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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안 Sep 05. 2016

14 시간의 공기, 마르카밸리 트레킹 3rd day

Ladakh - India 7월 한 달의 기록 2016

아침에 포터들이 텐트를 정리하기 전  Skiu, Markha Valley, Ladakh  2016



Skiu (3,400m)    --- >    Markha (3,800m) : 8~9 hrs



고도를 많이 높이지는 않지만, 꽤 먼 길이 될 날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바지를 입으려고 보니, 어제 정상 근처 땅바닥에서 구르느라 엉망진창이었다. 아무리 털어도 털어지질 않았다.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기분이 무척 산뜻했다. 그래 또 시작해보는거야! 꿈도 야무졌다.


"옷 다시 갈아입으세요."

"네? 왜요? 너무 더러워서..."

"새 옷 입어도 금방 더러워집니다. 그럼 더러워진 바지가 두 벌 생기는 겁니다."

"그래도 너무 더러운데... 너무 더러우...운...ㄷ..."

어제 그 바지를 입기는 정말 싫었는데, 또 그렇게 새 옷을 입지 말라시는데 굳이 입기도 그래서 한참을 미적거리다가 자물쇠까지 채운 카고백을 열었다. 엉덩이가 하얘진 검은 바지를 다시 입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휴! 그래, 내가 여기 패션쇼 하러 왔나 뭐.



항상 반짝반짝 빛이 나게 닦아둔 스뎅컵과 밥그릇 국그릇 그리고 수저와 포크.  아침식사 전.


통밀 크레이프와 계란 후라이, Breakfast


산행 시작, 날씨가 좋았다.


늘 바위산을 마주한다. 여기는 라다크다.


다시 걷고 싶다, 문득.


건널 수 없을 정도로 강물이 불어서, 산비탈을 빙 둘러 갔다. 경사가 무척 심해서 아찔했다.


바위를 타고 흐르던 시원하고 맑은 샘물, 손을 안 씻을 수가 없다.


대체 이런 풍경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볼 때마다 계속 놀랄 수 밖에.


아침이라 몸이 뻐근하기 일쑤다.  그럴수록 더 부지런히 걸으면서 얼른 부드럽게 순환시켰다.



트레킹을 시작하고 하루 이틀 적응이 되면, 하루 일과가 무척 단순해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텐트까지 갖다 주는 따듯한 wake up tea를 한 잔 마시고, 역시나 텐트까지 가져다주는 뜨거운 세수 물을 받아 작은 대야에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배낭과 카고백을 챙기고, 텐트를 깨끗이 정리해서 나온다.

그럼 텐트는 포터들이 정리하고, 그 사이 우리는 빠상의 손맛이 담긴 아침밥을 먹는다. 양치를 하고 선크림을 바르고 몸을 좀 푼 뒤에 산행을 시작하는데, 이때가 대개 오전 8시 전후다.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오롯이 받으면서 걷고, 걷고, 걷다 보면 어디선가 잠깐 쉬면서 간식을 먹는다.

그러고 나서 또 걷고, 걷고, 걷다가 일정에 따라 시간차가 있긴 하지만 결국 점심을 먹게 된다.

점심을 먹으면서는 좀 더 충분히 쉬는데 이때 아침에 빠상이 나눠줘서 각자 짊어지고 온 도시락을 먹는다.

거의 매일 똑같은 메뉴다.


삶은 감자 두 개, 삶은 달걀 하나, 과일 하나, 샌드위치, 주스 한 팩.



컨디션 조절을 잘 해야 하는 사람은 '카라멜' 들은 건 안 먹는게 좋다고 했다.  무척 좋아하는 건데... 꾹 참았다. 꿀꺽-


일행 중 한 분이 급체를 해서 힘들어하자, 걷던 중간에 싸부가 앉혀놓고 풀어주었다.


구루지가 지어주신 내 이름은 Saraswati. 여기도 Sara 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다 비슷해보이는 풍경같지만, 사진이라서 그런거다. 그 공간에서 걷다보면 자연의 변화무쌍함에 그저 감탄할 뿐!



사람을 느끼고 공간을 느끼는 법에 희미하게 눈을 뜨고 난 뒤,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내 작은 마음에서 늘 복닥복닥 시끄럽던 소리가 잦아들고 크고 시원한 바람의 냄새가 났다.

한껏 숨을 쉬면 가슴이 뻥하고 뚫렸다. 내  다섯 번의 여행은 그렇게 이어져 있다.


늘 돌아오면 잊고 잊어버리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몸으로 기억하는 것만큼 정확한 것은 없으니까 생각이 아닌, 세포가 기억할 때까지

가고 또 갈 수밖에 없었다.


땅을 밟고

하늘을 보고

웃고

숨을 쉬고,

돌이켜보면 그 외에 중요한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한 달씩 트레킹을 갔다 오면 항상 남편이 그랬다.


희한하게 눈에 날카로운 독기가 빠지고, 순해져서 얼굴이 착해 보인다고.

그게 참 좋다고.



등에는 산소통, 앞에는 자기 배낭, 양손에는 또 다른 배낭들...  고마워, 싯따르따.




훗날 모퉁이만 꺼내보아도 살며시 미소 짓게 만드는 사진 한 장,

그 작은 순간들이 내는 큰 힘 같은 것.


크고 대단한 걸 꿈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여기서 소소하게 웃는 것을 선택했고, 그걸로 이미 충분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산에만 갔다 오면 그렇게 부드러워졌던 이유가.

일상에서 자꾸 잊어버리고 마는 이 단순한 진실을 다시금 불러오려고 그렇게나 멀리 갔나보다.


아직도 선명한 기억이 있다.


2009년 에베레스트에 처음 갔을 때, 내가 나도 모르게 엄청 잘 웃었던 것.

웃으면서도 내가 웃고 있다는 걸 스스로 신기하게 느꼈던 기분이라면 이해가 갈까?

언제고 떠올려도 내 몸 어딘가 그 시간의 공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나만 맡을 수 있는 은은한 향기로 말이다.



산을 통해서 조금씩 자라고 있음이 분명하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한 그 속도를 따라 타박타박 걷다 보면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단지 숫자를 먹는 어른이 아니라 제대로 철이 든  말 그대로의,






뚜르뚝을 다녀온 날, 훈드르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별이 총총, 바람이 부드럽게 불었다.

잔디밭 벤치에 모여 앉아 싸부가 내려주는 보이차를 끊임없이 마셨다.


다음에는 어디 가면 좋겠어, 저기 가면 좋겠어.

이럴 거야 저럴 거야, 이래야지 저래야지.

이게 낫지 저게 낫지. 아니야 아니야 맞지 맞지


총천연색 계획을 세우며, 그 밤에만 이미 지구 두 바퀴를 돌고도 남을 만큼의 세계여행을 했다.



맙소사

그래 놓고도 또 간다니,

말이 돼?


싶겠지만, 말이 된다.

말이 되는 게 맞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속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수식어가 항상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한 마디   



도  

고  



우리 참 좋았어, 그렇지?





2010년에 마나슬루 트레킹을 마치고 포카라에서-

내 눈빛이 어떠했나 궁금해서 찾아봤다.


어느 날엔가 거울을 보고선, 영- 얼굴이 아니다 싶으면

그게 여행을 떠날 때가 된 걸로 알아채야겠다.

고운 눈빛 품고 살자.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한 아이처럼 웃을 것



'올여름의 인생공부 ' / 최승자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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