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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공팔 Oct 15. 2024

애도의 정석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페트릭 브링리/ 웅진지식하우스



20년 가까이 지난 일이다.  몹시 추운 겨울이었다.  월이 참...

지붕에서 내리쬐는 햇살을 받아서인지 온 사방이 대리석이었기 때문인지, 그곳은 밝음 자체로, 빛으로 몸까지 스멀스멀 따뜻해지는 것 같았고, 진정 이곳이 천조국이구나 싶었다. 그곳 공기에 눌려 약간 멍해졌었다. 트로폴리탄 미술관이었다. 그 정도로 규모도 크고 세련된 곳에 가본 경험이 처음이었다. 그곳은 아마도 미술관 내 고대미술실 정도였겠지. 고대 그리스의 여신을 모델로 한 듯한 대리석 형상 조각이 군데군데 놓여있었다. 나는 그중 한 조각상으로 다가갔다. 매끄러운 표현에 당연히 감탄했고, 특히 볼륨감 있는 곡선이 눈에 들어왔다. 여성의 굴곡진 엉덩이 라인과 두쪽 엉덩이 사이의 완만한 협곡을 어찌 저리 표현했을까!  코리안 촌뜨기 아가씨가 현실감이 상실될 지경이었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영화 E.T의 손가락 접선 장면을 상상해도 좋다. 스르르르.

"Nope!"

엄마야 깜짝이야.

맙소사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멋쩍은 웃음을 날리며, "Sorry, I did't mean..."

나의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관람기이다.

"어떤 사람들은 차갑디 차가운 대리석이 그들을 유혹하기만 하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무력하게도 돌을 어루만지고 만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작가 브링리가 미술관 경비일을 하며 관찰한  몇 부류의 관람객 중 한 명이 바로 나였던 것. 아무래도 대리석상의 차갑고 매끄러운 곡선은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끌어내는 뭔가가 있나 보다. 나만큼 충동조절에 문제가 생기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걸로 봐선. 는 함부로 예술품을 만지는 그런 교양없는 종류의 사람이 절대로 아니라고(쿨럭)...



여기 삼십 대 한 청년이 있다. 패트릭 브링리. 그는 얼마 전 메트로폴리탄 경비원이 되었다. 그의 얼굴엔 어딘지 슬픔이 어렴풋 내비친다. 뭐든 자신보다 뛰어나서 존경했고, 더불어 사랑했던 형이 하필이면 브링리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날 생을 마감했다. 그 일로 브링리 삶의 의미에 혼란이 생긴 것 같다. 사랑하는 형을 잃고 동시에 승승장구 성공 가도를 달리던 직장관뒀다. 에겐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애도의 방식으로 고요하고 가장 아름다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가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이 된 이유다.  몇 가지 안내를 하고 자리를 보존하며 작품을 지키면 됐었고, 화장실과 전시실 위치를 물어보는 관광객 외엔 그를 방해할 어떤 요소도 없었다.   

'세상을 살아갈 힘을 잃어버렸을 때 나는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곳에 숨기로 했다.'

상실의 슬픔이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자리 잡게 한 듯해 보인다. 그럴 때가 있다. 이 슬픔을 그대로 포용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고, 또 그렇게 해 줘야만 할 것 같고,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이.. 어쩌면 슬픔을 빨리 떨쳐버려서 진실과 감정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아니었을지.


이 책은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이었다. 예술의 기능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특히 브링리가 작품을 느끼고 감상하는 방식에 주목하게 됐다. 독자에겐 타인의 감상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그의 감상은 자신의 경험, 엉켜있는 감정들과 생각의 조각들에 배경을 두고서 작품과 대화하는 것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독자는 브링리가 예술을 통해 상실감을 치유하고 삶을 변화하는 과정을 함께 거친다. 예술이 한 사람을 재생하고 다시 살 수 있게 만든 구체적인 사례를 목격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삶에 도움이 되는 예술의 기능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인상적이었던 브링리의 감상포인트 몇 군데가 있었다.  

 


인류라는 생물종의 신비로움이 나에게 깊은  각인을  남긴다

미국의 사진작가 스티글리츠가 아내가 된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신체 부분들에 포커스를 두어 각 부분을

촬영한 초상화도 아닌 스냅사진도 아닌 여러 장의 사진을 통해 잠시 잊고 있던 인간애를 느낀다.

 "오키프의  손, 발, 몸 통, 가슴, 얼굴, 다시 얼굴 그리고 다시 얼굴,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그것보다도 이 시리즈는 대체로 사람이 얼마나 구체적이고도 독특하게 만들어졌는지, 우리가 태도와 몸짓으로 얼마나 많은 의사소통을 하는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선, 색깔, 빛, 그림자로 보이는지를 생생하게 일깨워준다. 사진 속의 오키프는 털이 없는 영장류 같기도 하고, 또  일순간  근엄한 여신 같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실체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인류라는 생물종의 신비로움이 나에게 깊은 각인을  남긴다."

스티글리츠가 사람의 신체 각 부분을 해체시킨 크로즈 업 사진을 통해, 인간이라는 신비롭고 독특한 생명체들이 눈앞에 살아 숨 쉬며 (의도적이든 말든)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예외인 일이고 아름다운 순간인지를 깨닫는다. 눈동자, 손가락, 발가락, 몸의 곡선을 정성 들여보며 어느 구석 하나, 누구 하나 귀하지 않고 하찮은 사람이 없는 것. 더 나가면  '미워도 다시 한번'의 여지를 남기게도 한다. 저 인간도 기적적으로 살아있는 신비로운 생명체겠거니... 하며. 해체된 신체 각 부분을 강조한 사진들 이를테면 발, 손 목덜미 같은 것을 보며 누군가는 인간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끓어 내기도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 같은 연습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는 사람인 것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습작 스케치'를 보며 우리가 칭송하는 걸작들 이면에 숨겨진 작가의 생각을 짐작해 보는 과정, 다양한 시도의 실패과정, 지난한 시간들에 대해 꼼꼼히 느껴보기도 한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 일의 경중을 떠나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아주 기본부터 시작해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 소박한 그림에서 그는 그저 무지개 모양을 거듭해 그리면서 마음에 드는 곡선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아무리 위대하다 칭송을 받는 그일지라도 결국 어린아이 같은 연습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는 사람인 것이다(...) 작고 치열하며 솔직한 느낌의 그 그림들에서는 그가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라고 의식을 한 흔적은 손톱만큼찾아볼 수 없다."

과정에 호기심을 갖고 수고로움을 헤아리며 보는 것은 완성된 작품을 보고 감탄하는 일보다 더 지능이 필요하고 애정이 깃든 마음이 있어야 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피터르 브뤼헐 , 곡물수확, 1565.

이 책을 주요하게 간파하는 그림이다. 오랜 기간 암투병 때문에 지쳐서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던 형이 맥너깃을 먹고 싶다고 한다. 브링리는 맥너깃 한아름을 사들고 오던 때 행복으로 충만하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형 주변에 가족 모두 둘러앉아 최선을 다해 짧은 시간의 소풍을 즐겼던 그때를 회상한다. 피터르 브뤼헐의 <곡물수확>은  브링리에게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은 고된 노동 중간에 짬을 내서 옹기종기 모여 새참을 먹고 누구는 졸음이 몰려와 한쪽 귀퉁이에서 잠을 청한다. 작가는 가장 흔한 일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을 주목하게 한다. 사실은 저런 일상이 진정 행복한 순간이라고 우리 눈 앞에 떡하니 들이댄다.

형과 함께 했던 그때는 너무 흔한 일상이었이지만 브링리에겐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행복했던 순간이다. 현생을 핑계로 감각하지 않고 놓쳐버린 행복했던 일상은 얼마나 많을지. 생활의 한 장면을 옮겨놓은 풍속화 한 점이 잊고 있던 일상의 소중함과 행복을 다시 일깨운다. 또 한편으로 '많은 경우 예술은 우리가 세상이 그대로 멈췄으면 하는 순간에서 비롯된다.'는 브링리의 말처럼 예술은 소중한 순간을 어떤 식이든 잊지 않고 잡아두고 싶은 욕망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풍속화를 그리는 대신 그렇게도 사진을 찍어대는 지도 모르겠다.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

어떤 작품이 좋을 땐 미술사조와 기법은 많은 경우 힘을 쓰지 못한다.(미학 지식과 사조나 기법들을 알고 분석하는 방식의 감상을 즐기는 감상가들이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근본이 그냥 문과생이기에, 별도리없이 나의 경험과 감정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지식이 누추한 감상자다) 그 작품 속에서 내 깜냥만큼 발견하고 내 안의 어떤 것과 굳이 맞닿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될 때, 그 작품의 호불호가 분별되기도 하고, 그 작품은 내게 의미 있는 예술로 각인된다.


이중섭, 가족을 그리는 화가, 1950년대.


이중섭의 <가족> 시리즈는  일상의 행복이 멈췄으면 하는 순간과 나의 바람을 상기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중섭의 가족시리즈에는 가족들이 조그마한 사각 프레임에 홀딱 벗고 엉겨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언젠가 우리 가족이 주말 저녁시간 거실에 모여 앉아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도 하고 얘기도 나누며 잔잔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창 아들의 일로 힘들 때다. 불현듯 나는 이곳이 섬은 아닐까? 우리 가족만 외딴섬에 가있는 듯한 고립감을 느끼고, 모순되게 우리 가족만 외딴섬에 숨어서 이렇게 꽁냥 거리며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여보, 우리 가족이 외딴섬에 있는 것만 같아. 그리고 정말 외딴섬에서 우리끼리 꽁꽁 숨어 살고 싶어." 이중섭의 가족이 떠올랐다. 이 그림을 생각하노라면 그렁한 눈이 되고 만다. 이중섭의 가족 작품에 우리 가족을 투영하게 된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서로 얼싸안고 즐거움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이 뒤범벅되어 즉물적으로 공유하는 가족의 모습은 내가 피부로 닿아 느끼는 우리가족의 것이기도 하다. 이중섭 가족 시리즈는 형언할 수 없는 사연과 감정이 응축된 완전한 우리 가족의 모습, 브링리 말에 의하면 바위처럼 거대한 힘을 가진다.   


"피렌체 출신의 니콜로 디 피에트로 제리니 Niccolo di Pietro Gerini라는 거장이 그린 그림이었다. 특징 없는 금색 배경  앞으로 매우 아름답지만 당돌하리만치 죽은 게 확실한 젊은이를 그의 어머니가 온몸으로 받치고 있는 장면이다. 마치 아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그를 껴안고 있는 어머니를 그린 이 그림은 '통곡' Lamentation' 혹은 '피에타'ieti'라고 부르는 장르에  속한다. 어머니는 늘 잘 울었다. 결혼식에서나 영화관에서나 눈물을 흘리곤 하 는 사람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어 깨가 흔들리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가 심장이 부 서지는 동시에 충만해져서 그렇게 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그림이 어머니 안의 사랑을 깨워서 위안과 고통 둘 다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경배'를 할 때 아름다움을 이해한다. '통곡'을 할 때 '삶은 고통이다'라는 오래된 격언에 담긴 지혜의 의미를 깨닫는다.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냉혹하고 직접적이며 가슴을 저미는 바위 같은 현실 말이다."



애도의 정석

"이제  이런 순간들은 예전만큼 자주 오지 않고 그 사실을 인정하며 슬퍼진다. 위대한 그림은 경외감, 사랑 그리고 고통 같은 잠들어  있던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메자닌의 골동품 들에 대한 호기심과는 다르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들을 더 많이 생각한다.  아마도 그게 옳고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받아들이 기는 쉽지 않다."


브링리가 꽤 괜찮은 애도를 했다고 생각한다. 상실의 슬픔이든 외로움이든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이 버거울땐 의도적으로 정적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가만히, 애도하고 싶은 이와의 추억을 상기해 보는 것, 그가 내 인생에 어떤 의미였는지 가늠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야말로 그와 나 둘만의 것이다. 그리고 애도의 시간에 브링리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기꺼이 공감하고 들어 준 것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작품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 사람의 예술 작품 감상기이자 회복 에세이이기도 하다. 누군가 위로가 필요할땐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런 방식의 애도와 치유방식이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 예술작품과 그다지 친하지 않지만 내게도 예술과 대화와 공감을 허락해 준 그간 만났던 작품들에 감사함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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