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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공팔 Aug 23. 2024

스타벅스의 그녀

21세기 '안나 도로테아 테르부슈'  


도 교복은 원피스다.  

여성성 어필은 뒷전이고, 나는 원피스의 도움을 받아  필사적으로 실체를 감춰야 한다. 

어느 여름 현백을 구경하다 플리츠플리  매장에서 원피스가 눈에 꽂혀 나도 모르게 팅을 하고 있다.  사한 파스텔 라임. 입는 순간 매장 직원분도 '고객님 옷이라며, 나는 이 옷이 이렇게 예쁜 옷인 줄  몰랐다'는 뻔뻔한 칭찬에 기꺼이 호객님이 돼주기로 한다. 내가 봐도 좀 어울리네 싶었다. 원래 입고 있던 베이지 원피스도 나쁘진 않았지만 파스텔 톤의 원피스를 걸치는 순간 피부도 화이트닝 한 듯 화사해진다. 말도 안 되는 옷 값은 나만 알기로 한다.


아줌마 잇템, 장바구니

또 어느 날엔 나는 무슨 생각을 한 건지, 혼자서 딸내미 친구들을 우르르 데리고 홍대 놀러 갔다. 보는 것 만으로 기분 좋게 하는 예쁜 소품을 모아놓은 Butter라는 잡화점에 들어갔는데,  온갖 굿즈에 아이들 눈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쇼핑은 여자의 본능인가' 싶어  웃기기도 하고, 이 아줌마도 뭔가 사고 싶어졌다.  펜시한 이곳에서 하필이면 골라도 아줌마 잇템 장바구를 고르게 된다.  주황색 바탕에 고깔모자를 쓴 젤리곰 세 마리가 나란히 서 있고 'syrup butter me up' 라는 달콤 문구가 새겨져 있다.

사이즈가 크지도 작지도 않아서 책도 들어가고 오다가다 간단히 장 본 것을 욱여넣어도 될 만큼 수납력도 좋아 애착가방이 됐다. 몇 개 더 사놓을걸...


그날의 OOTD(편하지만 초라해 보이지 않는 룩...)

토요일 오전, 딸내미 수학 학원 수업이 1시간 30분간 진행된다. 집에 가기도 애매한 시간이 주로 근처 로 가 책을 읽거나 글을 끄적인다. 그날의 OOTD는 현백에서 산  라임색 원피스와 butter에서 겟한 오렌지 장바구니를 매치해 화사함과 편안한 감성을 믹스했다. 좋지. 그냥 온 동네 아줌마시그니쳐 같은 휘뚜루마뚜루 패션다. 원피스랑 장바구니. 여기에 값나가는 헬렌카민스키 썬캡까지 매치한다면 편하지만 초라해 보이지 않는 룩 완성이다. 동네 뒷산에 색만 다른 알록달록 노스페이스 등산복을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중년 무리의 등산객들과 다르지 않다.

 

도플갱어를 본 걸까?

그날은 스타벅스로 갔다. 항상 마시던 까페라떼를 시키고 구석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리를 잡자마자 60대 후반 70대가 가까운 중년 여자분이 점점 다가온다. 그녀 역시 린 계열의 플리츠 원피스에 장바구니를 들고 있다. 나랑 패션이 똑닮.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마주쳤을 때처럼 겸연쩍다. 뭔가 나와 분위기가 비슷한 것도 같다.  불길하다. 그녀는 하필 내 옆에 샌드위치와 물 한잔이 올려진 쟁반을 놓고 자리를 잡는다.

'에잇, 좀 창피한데. 옷이 비슷한데, 원피스 색은 왜 하필 그린이여~, 하필이면 왜 또 옆이여~"

그녀는 자리를 정돈하고 책 한 권과 타이머를 꺼내든다. 책은 세계사 관련 서적. 가만히 주의 깊게 글자를 들어다 본다. 

도플갱어. 이 사람과 마주치는 일은 악운의 전조로 알려져 있다. 흔히 서로 닮은 사람을 마주할 때도 도플갱어라고, 둘 중 누가 죽는 거냐고 우스갯소리들을 하곤 한다.

따져보자면 도플갱어는 아니었만, 세대차이 말고는 우리의 패션과 행위, 형언하기 힘든 분위기 같은 것이 좀ㆍ 흡사했다.

그녀의 등장 이후, 나의 눈은 보던 글을 따르고 있지만 내 의식은 옆 테이블에 빨려든다. 그리고 20년 후 나를 보는 것 같은  기시감 사로잡힌다. '별일 없이 세월이 흐르면 나는 저 나이 때 저렇게 될라나?' 


스벅의 그녀는 내게 어떤이를 상기게 했다

그녀의 그린 원피스와 장바구니는 그저 내 눈길을 끈 하나의 장치일 뿐이었다. 그녀는 내게 없는 것이 있었다. 그녀는 나와 비교해 좀 더 우아하고 간결하고 단정하고 안정적이었다. 평온하게 아래를 향해 있었고, 글을 읽을 땐 책장 넘기는 것 빼곤 군더더기 행동이 없었다. 줄을 치지도 않는다. 완벽 단련된 독자의 내공이 보인다. 그녀는 내가 바라던 20년 후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아하지만 각 잡히지 않은 여유 있는 느슨함, 고루하지 않게 깨어있는 책 읽는 할머니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어려운 매력을 뿜고 있었다.

그런데 비슷한 사람을 어디에서 봤더라..?

한참을 엉클어진 머릿속을 헤집어 끌어낸  또 다른 그녀.   


안나 도로테아 테르부슈(Anna Dorothea Therbusch). 


외안경을 쓴 자화상. 1777. 안나 도로테아 테르부슈(Anna Dorothea Therbusch


테르부슈 그녀는 화가였다. 그녀가 살던 18세기 전근대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여성 화가에게 내어 줄 자리는 없었다. 결혼과 동시에 생업 때문에 붓을 놓고 18년이 지나서야 화가로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녀는 성실하고 진지한 태도로 꾸준히 자신의 역량을 펼치며 예술활동을 했고, 당대 신여성이자 선구적인 여성화가로 평가받게 된다.

그녀의 마지막 작품인 자화상을 통해 생애주기 후반부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파뿌리가 된 머리카락과 텐션 없는 피부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특별할 것 없는 색 바랜 드레스, 머리에 쓴 베일 아래로 내려뜨린 외안경, 안경 쪽에서  정확하게 앞을 응시하는 안정된 눈빛, 발받침에 툭 한쪽 다리를 걸친 편안하면서도 저돌적인 포즈, 한쪽 손에는 무심코 들고 있는 책.  독서를 하다가 잠시 고개를 든 듯한 편안한 모습이다. 모든 것이 어우러져 우아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녀는 훅 하고 내게 들어왔다. 사료들은 그녀가 독서광이자 대단히 지적인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자신을 안경 쓴 이미지로 남겨뒀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안경은 아름다운 외모를 방해하는 용품이다. 특히 당시 여자에겐 욱 꺼려진다. 

18세기 계몽주의가 도래하면서 독서가 취미고 새로운 지식에 열광하는 여성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 시기 독서하는 여인의 그림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슷한 시기 성작가인 인 오스틴이나 샬롯 브론테, 버지니아 울프도 소설을 썼고 이 시대까지 전승되는 고전을 남겼다(살롯 브론테는 남자 이름을 필명으로 출판했지만). 세상이 바뀐 것 같지만 그녀는 젊음·미모·수줍음·애교가 부족하단 이유로 비난받았다.  여전히 귀족 여자들에게 코르셋 필수였고 물론 참정권 없었다. 당시 여성에게 독서는 감각적 사치와 세련된 취향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안경은 이질적인 것이었다고.  

과연 그림 테르부슈드레스 안 코르셋을 입었을까?

당시 사회의 부조리는 차치하고 게 편리한 것만 취하자면, 그녀는 보편적이었던 한껏 치장한 노부인의 아름다운 이미지 따위에 반기를 들고, '바로 볼 줄 알고, 읽고 깨달을 수 있으며, 저돌적으로 행할 수 있는, 주름마저  당한 성인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남기고 싶었던 것이리라.

자화상을 처음 만난 그 시절의 나는 그녀에게 뿜어져 나오는 조용한 당당함을 나의 미덕으로 삼고 싶었다.


스벅의 그녀와의 마주침은 잊고 있던 테르부슈의 자화상을 떠오르게 했다.

 '저렇게 늙고 싶다' 선망하며 무심코 저장했던 18세기 그림 속 테르부슈와 능숙한 독자로 보였던 스벅의 중년 그녀가 기는 단단함과 우아함이  매우 닮아 있었다. 도플갱어는 이 었던 것. 그녀는 21세기의 테르부슈 같았다.

그래, 렇게 늙어야지 했지. 테르부슈 같은 할머니가 되고 싶어 했더랬지.

어디 한번 나를 좀 점검해 보자. 하,, 살림세속에 조금만 찌들 기로하자. 생각이 아줌마가 고 있잖니...

'가만있자..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이 뭐뭐가 있더라.'

'오늘은 아들 수학 보강... 오호~저녁은 딸만 차리면 되겠는걸~보강 전에 뭘 사 먹이나~분식집 선금이 얼마 남았지?' 아~부산스럽다.

단단하고 우아한 테르부슈가 나의  20년 후 모습이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속단 접어두자. 바람직한 것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살 까나.

'작심삼일을 삼일씩  반복하고 살면 된다'는 세상 긍정적인 명언을 되기고 삼일에 한 번씩 테르부슈의 자화상을 떠올려 며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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