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두아이 아빠되기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큰아이는 오늘도 색연필로, 싸인펜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어느새 작은방과 거실에는
아이의 그림으로 가득하지요.
"아빠! 선물이야"
"우와! 우리 딸 그림 정말 잘그리네~!"
"아빠가 날 사랑해주니까 선물 주는거야!"
"진짜? 정말 고마워~"
삐뚤빼뚤
무심한척 어설픈 그림 한 장을 툭 건내곤,
또 후다닥 달려가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인가 저녁을 먹고 나선,
다짜고짜 쇼파에 아내와 나를 앉힙니다.
아빠, 아침에 출근할때 뽀뽀 해줘서 고마워~
엄마, 품에서 잠이 들때 잘 자라줘서 고마워
유치원에서 새로 배웠는지
손짓 몸짓을 더해가며 노래를 불러줍니다
둘째는 뭐가 신난건지
누나 옆에서 뛰고 난리네요.
아빠 엄마에게
사랑해줘서 고맙단 말이,
예쁘고 감사하면서도
또 한편 미안하고 시립니다.
얼마전,
인터넷 게시판에서 글을 하나 읽었습니다.
하나뿐인 남동생의 결혼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새식구인 올케는 더없이 착하고 마음에 든다네요.
그런데 올케에게 장애인 동생이 한 명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연히 댓글들은 올케가 장애를 가진것도 아닌데 어떠냐는 글이 대부분이었죠.
글쓴이의 설명은 이러했습니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 그 부모는 당연히 신경을 더 쓸 수 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올케는 사랑을 잘 못받고 자랐을 것이다. 의기소침할 수 있다.
실제로 만나본 올케가 너무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같아서 걱정이 된다.
자기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 사랑을 나눠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남동생이 사랑받고 살았으면 좋겠다.
라는 것이 그녀의 설명.
다수의 댓글에선 그녀를 질책했습니다. 심각하게 비난하기도 했지요.
대부분 '누나가 과민반응이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글을 읽으며, 저는 사실 일부 이해했습니다.
비슷한 상황의 남매를 둔 부모로서, 분노하거나 화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미안해졌습니다.
가장 미안한 둘째아이만큼,
큰 아이에게도 말로 할수 없을 만큼 미안해졌습니다.
듣지 못하는 둘째가 큰아이 물건을 뺏어 갈 때도,
그냥 한번 양보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저도 모르게 생깁니다.
갖고싶은 물건을 앞에두고 먼저 손내밀지 않을 때도,
6살 답지않게 배려심이 있다고 칭찬을 했었습니다.
여전히 어리고 어린 큰 아이가,
벌써 어른이 되버린건 아닌가
벌써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되버린건 아닌가
가슴이 미워집니다.
아빠 사랑해줘서 고맙다는 말이,
아빠 사랑해줘요 라고 들려서,
한없이 미안해집니다.
사랑하는 딸.
아빠, 엄마에게 고마워 하지 않아도 돼
아빠, 엄마도 그 순간순간 각자 행복을 위해 사는 거니까.
항상 너희를 위해 사는건 아니란다
그러니,
때론 양보하지 말고 싸우렴.
때론 먼저 달려가 욕심부리렴.
그렇게,
너의 행복을 위해 살으렴
우리는
가족이기에 늘 응원하고,
가족이라서 늘 고맙단다.
가족송 '고마워요'
작사,곡 : 방시혁 , 노래 : 김정인
아빠 아침에 출근할때 뽀뽀 해줘서 고마워
엄마 품에서 잠이들때 잘 자라줘서 고마워
아빠 엄마 아니에요
우리가 더 고마워요
아빠빠빠 고마워요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엄마마마 고마워요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기쁠때에도 슬플 때에도
가족이라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