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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안 Aug 23. 2016

08 뚜르뚝,  그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Ladakh - India 7월 한 달의 기록 2016

Turtuk, India  2016
Turtuk, India  2016



아침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배가 고팠다. 어서 점심을 먹어야 했다.

차에서 줏어먹은 주전부리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였다. 먼 길이었다.


드디어


북인도 중에서도 가장 북쪽,

뚜르뚝 Turtuk에 도착했다.


나중에 트레킹이 끝나면 남인도 중에서도 가장 남쪽,  땅끝마을 깐야꾸마리 Kanyakumari에도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대한 인도의 끝과 끝을 보게 될 것이었다.


오는 내내 바위가 그대로 드러난 광활한 골짜기 사이를 누비며 든 생각은 '와, 이런데서도 사람이 사네-' 였다.

중간에 다른 마을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 곳에 한 번 들어오면, 여행자가 아니고서야 나갈 생각을 안 할 것 같았다.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면 누구라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가 세상의 전부일 테다.




Turtuk, India  2016


건물 앞 쪽으로 시원한 강이 흘렀다.


일단 식당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서 의자에 앉아 신발끈을 풀렀다. 앉아만 있어서 그런지 벌써 발이 부었다. 그 사이 주문한 민트티가 나왔다. 연한 설탕물에 그보다 더 연한 민트향이 나다 말았는데, 초록색 신선한 민트잎이 한 장 떠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배고픈 마당에 이것도 감사하지 ! 찹찹거리며 뜨거운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천천히 마셨다.


이제 밥 나오면 되니까.



mint tea, Turtuk  2016


그런데 가이드 말로는 이 식당은 차이니즈레스토랑인데, 우리를 위해서 현지 주민이 근처에서 로컬푸드를 따로 준비한다고 했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고... 아휴, 로컬푸드를 따로?! 그렇게까지 안해도 되는데, 싶으면서도 '로컬푸드'라고 하니 내심 궁금도 하고 기대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왕 그렇다면 마냥 기다리느니 마을 박물관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겠지.

다시 신발을 여며 신고, 후미진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Turtuk, India  2016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은 거다.


나무가 있고 개울이 있고 길을 따라 난 담장 안으로 집이 있었다. 작은 학교가 있었고, 아이와 아낙네와 노인이 있었다. 골목마다 살구나무와 포도나무가 자라고, 들판에 보리가 파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꽃향기가 났다.

우리가 인사하면 수줍으면서도 반갑게 받아 주었다.



쥴레  JULEY !


그들의 인사말이다. 쥴레, 쥴레, 쥴레.


안녕, 안녕, 안녕 !

어디서고 그들은 눈을 맞춰 말하곤 했다.

사람들만큼이나 어감이 정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고운 손길
말무리가 우르르 지나갔는데, 저 작은 말이 갑자기 빠져나와 다른 방향으로 혼자 갔다.






박물관 입구 포도넝쿨   Turtuk, India  2016
날으는 페르시안 양탄자가 생각날 법한, 카페트



박물관은 아주 작았다.

(박물관이라기 보다는, 쪽방 하나에 옛 유물 몇 개를 늘어놓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역시나 작은 이슬람 사원을 둘러보고 나와 이끄는대로 들어와 앉으니 범상치 않은 포스의 노인이 지휘봉을 들고 선다. 뭘까 싶었는데, 진지한 눈빛으로 파키스탄 어느 왕조부터 시작해서 깨알같은 역사공부를 시켜주신다.

그냥 외워서 한다기에는 너무 박식했고, 몸에 밴 무언가가 자연스러웠다. 한 번 들어서는 이름인지 뭔지 구분하기도 어려운 낯선 언어들을 쭉 꿰면서 한참을 설명한 뒤였다.


아아...아...아... 그렇구나, 고개를 주억거리며 듣다보니 맨 끝에 남는 한 사람이 있다.

그 왕의 아들에 딸에 아들에 아들에 아들에 딸에... 죽 내려오는데, 한 사람이 남는다. 그래 한 사람...



어...어....어.........설마...?... 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솔직히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다만, 인도에 침략당한 어느 파키스탄 왕국의 후대 왕손이 이제는 산골 박물관 지킴이를 하며 직접 해설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 이 동화같은 이야기에 더 마음이 쓰인다.


아이러니다.


식당 앞에 흐르는 강 Turtuk, India  2016



급격하게 배가 고파졌다.

더는 무리였다. 발걸음을 재촉해서 다시 식당에 도착했다.

어, 그런데 다른 팀이 먼저 식사를 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 음식은 나오지 않았다.


왜 아직도 안 나온거지?


의아해하며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로컬푸드를 직접 만들고 있어서 시간이 걸린다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뭘 얼마나 많이 준비하길래... 대충해도 되는데...


오히려 우리가 미안해질 무렵, 그보다도 한참을 더 있다가 음식이 나왔다.



어,


다.



Local Food, Lunch  /  Turtuk, India  2016



이게 다였다.


이게 다라고?!!!

그럼 왜 그렇게 시간이 걸린거야?


또 한 번, '로컬푸드'를 직접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혹시 아까 근처에 방앗간이 있더니, 거기서 통곡물을 직접 갈아서까지 부쳐오느라 늦었나?


진심 이해하고 싶었는데 가이드가 난감해하며, 이게 그들이 주로 먹는 음식이라고 했다.

아... 거기서 모든 의문이 끊어진다.


왜 이 오지 산골에 차이니즈 레스토랑이 있었는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뚜르뚝 사람들과 똑같이 먹는 건 무리였다.

 

급하게 메뉴를 추가했다.



 살구주스인데,  발효 중인  살구식초 맛이 났다.  오묘하고 난감한 맛이었다.
맛으로 먹지 않는다. 그냥 먹는다.



이 환경에서 이들의 최선이었을 것이다.

배경을 이해하면 받아들이기 쉽다.

여기서 맛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배를 채웠으니, 그걸로 된 거다.


자연은 풍요롭기도 하지만, 가혹할 정도로 척박하기도 하다.

여기는 이 사람들의 생활터전이다.

그 곳이 궁금해 빼꼼, 들른 건 우리다.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훈드르'로  돌아오던 길   way back to Hunder, 2016



오밀조밀 작고 예쁜 마을을 꼼꼼하게 둘러보았다. 갈 길이 바빠, 더 멀리 있는 계곡에는 가지 못했다.

아기자기하니 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 아쉽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길 역시 아름다웠다.

갈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도대체 라다크는 얼마나 멋진 모습만 계속 보여줄 것인지, 왜 이렇게 사람마음을 사로잡아 버리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러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게 생겨버렸다.

정 중에서 미운 정이 제일 무섭다던데-


나는 내일 또 세상 제일 높은 카르둥라 Khardungla 를 넘어야 하는데, 대체 어쩌려고 그러는지.

이렇게 좋아지면 내가 또 올 수 밖에 없지 않겠나. 그렇게 힘들어 하면서도, 그렇다면 결국 내 마음은 내려두고 몸이 먼저 와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느 라다키 부녀회의 춤과 노래 공연



훈드르 Hunder 에 도착해서는 숙소에 바로 가지 않고, 라다키 공연을 관람했다.

싸부가 도착시간에 맞춰 예약해 두었다고 했다.

네팔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이들의 삶이 워낙 팍팍하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그 지역 소수민족의 공연을 챙겨보면서, 그들의 소소한 살림살이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 끝나면 항상 팁을 잘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쩌면 돌아가는 길 모두의 양손에는 아이들 줄 과자 한 봉지, 저녁 찬거리가 두어개쯤 더 늘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날만은 집집마다 동그랗게 둘러앉은 밥상 앞에서 어느 때보다 맛있는 행복이 모락모락 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딱 그 정도면 참 좋겠다. 우리는 그저 작은 연결고리 역할만으로도 충분하다.



( 그런데 싸부 왈,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공연을 봤지만 이번처럼 동네아주머니 모임 느낌나기는 처음이라고...

무슨 말씀이지 했는데, 나중에 라다크를 떠나기 전에 '진짜 프로들' 공연을 한 번 더 보고 알았다.


으하하. 내가 봐도 이건 너무 수줍다 ! )










그나저나 라다크에서의 하루는 정말이지 길다.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부지런히 움직여서 그런가,

하루하루를 꽉꽉 꾹꾹 채워 보내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일분일초를 그토록 생생하게 보내기는 처음이었다.

왠지 부지런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여행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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