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도로는 차갑다.

―03

by 유성
길고양이들의 세상이 조금 더 넓어졌어요. 하지만 그곳은 발이 빠른 치타들의 영역이었죠.


https://www.youtube.com/watch?v=0XdpdlK6YVA

*영상의 브금과 함께 읽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01:15

사거리 횡단보도 앞.


 "자, 내가 일―등! 반박은 안 받음."

 "하‥ X랄하네. 야! 시호. 얘가 나 밀친 거 봤지?"

 "그래봤자 졌죠? 추하다 희찬아."


 숨 막히는 좁은 골목길을 벗어나면, 탁 트인 6차선 도로가 강변을 배경으로 뻗어있다. 잔잔한 강 위에 유유자적 흘러가는 일그러진 보름달. 그 너머를 잇는 대교 위, 몇몇의 자동차들이 화려한 스카이라인으로 향한다. 달빛을 받은 하얀 중형차를 마지막으로 도로 위는 텅 비었다. 단단한 콘크리트로 이루어졌지만 삭막한 사하라 사막과 다름없어 보인다.


 길 잃은 고양이들은 그곳이 마치 새로운 집이라도 되는 듯 도로로 뛰어들었다. 가장 먼저 사거리의 신호등을 터치한 건 예상외로 백서린이었다. 물론 달리기 시작과 동시에 집요하게 희찬을 견제한 덕이다. 승부라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그가 머리끝까지 심통이 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여유롭게 세 번째로 도착한 시호준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속없는 건지, 붙임성이 좋은 건지… 뭐, 나쁠 건 없지만. 슬쩍 뒤를 돌아보니 헉헉대며 쫓아오는 왕눈이 꼬맹이와― 뒤늦게 동갑인걸 알고 놀랐다. 달리기에 영 소질 없는, 척 봐도 금수저 냄새가 나는 여자애가 보였다.


 "그래서,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건지 들어나 보자."

 "…아."


 그럼 그렇지. 뭘 기대한 건지 모르겠다.

이 X끼들, 여기까지 뛰어온 건 그냥 재미 때문이었나.


01:30

텅 빈 6차선 도로 위.


 황금빛 모래사장이 아닌 모노톤의 콘크리트 도로 위의 다섯 마리 길고양이들. 신호등의 빨간불이 아무리 그들을 멈춰 세우려 해도 소용없다. 이곳의 규칙을 따르던 자동차, 시민들은 모두 집으로 간 지 오래였다. 아무도 호루라기를 불며 뛰쳐나오지 않는다. 깜박이는 빨간불. 파란불. 클럽의 현란한 조명 같다. 서로를 향해 의미 없이 소리를 지르고, 숨이 막히게 달린다. 그들의 일탈은, 내일 아침 해가 뜨고 나서야 누군가 교통카메라의 영상을 발견할 것이다. 그전까지는 한바탕 놀이일 뿐이다.


 "시호시호. 삐졌어? 질문권 쓸까?"

 "됐거든."


 겉으로는 내 눈치를 살피듯 쭈뼛대지만 표정은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렇게나 뛰어다녔는데 서린의 앞머리는 조금도 흩트러지지 않았다. 본드라도 붙인 걸까. 잠깐 호기심이 일었지만 줄곧 히죽거리는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주춤하는가 싶더니 이내, 서글서글한 눈웃음을 이죽이는 서린이었다. 벌써부터 귀찮음이 밀려왔지만 굳이 자리를 피하지는 않았다. 조금 후회되는 것 같기도 한데.


 "음…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너, 그 골목에 살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제법 눈치가 빠른 것 같다. 애써 표정을 숨기며 서린의 사뭇 진지한 눈빛을 마주했다. 뭘 그렇게 캐내지 못해 안달인지.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질문권― X발. 괜한 소리를 지껄였던 과거의 내가 한심스러웠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쏘다니던 다른 일행들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싸늘한 새벽공기 속을 부유하는 분위기가 변했다. 호준과 서린 사이의 온도가 한층 낮아지는 것 같았다. 적막은 참을 수 없는 희찬마저 이 순간 고요히 둘을 지켜볼 뿐이었다. 초조함을 숨기지 않은 도하가 우물쭈물 뭐라 중얼거렸지만 곧 나의 무덤덤한 대답에 떠밀려갔다.


 "네가 알 거 없잖아."

 "아니. 그냥 물어본 거잖아. 내가 뭐…"


 도로 한가운데 마지막으로 합류한 천시아는 어리둥절했다. 전후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분위기는 영하를 찍고 얼어붙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맨몸으로 사거리를 질주하며 실없이 웃었던 그들이었다. 시아는 열일곱 인생 처음으로 또래 사이에서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었다. 그 순간이 영원하길 바랐지만 그건 스쳐가는 꿈결 따위였던 것이다.


 "서린아. 거기까지. 호준이 너도‥ 조금 예민한 것 같아."


 안 그래도 사나운 호준의 인상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일전에 편의점 앞에서 희찬과 싸웠던 장면이 아른거려 몸을 움츠렸다. 다행히도 그는 곧 쥐었던 주먹을 풀고 일행을 돌아보았다. 미안해하는 것 같은데 딱히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가자. 당분간 말 시키지 마."


 그동안 올라갔던 서로의 유대감이 한순간에 식는 순간이었다. 또 저만치 멀어진 대장고양이의 뒷모습을 쫓아갈 뿐이었다. 이런 걸 기시감. 아니. 데자뷔라고 하던가? 다시금 낮게 중얼거리는 박희찬의 목소리가 들렸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X끼. 인성 문제 있다니까."


01:45

텅 빈 도로 갓길.


 "네가 나를 친구로 생각 안 해도 X도 상관없어. 어차피 처음 봤는데 뭐."

 "시비 걸지 마라."

 "중2병이냐?"


 하여간 살쾡이 X끼… 눈빛 한번 사납다. 시호준의 찌를 듯이 날 선 두 눈에 절로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잠시 숨이 멎은 듯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그의 옆으로 붙었다. 이 녀석은 생각이 많아지면 늘 이딴 식인지 궁금해지는 서린이었다.


 "좋아. 그럼 네가 물어봐. 나한테 뭐 궁금한 거 없어?"

 "없으니까. 꺼져."


 호준의 발걸음이 좀 더 빨라졌지만 작은 키로도 서린은 부지런히 그를 쫓았다. 그가 어떤 말을 해도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떠들었다. 이내 호준도 짧은 한숨을 쉬고는 듣는 둥 마는 둥 걸음을 재촉했다.


 성공인가?


이 자식 안 듣는척하는 거 다 티 나는 게 저 움찔거리는 귀가 꼭 살아있는 것 같다. 아. 살아있는 건 맞구나. 서린은 그런 호준을 곁눈질하면서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난 오늘 후회 안 해. 기분 되게 안 좋았는데, 너네랑 놀다 보니 다 잊었어."

 "…."

 "너도 솔직히 재밌었지? 아까 미친놈처럼 뛰어다니는 거 다 봤거든?"

 "… 뭐래. 뒤질래."

 "네가 먼저 '가장 높은 곳'으로 가자며. 그것만 생각해. 괜히 기분 쳐질 이유 없잖아."

 "… 그런가."

 "그래. 눈 좀 예쁘게 뜨고! 아, 미안미안. 장난."


 호준의 눈이 마치 닥치라는 듯이 가늘어졌지만 서린은 더 이상 쫄지 않았다. 그가 달리기 시합을 제안할 때의 천진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던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친구는 아니었지만 뭐 어떤가. 시월의 새벽 위에서 다섯 명은 함께였다. 중요한 건 그것뿐이다.


 "야― 느림보들아. 빨리 와!"

 "저게 또 긁네?!"

 "응~ 나보다 느려~"


 열 걸음 뒤처져서 따라오던 세 사람을 향해 뒤돌아 손을 흔드는 서린이었다. 그녀의 말에 발끈한 희찬이 전속력으로 달렸고, 그의 뒷주머니에서 떨어지는 핸드폰을 잡으려 허둥대는 도하가 보였다. 그 모든 것을 하나의 드라마처럼 지켜보던 시아가 풋하고 웃었다. 심지어 호준도 슬쩍 뒤를 돌아보며 그들을 마구 비웃었고, 서린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호준의 귀가 발갛게 물들자 서린은 능청스레 휘파람을 불었다.


 부아앙―


 다섯 마리 길고양이들의 털이 바짝 곤두서는 순간이었다. 삭막한 6차선 도로 위. 난데없는 불청객의 등장이었다. 신호등의 불빛보다 강한 형형색색의 핀조명들이 그들의 눈에 쏘아졌다. 천지를 뒤흔들 굉음에 고막이 터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수십 명의 폭주족들이 그들의 곁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지나갔다. 간간히 "X 만 한 X 끼들아."같은 욕지거리를 퍼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뛰어."


 대장고양이 호준이 겁먹은 고양이들에게 눈짓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강변 쪽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폭주족의 배기음과 현란한 조명은 시야에서 점차 멀어져 갔다.


01:55

강변 산책로.


 폭신한 잔디가 발 밑에 깔렸고 서늘한 강변의 물 내음이 코끝을 자극했다.


누군가 배를 잡고 웃었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천시아였다. 그녀의 부드럽게 휘어진 눈은 초승달처럼 빛났다. 줄곧 겁먹은 표정이던 작은 고양이도. 타오르는 태양 같은 열정적인 근육고양이도. 무너지지 않는 앞머리의 쾌활한 고양이도. 낡은 가죽재킷을 재차 털어내던 대장까지. 짙은 새벽이 물러갈 기세로 숨이 넘어갈 듯 웃었다.


 일순 기분 좋은 정적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갈까?"

 "그래. 가자."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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