된다는 말을 아들에게 종종 했었다.
도대체가 감히 타인을 재단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누구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신발을 바꾸어 신어보기 따위의 말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감히'를 명심한다면 타인에게 덜 상처 주는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들이 말을 이해했는지 의아해서 아주 쉽게 세속적인 예시까지 들었다.
" 아들 엄청 비싼 차가 뭐가 있지?"
" 페라리?"
" 그래. 페라리. 주차장에 있는 그 민트색 페라리 생각해 봐. 너 그 차 함부로 발로 차거나 스크래치 나게 할 수 있어?"
" 미쳤어! 그 차가 얼마나 비싼데! 수리비가 얼마인데! 그리고 cctv에 다나와."
" 그래 그런 거야. 너 페라리야. 다른 아이들도 그 집의 페라리고." (이해가 됐을 라나... 물론 그 차주의 속상한 마음을 먼저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지만,,,)
엄마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
중학교 때 2학년쯤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모른 체 했다. 당시 각자 학원에 다니느라따로 많은 시간을 보내진 않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준 인연의 끈이 친구라는 이름으로 엮여 있었다. 그런 그 애가 갑자기 모른 체를 하는 것도 모자라 내 뒤에 앉아서 함께 있는 친구들과 노골적으로 내 귀에들리도록 나를 흉보기 시작한다. 당황해서 정확히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 들리지도 않았다. 마음이 아팠다. 나를 잘 아는 저 아이가 이제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내 욕을 하고 다니겠지... 차츰 나는 위축됐고, 그 친구와의 인연은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친구를 잃은 내 마음의 빈틈은 책을 읽는 것으로 채워 갔다. 과외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전태일 평전>을 읽고 잠시 분개하며 울고, <제인에어>, <폭풍의 언덕>, <백 년 동안의 고독>, <셰익스피어 희곡집>... 도대체 희곡집은 왜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닥치는 대로 읽을 수 있는 한 읽었다. 양질의 독서는 분명 성적을 올린다. 덕분에 학교 성적도 올랐다. 그러다 새로운 친구 무리에 흡수 됐다. 새로운 무리는 무해했다. 전교 부회장도 있고 공부도 잘하고 밝은 아이들이었다. 우리가 뒷산에서 놀다가 수업에 10분을 늦게 들어와도 선생님들은 혼내지 않으셨다. 그저 웃음으로 넘겨주실 만큼 우리의 실수를 여중생들의 풋풋함으로 받아들여 주셨다. 어쩌다 나는 모범생으로 둔갑했다. 전엔 눈에도 띄지 않던 내가.
아들에게 내 이야기를 해줬다. 나도 너무 슬펐다고, 그런데 침잠의 시간을 갖고 책을 읽으면서 많이 위로가 됐고, 새로운 관계도 생겼다고.
"아들, 나는 있지, 당시에 엄마를 따돌리면서 욕했던 그 친구가 너~무 고마워. 그 친구가 날 버리지 않았다면 엄마는 책을 읽지도, 새로운 건전한 관계를 맺지도 못했을 거야.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그 친구의 배신이었어."
마치 너도 이렇게 이겨내야만 한다고 강요한건 아닌지, 미안한 지점이다.
너의 아픔이 스토리가 되길
아들, 너 심장병 있다는 거 알았을 때 엄마아빠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그런데 우리 아들 수술하고 병 간호 하면서 아빠랑 엄마 사이가 더 돈독해지고 전우애 같은 게 생기더라. 우리 사이에 아들의 심장병이라는 서사가 생기니까 우리는 서로가 측은해졌어. 엄마 아빠사이를 단단하게 묶어주고 웬만한 난관 정도는 그때 생각하면 헤처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아들 덕분이야(물론 우리의 주된 싸움의 원인도 너다). 우리 가족의 스토리가 생긴 거지. 우리 아들도 힘든 일을 겪으면 그렇게 생각해 보자. 이건 내 삶의 스토리를 쓰는 거라고. 작가는 너야.
세속적인 현실 엄마의 말들
너무 비속해서 부끄럽지만 주체할 수 없는 비난의 말들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 A 나 B나 걔네 무리 중에 너보다 공부 잘하고 영리한 놈 없어. 결국 어른이 되면 어렸을 때 공부 잘했고 자기 일 잘하는 사람이 승자야. 게네 별거 없어. 겁내지 마. 지금은 어려서 애들이 사리분별 못하는 거야. 너는 너 하던 대로 공부 열심히 하면 돼." (도대체 공부가 친구 관계랑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공부 잘하라는 엄마의 흑심이 가득 담긴 말일뿐만 아니라 사람을 공부로 서열화하기까지 한다.)
" 아들 주짓수 배울래? 한번 배워봐. 배워서 다음에 게네들이 또 그러면 주짓수 배운 걸로 콱! 조져버려! 찍 소리도 못하게."
" 엄마 그건 폭력이잖아..."
" 폭력이면 어때. 지들이 한 것도 폭력인데. 네가 게네한테 폭력 쓴 건 혼내지 않을게. 한번 배워보자~."
부족한 어른인 나의 인간관계도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하는 미숙한 엄마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들이란 게 비루하고 식상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나조차 형언 할 수 없는 마음은 책으로 대신 전했다.
<아몬드>, <체리새우>, <비스킷>
오랜 시간 청소년 분야 베스트셀러인 이 소설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소외와 정체성 그리고 성장이다. 복잡하고 주체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이 엉켜버리는 시기인 청소년기. 많은 친구들이 관계 때문에 상처받고 또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갈구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컬렉션인 듯하다.
부디, 이 책들이 엄마가 못다 한 말과 못 닿은 마음을 대신 전해줬길 바란다.
"아들, 내가 아몬드에서 인상적이었던 게 뭔지 알아? 외톨이가 된 주인공에게 생각지 못한 사람들이 불쑥불쑥 나타나잖아. 엄마는 심박사가 인상적이었어. 소설에서 비중이 크진 않았지만 유난하지 않게 주인공 윤재의 편에 서 주고, 도와주고, 이야기를 무심코 들어주는 사람. 살다 보면 심박사처럼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너의 인생을 좋게 바꿔 놓고 가기도 해. 너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고. 결국은 심심한 듯 주변에 있는 이런 사람들 덕분에 성장하기도 하는 것 같거든? 네가 친구들한테 상처받았지만, 다른 사람까지 못 미더운 눈으로 보진 않았으면 좋겠어." 나 자신에게 한 건지 아들에게 한 건지, 청자를 특정할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리고 아들이 어쨌거나무조건 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라본다. 별 탈 없이 지내면 좋지만, 또 별 탈이 있을 것이고, 부디 잘 부딪혀 보시길. 너의 배후세력은 엄마랑 아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