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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안 Aug 29. 2016

10 함께 가는 길, 마르카밸리 트레킹 1st day

Ladakh - India 7월 한 달의 기록 2016

Welcome to HEMIS HIGH ALTITUDE NATIONAL PARK




Zingchen --->  Yurutse (5 hrs)






병원에서 나와 차에 올라타던 참이었다.


"구루지 오셨어요."

"네? 여기에요?"

"우리 훈드르 Hunder 갔을 때 연락이 안 되어서, 일단 비행기 타고 어제 레 Leh로 오셨답니다. 갑시다."


라다크는 인터넷은 물론, 아직도 전화가 안 터지는 곳이 많다. 그래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미 잡힌 스케줄 때문에 아무래도 힘들겠다던 구루지가 갑자기 일정이 바뀌어 함께 트레킹을 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뚜르뚝에 가 있는 우리와 도무지 연락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내일 출발하는 날짜를 알고 있어 급하게 비행기를 끊어서 날아오긴 했는데, 다음 날 오후까지도 전화가 안되었으니 혼자 얼마나 애가 탔을까. 더욱이 싸부는 일정 챙기랴, 병원 가랴 정신없는 와중이었으니 이때 병원에서 나오면서 전화가 터져 연락이 닿았던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구루지~~~!!!"



1년 만에 보는데도 어제 본 것처럼 반갑고 친근했다.

웃는 얼굴이 여전히 해맑았다. 그의 이름은,

 Yogi Kamal Singh.


인도 리시케시 Rishikesh에서 따뜨와 요가 샬라 Tattvaa Yoga Shala를 운영하며 아쉬탕가 요가 Ashtanga Yoga를 가르치는 분이다. 월드 스탠더드, 월드 베스트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나의 싸부의 싸부인 거다.



트레킹 시작하기 전, 내가 구루지를 찍으니 구루지도 나를 찍는다.



해 질 녘 바삐 돌아가 짜잔, 서프라이즈를 하니 어머나~~! 모두가 기뻐하며 구루 지를 한껏 반겼다.

식구를 맞는 느낌이었다. 그냥 이런 따뜻함이 좋다. 피하나 섞이지 않았지만, 같은 길을 함께 가는 도반 道伴 이자 스승과 제자로서 하나로 어우러져 동그랗게 모일 수 있는 관계라는 것.


 




공공칠 작전 같은 이산가족상봉, 만났으니 된 거다.

그리고, 드디어-


내일부터 마르카 밸리 Markha Valley 트레킹 시작이다.

두근두근.



내 가슴팍까지 오는 기다란 산소호흡기. 덕분에 살았어.
호텔 조식에 나온 따끈따끈한 달걀 두 개를 챙겼다.
짜이였던가 민트티였던가 기억이 안 나네...



아침 일찍 출발해, 자동차로 Zingchen 까지 달려서 'HEMIS HIGH ALTITUDE NATIONAL PARK' 입장을 했다.  여기서부터 걷는 것이다. 이 날의 목적지는 5~6시간 정도 후에 도착할 Yurutse 였다.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 차 한잔 마시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각자 배낭에 물을 몇 병씩 넣고, 짐을 다시 확인하고 챙기면서 분주했다. 그러는 중, 우리의 가이드 (내가 어제 그렇게 못 살게 굴었는데도 다 받아주었던) '싯따르따'가 전체 일정과 주의사항을 설명해 주었다.



이름 참 크다, 싯따르따.
on the Road, Markha Valley, Ladakh  2016



그런데 나, 이때 사진 찍으면서 처음 알았다.


싯따르따가 등에 산소호흡기를 메고 있다는 것을.

앞으로는 아기띠처럼 자기 배낭을 또 어깨에 멨다.


산소통은 원래 썼던 크기의 절반 길이였는데, 아마 휴대용이었나 보다.

분명히 엊저녁까지만 해도 그 큰 산소호흡기를 가져갈 방법이 없어서, 트레킹을 하느냐 마느냐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 같았다. 뭔가 마음이 쿵, 했다. 감동받았다고 해야 하나. 내가 전날 밤 트레킹을 가겠다고는 말했지만, 사실 잠을 몇 시간 못 잘 정도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이런 든든함이라니- 그걸 보니까 외려 '산소호흡기를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잘 걸어보자!' 굳게 다짐하게 되더라.


땡볕이어도 좋았다.

순간 발걸음이 더 가벼워졌다.



멀리 히말라야 설산이 보인다.
우리의 식량과 텐트와 각종 짐을 지고 나르는 말
말이  지나갈 때마다 '힘내, 고마워.' 말해주었다.






우리가 산을 전세 낸 것 같았다. 아무도 없었다.

걷다가 코너를 돌면 갑작스럽게 매번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탄성을 멈출 수가 없었다.

구비구비 나 있는 돌길을 쉬지 않고 걸었다. 풍경 보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몰랐다.



on the Road, Markha Valley, Ladakh  2016
on the Road, Markha Valley, Ladakh  2016



중간에 어딘가 철퍼덕 앉아서 도시락을 까먹었다.

이걸 트레킹 시작 전에 받아서 각자 배낭에 메고 갔는데, 이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배도 고팠지만 일부러라도 야무지게 다 먹어서 비웠더니 다음 산행이 한결 수월했다.

이래 봬도 5대 영양소를 골고루 챙긴 네팔리 쿡 "빠상"의 깨알 같은 정성이 담긴 '팩 런치'다.



Pack Lunch, Markha Valley, Ladakh  2016
Wild Rose, Markha Valley, Ladakh  2016
on the Road, Markha Valley, Ladakh  2016



나 혼자였으면 이뤄지지 않았을 일들이

함께라는 이유만으로 상상할 수 없는 고마움의 모습으로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요가도 그랬고

여행도 그랬다.


함께 걷지만 오롯이 각자 걷는 길-


완전한 자연의 소리 외에는 내 숨소리밖에 안 들리던 길을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온몸에 진동하며 흐르던 생경하면서도

온전한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림과 글 이전에 느낌이 있다.

교감을 하는 순간 말이 필요 없어진다.

현란한 말일수록 공허하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굳이 글을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자체로 완벽한데 내가 뭐라고 구구절절 토를 다나, 싶은 거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건 아닌지 매 순간 스스로를 삼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확고히 했을 뿐이다.


문자와 형상이란 서로의 느낌을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을 텐데,

이제는 도구가 주체가 되어 사실상 우리는 실제로 느끼는 법을 잊어버렸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살려 잠들어 있는 감각을 깨워야 한다.


느낌,

느끼는 것.

느낀다고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 그래서 소통하는 것.


여전한 나의 숙제다.



첫날 밤을 보내게 될 아늑한 산 아래, 텐트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오랜만에 걷는 것이기도 하고, 첫날이기도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꽤 힘들었다.

그래도 기특했다, 나 자신이.


이 만큼이나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잊으면 안 되었다.


거의 꼴찌였지만, 더 처지지 않게 부지런히 따라갔다.

그리곤 저 멀리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포터와 셰르파들이 쳐놓은 텐트를 보는 순간, 환호성이 터졌다.

절로 웃음이 났다. 다시 발걸음이 빨라진 건 두 말하면 잔소리!



자세히 트레킹 루트를 설명하는 싸부와 꼼꼼하게 체크하는 구루지
Nite, nite !



저녁을 먹고 텐트에 돌아와 침낭 속에 몸을 뉘었다.

쌀쌀한 바람에 코끝이 쨍했다.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이 깊은 산속, 지금 내가 여기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대체 이런 인연은 뭘로 설명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 뒤로도 한참을 또렷이 있다가 잠을 청했다.

밤은 여전히 깊었고, 사위는 적막했다.


그대로의 자연 속에 내가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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