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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안 Sep 02. 2016

13 나를 따라와, 마르카밸리 트레킹 2nd day

Ladakh - India 7월 한 달의 기록 2016

이 날의 목적지인 '스큐' 가는 길 :  on the way to Skiu, Markha Valley, Ladakh  2016








View from the way, Markha Valley, Ladakh  2016
건빵과 아몬드 :  Break time, on the way to Skiu, Markha Valley  2016
KAMAL Guruji  :  Break time, on the way to Skiu, Ladakh  2016




Hold on my bag strings to the tight.


가이드인 싯따르따에게 산소호흡기를 넘기고, 가방과 카메라를 받아서 다시 멨다.


코를 막고, 훕-! 물속에 들어가 숨을 참는 것처럼 머리가 붕붕 귀가 웅웅거렸다. 발이 땅에 붙어있지 않고 한 뼘쯤 떠있는 것 같았다. 얼른 내려가야지, 생각하고 일행분들보다 먼저 출발하려는데 어느새 구루지가 와서는 내 가방을 당신 가방 위에 얹어 둘러멨다. 또 이미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있었는데도 내 것까지 양쪽으로 나눠서 들었다.



"여기 뒤에 내 가방 줄을 꽉 잡고 따라와."



그때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작은 돌부리에라도 걸리면 앞으로 푹 고꾸라질 지경이었다. 게다가 경사진 내리막길이라니, 아무리 발가락 끝에 힘을 줘도 슬쩍슬쩍 미끄러졌다. 가뜩이나 서 있기도 벅찬데 발끝이 밀리니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다. 평소라면 괜찮다며 쿨-하게 혼자 내려갔을 텐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이건 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군말 없이 온통 감사한 마음으로 뒤에서 가방끈을 잡았다.


축지법을 써서 달리듯 엄청 난 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원래 구루지 걷는 속도가 매우 빠른 편이고, 그에 비하면 나는 굼벵이 수준이었는데 이날은 그대로 따라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내려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떠밀리듯 힘 받아 가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이 있었겠는가. 세월아 네월아, 내 느린 걸음으로는 간다라 패스 Ganda la pass 4,900m에서 스큐 skiu 3,400m 까지 1,600m의 고도차에 15km 이상 계속되는 내리막길을 버틸 재간이 없었다. 고맙게도 곁을 내주는 사람들이 있어 그냥 묻어 간 거다.


1차 점심 포인트 (4,050m) 까지 정상에서부터 한 번도 쉬지 않고 2시간을 훨씬 넘게 내려왔다. 중간에 화장실을 엄청 가고 싶었는데, 허허벌판에 몸 숨길 데도 없고 뭔가 때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다 참았다. 내가 정신이 멀쩡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와 진짜 화장실 참는 것만으로도 죽는 줄 알았다. 나중에는 정말 초월하게 되더라.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리 내려왔다 손 치더라도 여전히 4,000m 지대여서 그런지 계속 꿈을 꾸는 것 같은 몽롱함이 지속되었다. 내려오는 내내 눈앞에 펼쳐진 '몽유도원도'같은 풍경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Am... I... dreaming?

No, no.  it's real.



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모습을 정말 찍고 싶었는데 완전히 방전 상태였기 때문에, 도저히 구루지가 메고 있는 카메라를 건네받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만큼의 여유도 없었다.  오직 내려가는 일, 그것만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다.



드디어 숙소 초입,  금방 도착할 줄 알았는데 여기서부터도 아주아주 한참을 더 들어가야 텐트가 나왔다. 그 때의 막막함이란!
고생했다, 내 발 내 신발. 온통 흙먼지를 뒤집어쓰고는 검은색이 잿빛으로 변했다.
도착하자마자 건네 받은 따뜻한 민트티, 보약이 따로 없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뭐가 들어가질 않았다. 그 뒤로도 엄청나게 내려왔다. 이때부턴 구루 지를 먼저 보내고 스스로 걷기 시작했는데, 햇빛이 어찌나 따갑고 건조하던지 얼굴이고 손이고 할 거 없이 모조리 다 탔다. 실시간으로 그 자리에서 타는 게 눈에 보였다.


아, 뜨겁다... 근데 이 길이 맞긴 맞는 건가...?


어쩜 그렇게 목적지가 나오지 않던지, 싸부를 바짝 따라가면서도 계속 두리번거렸다. 점점 걸음이 느려졌다. 힘들었나 보다,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사람들과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아예 아무도 보이지 않고 뒤쳐져서 완전 꼴찌가 되었다. 계속 걸었다. 마치 제자리걸음을 걷는데, 누군가 주위 풍경을 계속 바꿔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결코 혼자서는 못 했을 일이다. 다행히 또 곁을 내주는 사람들이 있어 묻어갔다.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잠이 쏟아지는데도, 기억하고 싶어서 자다말고 일어나 일기를 썼다. 글씨는 날라가지만 나는 안다. 그 때 그 순간 그 행복했던 느낌들.




사람이 얼마나 웃기냐면, 이렇게 힘들게 내려오고 나서도 누가 맛있는 걸 주면 또 금방 다 잊어버린다. 내가 항상 그렇다. 도착하자마자 빠쌍이 챙겨 준 따뜻한 민트 티와 갓 튀긴 머티 (인도식 타래과인데, 우리나라 타래과와 똑같이 생겼다)를 먹으니까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끝도 없이 집어먹었다.


숨 못 쉬던 간다라 패쓰 Ganda La pass 에서부터 이미 검은 바지는 하얀 바지로, 신발은 회색으로 바뀌어 발에선 불이 나고 무릎은 뻐근하고 골반은 막 돌아갔지만, 어쨌든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배도 두둑하고 순식간에 행복감이 밀려왔다. 행복이란 게 이렇게나 상대적인 거다. 마음먹기따라 내 한 몸 뉘인 산골짜기 그 작은 텐트가 타지마할보다 더 큰 아늑함으로 다가온다는 것.


신비한 일이다.






저녁은 된장찌개였다.

맵싹하고 진한 된장찌개 한 사발 먹으니 속이 뻥 뚫렸다.

견과류 범벅인 멸치볶음은 또 어떻고.


이 날 하루만, 장장 11시간 산행이었다.

싸부가 다들 정말 애썼다고, 식사 후에 보이차를 뜨겁게 내려주셨다.

모두 다이닝 텐트에 모여 앉아 랜턴 하나 켜놓고 오손도손 이야기했다.

평생 해 본 적 없는 게임도 하면서, 뭔가 무척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맛있는 차가 있었고

아끼는 사람들이 있었고

살랑한 바람이 불어

마음까지 시원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어찌,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는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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