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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안 Aug 31. 2016

11 좋아서 하는 일, 마르카밸리 트레킹 2nd day

Ladakh - India 7월 한 달의 기록 2016

정상을 앞두고, 걸어 온 길을 돌아보면 이렇게나 멋있었다.


Ganda La pass 4,900m   /  Ladakh  2016




Yurutse - Ganda La pass (4,900m) - Skiu / ( 11 hrs )




갑작스러웠으나 어김없이, 나는 또 엎어졌다.

세 번째였다. 정상까지는 백 미터 남짓이었을까,

코앞이었다.


바로 직전까지, 다 함께 충분히 쉬고 한 번에 넘을 요량으로 힘을 비축했다.

컨디션이 꽤 괜찮았다. 맛있는 간식을 나눠먹고 사진을 찍고 즐겁게 이야기했다.

바람이 수시로 차가워졌지만, 태양은 강하게 내리쬐었다.



자, 이제 갑시다. 다 왔어.

저기만 넘으면 돼.





하나 둘 하나 둘,

후후- 후후-


이 날은 4,900m 간다 라 패스 Ganda La pass 만 넘으면 됐다.

5,000m 가 아니니 비교적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그래도 높긴 높았다.


숨이 가쁘지 않도록 조절하며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 순간 눈 앞이 반짝!


몸이 휘청했다.

나는 내가 거울에 반사된 빛을 보았나 했다.


돌아서서 크게 숨을 들이켜고, 다시 올라가려고 한 발을 떼자마자 다시 반짝!

날카로운 얼음벽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어어... 왜 이렇게 어지...럽지?


본능적으로 올라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뒤돌아서 울상을 지었더니 따라오던 싸부가 물 마시고 가라며 가방을 받아주었다.

땅에 철푸덕 앉아 물을 마시는데, 해가 구름에 가렸다. 바람이 불고 기온이 떨어졌다.

물 한 잔 먹고 좀 쉬면 되겠지,


굼뜬 동작으로 힘들어하니 보다 못한 싸부가 다리를 꾹꾹 주물러 주었다.

갑자기 너무 추웠다. 온몸이 심하게 저렸다. 심장이 조여왔다. 꺽꺽-

호흡이 안 됐다. 아아... 또 시작인가. 손이 너무 아팠다. 급하게 정말 너무 아팠다.


이미 몸은 힘들었고, 뭔가 많이 불편했는데 미세하게 감지하질 못했다.

이 뒤로는 또 생각이 잘 안 난다.


다만, 싸부가 힘이 빠져 축 늘어져있는 나를 엄청나게 마사지했다.

숨이 너무 가빠서 정신을 놓기 직전이었지만 가까스로 그 끈을 놓지는 않았다. 스스로 통제가 안 되는 몸을 대신해서 잡아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끝까지 가지 않도록, 직전에서 멈출 수 있도록 싸부가 대신 돌려주었기 때문에 나한테는 딱 1센티만큼의 공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몸은 엄청 힘들었는데 다행히도, 두려움이 몰려오지는 않았다. 계속 숨을 쉬었다. 잘 안 쉬어지는 숨을 계속 쉬었다. 패닉 직전에서 멈추었다.


몸이 억지로라도 돌아가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곧 괜찮아질 것 같았다. 물론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넘어갈 듯 넘어갈 듯하면서도 진정이 되지 않자, 싸부가 계속 외쳤다.



"Oxygen!!!"



한참을 먼저 가고 있던 가이드 싯따르따에게 한 말이었을 거다.

나도 답답했다.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자리를 못 찾고 안정이 안 되는 내가 너무 답답했다. 몸을 다룬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어렴풋이 알기에, 그 고산에서 쉬지 않고 주물러주는 게 고맙고 미안했다.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라도 정신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 이번엔 짐승은 되지 말자.






한걸음에 달려온 싯따르따가 산소통을 주었을까, 그랬겠지.

난 그냥 받아서 급하게 줄을 낀 것 밖에 기억이 안 난다. 휴우... 다시 또 삶을 이어간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안 끊어진 숨 조각을 덕지덕지 억지로 이어 붙인 것 같았다.


내 등에 직접 산소통을 메고 올라야 했다.


뒤뚱뒤뚱 걸어야 돼. 더 천천히!


발걸음이 조금이라도 빨라지면 단번에 제지했다.

딱 반 보씩이었다. 한 뼘도 안 되는 걸음을 겨우 걸었다.

뒤뚱뒤뚱 쌕쌕, 거리며 메고 있던 산소를 마셨다.


숨 쉬랴 걸으랴


이 쉬운 게, 그토록 어려웠다.

아무것도 아닌 일인 줄 알았는데 이게 삶의 전부였다, 그때는.


무척 짧은 거리였을 텐데, 돌아 돌아 길게 늘여서 한참 만에야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이고 뭐고 정신이 있을 리가 없었다. 주위 걱정의 눈길이 온통 나를 향해 있음을 몸으로 알 수 있었다. 누구와도 눈 마주치지 않고 그대로 내려가고 싶었다. 숨고 싶었다.


건네 준 따뜻한 물 한 모금 마시고, 얼른 호흡기를 뗐다. 또 언제 필요할지 모르니 다 쓰면 안 될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다. 사람이란 참... 다시 숨 한 번 쉬고 멀리 나 있는 길을 내려다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저 풍경이 참으로 거짓말 같았다.



around Ganda La pass, Ladakh 2016






글을 쓰다 보면 이상하다.

'오늘은 간다 라 패스를 넘고 스큐에서 잤다.'라고 쓰고 싶은데, 아무리 써도 정상에서 내려오려면 아직 멀었다.

더 웃긴 건, 고작 쓴 만큼으로도 이미 대하드라마라는 거다. 돌이켜보건대, 이 모든 걸 하루치로 퉁치기에는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다. 하루를 쪼개고 또 쪼개서 써야 할 판이다. 웃기고 막막하다.


그래도 글이라는 게 참 신기해서, 쓰면 쓸수록 마음이 차분해진다. 깨끗하게 목욕하는 기분이다.

내가 이렇게나 글 쓰는 걸 좋아했었는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었는지 거듭 확인하면서 신기하다.

내 속을 그대로 풀어내는 동시에 스스로 위로받는 느낌이다.

뭔가 삶을 정성껏 사는 일에 가까워진 것 같아 기력이 떨어졌다가도 '힘을 내야지' 문득 혼자 다짐한다.


이번 여행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건, 참 잘 한 일 같다. 안 그랬으면 어딘가 둥둥 떠다니며 갈 곳 잃은 이 많은 감정들을 내가 언제 이렇게 적나라하게 들여다봤을까. 다행이고 다행이다.






좋아하는 것을 소중히 하세요.
자신다워지는 동시에 행복으로 이어질 겁니다.

-

     故   안자이 미즈마루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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