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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안 Sep 07. 2016

15 우리 같은 꿈을 꿀 수 있을까? 3rd day

Ladakh - India 7월 한 달의 기록 2016


음식을 조금 할 줄 안다.


먹어보고 배웠으면 그대로 흉내 내는 것은 그냥 하고, 먹어보지 않은 어렵고 복잡한 요리여도 레시피가 있으면 잘 읽어보고 그대로 구현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아직도 가장 안 되는 것이 있다면 '엄마의 손맛'이다. 딱 떨어지는 맛이 나긴 하는데, 항상 2프로가 부족하다.


그런데 네팔리 쿡 '빠상'의 요리에는 그게 있다. 정말 희한하다. 고산에 뭐가 그리 풍족하겠는가. 박하다, 그냥 없다. 없는데 뭔가를 만들어 낸다. 그것도 아주 맛있고 푸근하게-! 항상, 우리와 똑같은 길을 먼저 걸어와서는 부지런히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날 저녁은 스파게티.


내 생전 참치가 든 스파게티는 처음이었다.


야채를 가득 지지고 볶고, 생으로도 내고, 치즈를 한 바구니 갈고, 기름 뺀 참치가 한가득. 우리가 맛있다고 엄지 척을 하면, 수줍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웃지도 않고 그저 시크한 도시남자처럼 쓱 가버렸다. 그런데 그게 더 멋있었다는 건 나의 사심 가득한 발언!


하지만 뭘 해도 음식에 다정함이 배어 있었다. 그 깊은 따뜻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 산행이 끝나면 늘 메뉴를 달리하면서 제일 먼저 챙겨주던 과자와 팝콘과 티. 겉으로 보면 유통기한 지난, 한국에서는 입에도 대지 않았을 불량식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 그 어느 비싸고 맛있는 간식을 준대도 이것들을 먹었던 기억과 바꾸지는 못 한다. 나는 그때, 딱 그 순간, 꼭 그것들로만 채워질 수 있는 묘약을 먹었기 때문에,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사람의 온기를 먹었기 때문이다.




한자리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 참으로 오묘한 기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살을 부딪히고 같이 밥을 먹는 경험이란, 오늘 나와 마주한 이와 따순 밥 한 끼 나눌 수 있는 기쁨이란 정말이지 대단한 기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삶이라는 게,

사람이 삶을 산다는 게

결국 그게 다가 아닌가?


그보다 중한 게 뭣이 있나.

뭐가 있을까?



석 달 열흘 굶은 사람 앞에

하얀 쌀밥 정성껏 지어

그 앞에 한 사발 떠 놓듯



엄마의 마음이란 게 그런 것일 거다. 그 대상이 누구든 이런 상태가 흘러넘치는 것.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서 늘 이런 마음으로 음식을 한다. 그 작은  기도가 2프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2010년 마나슬루 트레킹할 때, 내가 만든 토마토 스파게티
2012년 마나슬루-안나푸르나 트레킹할 때, 토마토 스파게티와 피클
2012년은 아직 애기네 ! 지금은 4키로가 훅 빠져서 눈이 푹 들어갔다.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은 여러 면에서 라다크와 좀 달랐다. 그리고 그땐 순서대로 돌아가며 저녁식사 당번을 정했는데, 내 메뉴는 스파게티였다.


1~2인분에 익숙한 내가 30인분의 소스를 만들고

5인분씩 면을 삶아 다시 소스에 비벼내어 서빙하는 일은 생각보다 꽤 큰 일이었다. 그곳 또한 너무 척박한 곳이어서 도착한 당일 필요한 채소들을 전혀 구할 수 없었고, 카트만두 슈퍼에서 준비해 간 엔쵸비와 올리브 통조림이 전부였다. 난감했다. 순간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거니까. 머리를 굴리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동네에서 야크 치즈를 샀다. 다행히 야크 치즈는 파마산 치즈보다 백 배는 맛있었고, 심플한 내 스파게티를 순식간에 레스토랑 수준으로 업그레이드시켜줬다.


네팔리 쿡이 세팅해놓은 주방에 들어갔다. 주방이랄 것도 없었다. 빈 공간에 집기 몇 가지 들여놓은 것이 전부였다. 너무 어두워서 헤드랜턴을 썼다. 내가 할 수 있는 언어는 한국말과 영어 몇 마디뿐이었고, 그들은 네팔리 외에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하면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이

소년처럼 해맑은 얼굴로 웃으면서 기꺼이 나를 도왔다. 참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많은 음식을 하면서도 부담없이 즐거웠던 것은. 온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정말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내친김에 얼마 있지도 않은 자투리들을 그러모아 간단 피클도 만들었다. 낮부터 한참을 준비한 끝에 하루의 저녁식사가 완성되었다. 밥 한 끼를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이처럼 여전히 누군가의 정성이 들어가는 큰 일인 거다. 나 또한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을 땐 잊기 쉽지만 직접 해 보면 몸으로 바로 느끼는 것.


Manaslu, Nepal 2012
Manaslu, Nepal 2012
Manaslu, Nepal 2012
Manaslu, Nepal 2012
Manaslu, Nepal 2012


라다크와 히말라야는 풍경부터가 사뭇 다른 게 느껴지시는지? 좀 더 눈에 익숙한 달력 사진 같은 곳이 히말라야. 라다크 사진만 계속 보다가 왠지 비교해보고 싶어서 골라보았다.



이 때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지만 역시나, 각기 다른 마음들을 모아 하나로 꿈을 꾸는 게 좋았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걷고, 함께 먹고, 함께 지냈다.




충분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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