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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안 Aug 25. 2016

09 그래도, 괜찮다는 말

Ladakh - India 7월 한 달의 기록 2016

디스킷 곰파, 거대한 미륵불상  Disket Gompa, Nubra Valley, Ladakh 2016




"쾅 쾅 쾅"


문 두드리는 소리였다.


"쿵 쿵 쿵"

"쾅 쾅 쾅"


나가기 싫었다. 마음이 바닥이었다.

아무도 만나기 싫으니 그냥 가시라고 말하고 싶었다.


목 끝까지 차오른 알 수 없이 힘든 감정을 조절할 수가 없었고,

이 상태에서는 정말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더는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꼼짝하지 않았다.






... 안 나갈 수는 없었다.

이미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내 마음은 온갖 원망의 이유를 찾아 분주히 날고 있었다.

겨우 기어나가 한껏 구겨진 얼굴로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서 있던 싸부가 대뜸 말했다.



"병원에 가시죠."




View from Disket Gompa, Nubra Valley, Ladakh 2016
Disket Gompa, Nubra Valley,  Ladakh 2016



예의 카르둥라 Khardungla 5,603m를 넘고 한참을 달려, 다시 레 Leh 숙소에 도착한 후의 일이었다.



"산소포화도 검사해야 되니까 나오세요."



단호함이었다. 거기엔 선택권이 없었다. 순간 마음도 조용해졌다.

그러마하고 돌아서 얇은 바람막이 점퍼를 온통 뒤집어쓰고 로비로 나갔다.

한 시간 전, 병원 바로 앞까지 가서도 차를 돌린 나였다.






이 날 카르둥라를 넘어오던 길은, 뚜르뚝 Turtuk에 가는 날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다.

마음의 준비를 그렇게 했건만 시작부터 속수무책이었다.

잘 해 보자고, 빨리 넘어버리자고 약속한 게 무색해져 버렸다.

 

누브라 밸리에서 가장 중요한 사원으로 일컬어지는 '디스킷 곰파'를 잘 구경한 뒤에

이 고개만 넘으면 레 Leh에 돌아가 한 밤 달게 자고, 트레킹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랬다.

그랬는데-


나는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수렁에 빠진 사람처럼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몸은 멀쩡했을지도 모른다. 고개를 넘어 충분히 내려왔기 때문에,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은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이미 레 Leh였다.


하지만 마음이 도통 그렇지를 못했다.


나는 어리석게도 고개를 넘으며 겪었던 모든 순간의 끝에서, 결국 불러오면 안 될 기억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아놓고 말았다. 그것은 순식간에 중첩되면서 거대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통제가 안 되었다. 일생에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아빠마저 떠올랐다. 정리되지 않은 모든 감정이 엉킨 채로 수면 위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병원 앞에서 차를 돌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침대에 쓰러졌다.






Disket Gompa, Nubra Valley, Ladakh 2016



카르둥라를 넘기 직전,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모았던 체크포인트 4,800m였다.

그런데 출발하자마자 차를 멈췄다. 산소호흡기가 필요했다.

전날 썼던 거라 그런지 금세 동이 났다. 급하게 다시 차를 세웠다.

새로 바꿔달라고 부탁했는데, 사람들이 산소통을 앞에 두고 뭔가 다른 걸 찾느라 분주했다.


꺽꺽- 산소가 없었다.

참을 수 있는 지점을 넘어가고 있었다.


누군가 급하게 고무 마스크처럼 생긴 것을 대 주었다. 내가 사용하던 코에 끼는 줄이 아니었다.  

크기는 코와 입을 다 가리고도 남을 만큼이었는데, 이상하게 산소가 들어오질 않았다.

도무지 숨이 쉬어지질 않아 다시 급격하게 헐떡거렸다. 옆에서는 자꾸 릴랙스 하며 천천히 숨을 쉬라는데, 나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차를 세웠다.  


왜, 뭐가 문제지?!!


사람들이 모였다. 호흡기를 하고도 너무 힘들어하니 다들 난감해했다.

자꾸만 왜 그러냐고 물어봤다. 뭐가 이상하냐고 묻고 또 물었다. 아아, 나도 모르겠다.

다만, 정말 죽을 것 같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과연 내가 넘을 수 있기는 한 걸까?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그때 갑자기 누가 마스크를 벗기더니 위아래를 맞춰서 다시 씌워주었다.


"산소가 다 빠져나갔었네. 거꾸로 써서."


그런데 이상하게 이때부터 산소가 제대로 들어왔는데도, 전혀 편안해지질 않았다. 호흡기를 하지 않은 것과 똑같은 고통이 그대로 들어왔다. 벌거벗은 채로 그 높은 곳을 넘는 기분이었다. 내내 똑같았다. 한참을 끝없이 올라가고 끝없이 내려오는 내내 그랬다. 이미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에게, 고통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 속에서 정신없이 버둥거릴 뿐이었다.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옆좌석 일행분이 손을 꾹꾹 눌러 주물러주셨다.

첫날 다친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아서, 스치기만 해도 아팠다. 숨 못 쉬는 게 힘든 건지, 손이 아픈 게 힘든 건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손이 불편하니 잠시만요.' 라는 말 하나 못 할 정도로 몸도 마음도 엉망이었다. 서러웠다. 서러울 거 하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마냥 서러웠다. 눈물이 났다. 많이 울었다.


레 Leh 근처까지 내려왔을 때는 이미 놔버렸던 것 같다. 그래도 이것만은 놓지 말아야지 했던, 내 마지막 정신이었다. 다 귀찮았다. 병원이고 뭐고, 필요 없었다. 쉬고 싶었다. 혼자 있고 싶었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겨우 말했다.



... 호... 텔...로... 가... 주세요...






Disket Gompa, Nubra Valley,  Ladakh 2016



병원은 아수라장이었다. 읍내 작은 병원의 어수선함이었다. 사람들이 번호표 비슷한 것을 받아 들고, 이제나 저제나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시쯤 되었으려나. 먹은 것도 없이 힘을 빼서 그런가, 먹고 싶은 것도 없는데 배가 고팠다. 아무래도 앉아있을 기운이 없는데 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진심으로 드러눕고 싶었다. 여전히 손발이 저릿저릿했다. 약한 전기가 몸을 타고 계속 흐르는 것 같았다. 앉아있는 것도 힘들어서 괜히 눈물이 났다. 이렇게 무기력한 내가 싫었다. 이게 뭐야, 대체 이게 뭐야...


한참을 기다렸다가 진찰을 받았다. 젊은 의사는 삼십 초도 안돼 아무 이상이 없다며 내 등을 툭툭 치고는 나가보라고 했다. 갑자기 무슨 마음이었는지, 이때까지 기다린 게 아까워 오기가 생겼다. 순간 꺼져가는 목소리로 최대한 불쌍하게 말했다.


"... 나는 지금도 숨 쉬는 게 어려운데, 어떻게 좀 해 줘. 힘들어..."


의사가 잠깐 생각하다가, 막 뭘 쓰더니 종이를 건네주며 주사를 맞으러 가라고 했다.

가이드가 내 손을 잡고 또 어디론가 데려갔다. 건물을 나와 뒤쪽에 있는 또 다른 건물로 들어갔다.

체감상 그 거리가 얼마나 멀던지, 난 중간에 주저앉고 말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울먹이며 말했다.


"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거야. 더는 못 가겠어..."


잘 못 한 거 하나 없는 가이드가 미안해하면서 나를 달랬다.


"바로 저기야. 저기서 주사 맞고 좀 쉬면 괜찮아질 거야."




어두침침한 복도를 지나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들어갔다. 순간, 눈이 부셨다. 햇살 가득한 병실이었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진하게 났다.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를 보니 갑자기 긴장이 풀렸다.


누워서 주사 두 대를 맞았다. 바로 약이 온몸의 끝까지 차르르- 전달되는 게 느껴졌다. 손끝 발끝, 남의 것 같던 느낌이 사라졌다.


잠이 왔다. 가이드가 말했다.


"편히 누워 있어. 쉬면 좀 괜찮아질 거야."


힘없이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난 대체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걸까, 모두에게 미안했고 나에게 한없이 실망했다.

오늘 하루를 지우고 싶었다.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속으로 계속 눈물이 찼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여기까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트레킹을 한대도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한 번도 아니고 계속 이런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다른 일행분들을 인솔하러 나갔던 싸부가 다시 병원에 돌아왔다. 바로 일어날 수가 없어서 그 후로도 꽤 오래 누워 있었다.



View from Disket Gompa, Nubra Valley,  Ladakh 2016



병원에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 여덟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내 몸에 무리가 많이 간 것을 염려한 분들이 간곡하게 내일 떠나는 트레킹을 포기하고 레 Leh에서 쉬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어보셨다. 툭, 하고 눈물이 났다.


... 가고 싶은데, 가면 안 되겠구나... 가면 나도, 여러분도 힘들겠구나...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가 가고, 나도 계속 고민하고 있던 건데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으니 그 순간 명확히 알겠더라. 내 솔직한 마음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하루 종일 머릿속이 그렇게 복잡했던 이유는,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는 상황이 올 게 뻔한 데도 가고 싶어 하는 내가 스스로 자신이 없어서였다. 제가 실은 이만큼 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꼭 가고 싶어요. 힘드시겠지만, 도와주세요.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이 말을 할 용기가 없어서 혼자 그렇게 끙끙거렸던 거다.






그래도, 괜찮다. 는 말이 고팠었나 보다.

그렇게, 망가져도 괜찮다. 는 말이 고팠었나 보다.

힘들면 힘든 대로 같이 가면 되지.라는 말이 고팠었나 보다.



실은 그렇게 기다리지 않아도, 먼저 말하면 기꺼이 손 내밀어 도와 주실 분들이었는데도 나는 계속 주춤거렸다.

결국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던 거다. 모든 건 내 문제다. 고민하고 있을 때, 싸부가 그랬다.


"쉬려면 판공초 가서 쉬어야지. 거기 경치도 좋고, 쉬기 좋은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 던진 말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거기서 마음이 반짝했는지 모른다.

그래 만일의 경우, 트레킹 끝나고 판공초에서 쉬면 되지.


트레킹은 산이고, 판공초는 호수다. 둘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자세히 보면 앞뒤 좌우 맥락이 없는 말인데도, 그땐 이상하게 그 말 하나가 높은 산 하나를 넘을 만큼의 힘을 주었다.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며, 모든 걸 자기 편의로 생각해버리는 제멋대로인 동물인 거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대로 받아들이면 그뿐이다. 그리고 나는 트레킹을 해 낼, 한 줌의 힘을 얻었다.


사람은 사소한 순간을 더 많이 기억하고, 더 오래 기억한다.

인생이 큰 사건 사고들로 이뤄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말도 안 되게 사소하고 찌질한 순간들이 다다.

그런데 그 안에 담긴 작은 행동, 작은 말, 그 보다 더 작은 눈빛 같은 것들이 엄청 난 터닝포인트가 되는 거다. 결과적으로 어느 한순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게 돼 버린다. 나한테는 이번이 그랬다.


그 말 한마디 붙잡고 갔다.

왠지 그 말이 '그래도, 다 괜찮다.'는 말 같았다.


물론 내 마음대로 해석해 버린 거지만

뭐 어떤가, 결국 그 힘으로 걸었다.

엉망진창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나한텐 가장 중요한 거다.

한 달 가득한 여행 중, 그 순간이 제일 고마웠다.

오래,



오래갈 거다.




Disket Gompa, Nubra Valley, Ladakh 2016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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