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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Dec 30. 2015

원소스 멀티유즈 어디로 가야 하는가?

OSMU 소고 (3)

영상 매체가 발달한 오늘날 문자 매체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자 매체는 살아남기 위해 상호텍스트성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단편소설은 패러디와 패스티쉬를 통한 상호텍스트성으로 다양한 형식의 단편소설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장편소설은 영상화(특히 영화화)를 통한 상호텍스트성을 이루며 소설의 영역, 그 고유의  스토리텔링(이야기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또한 장편소설은 인터넷이 발달한  현시대에 맞추어 사이버 문학이라는 새로운 장을 만들며 21세기 원소스 멀티유스 시대의 전략적 원천으로서의 소설 창작의 증가, 장편소설 출간의 가속화이끌어냈다. 오늘날 소설은 이러한 방법을 택하며 그 자체의 변화를 통해 소설의 위치를 유지고 있다.


<심훈 장편소설 “상록수” 표지>



소설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소설의 변화를 시대의 흐름에 맞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상호텍스트성에 따른 소설의 변화가 문학의 위기라 칭해지기도 하지만 이는 후대에 소설의 변화 그 자체로 문학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 예로 심훈의 『상록수』를 들 수 있다. 영화배우 출신인 작가 심훈은 영화 소설 『상록수』를 집필하였고 이를 영화를 위해 시나리오로 각색하였다. 이렇게 시나리오로 각색된 심훈의 소설 『상록수』는 그 속에서 영화적 특성을 쉽게 볼 수 있다. 사건을 순차적으로 나열하거나 대사를 짧게 한 부분 등 영화로 나타낼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은 것이다. 이것은 심훈이 영화 제작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소설에서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는 것이라 볼 수 있다.(김외곤, 「심훈 문학과 영화의 상호텍스트성」, 『한국현대문학연구』 제31집, 2010, p.129-130) 이와 같이 당시의 많은 전통적 문학과 달리 심훈의 작품은 영화적 특성이 드러나기 때문에 다른 전통적인 장편소설들과는 많은 차이를 보였을 것이다. 따라서 아마도 그 시대에는 심훈의 작품이 새로운 문학의 시도 혹은 변화라는 이유로 지금의 상호텍스트성에 따른 문학의 위기와 같은 비판들이 제시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오늘날 심훈의 『상록수』는 문학적으로 인정받는 작품이 되어 문학계에서 자주 거론된다. 심훈의 작품이 시간이 흐르면서 독창적 문학으로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이처럼 상호텍스트성에 따른 소설의 변화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소설의 변화를 비판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그러나 소설의 변화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역시 피해야 한다. 소설의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우리가 중요시해야 할 부분은 상호텍스트성으로 나타나는 소설의 변화가 단순히 형식적인 요인으로 인해서만 주목받는 것인지, 아니면 그 변화가 내용적인 창의성에 기반하고 있는 것인지 잘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에 상호텍스트성의 개념으로 흔히 사용되는 ‘패러디’와 ‘패스티쉬’, 원소스 멀티유즈 시대의 ‘원소스’ 등은 ‘소재 고갈’이라는 현대 이야기판의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획기적인 창작 방법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창의성에 대한 의문점을 가지게 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에 문학을 비롯하여 이야기 창작판의 문제점으로 떠오르는 '소재 고갈' 은 ‘패러디의 패러디의 패러디’와 같이 하나의 원작을 패러디한 작품을 또 패러디하는 현상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원작인 소설을 각색하여 만든 영화, 드라마가  또다시 출판물인 만화로 만들어지는 등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원 텍스트인 영화 ‘자전거 도둑’을 패러디하여 색다르고 독특하게 다가왔던 소설 「자전거 도둑」은  또다시 드라마 ‘자전거 도둑’으로 패러디되는 과정에서 기존 텍스트가 장르만 바뀐 셈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원 텍스트에만 의존하려는 현상이 진행될수록 패러디, 패스티쉬의 본래 의미인 ‘창작’의 목표가 점점 희미해지고, 작가들의 ‘창의성’ 또한 흐려진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패러디는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수용자들에게 비슷한 유형과 이야기 패턴이라는 지루함을 주게 된다. 이렇게 반복된 패러디는 언젠간 수용자들에게 이상 창작의 방법 중 하나가 아닌 단순모방이나 표절의 한 부분으로 인식될 것이다. 또한 원소스 멀티유즈도 소재 고갈에 대한 방편으로만 인식한다면 앞으로 이야기판에서 새롭고 다양한 이야기들은 더 이상 창작되지 않고 소재 고갈은 더욱 심화되고 말 것이다. 특히 원소스 멀티유즈 시대의 전략적 원천으로 -인터넷을 매개로 한- 문학이 철저히 스토리텔링 시장에 종속된다면 문학은 단순한 콘텐츠로서의 제한된 역할에 그치고 말 것이며 이야기판에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지 못한 채 그 한계를 맞고 말 것이다.


패러디와 패스티쉬, 원소스 멀티유즈 시대의 문학의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창작자들의 색다른 시선과 발상이 더욱  중요시될 것이다. 문학, 영화, 드라마 등 현대 이야기판에서 똑같은 이야기가  되새김질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 창작자들은 창의성에 대한 의무감을 지니고 수용자에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소재 고갈은 창작자에겐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가뭄과 같다>


현대 이야기판에서 똑같은 이야기가  되새김질되는 현상의 원인에는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자본의 영향과 이야기 창작자들의 소재 고갈 등이 있다. 전자의 경우 그에 대한 해결 방편으로 작가가 자본의 힘을 지닌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문학을 써 내려가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 소설 「리틀 시카고」를 연재한 소설가 정한아의 회고담에서 나타난 것처럼 '자본이 지배되는 한, 작가는 그 자본에 의해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하여 작품을 빠른 시일 내에 생산하기를 요구'받게 된다. 이는 작품의 양적 증가는 불러올 수 있으나 질적으로는 오히려 떨어지는 작품이 창작되는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미국의 경우 작가가 자기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책을 파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작가는 곧 자본이 되며 따라서 출판사와 같은 거대 자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즉, 자본에 의한 문학의 지배가 상당히 약된다. 전자책의 경우 출판하는 데 자본이 크게 들지 않아 작가 스스로 책을 출판할 때 위험부담도 적은 편이기 때문에 상업주의, 자본에 의한 영향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 그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 평론가 정여울은 급증하는 사이버 문학공간을 좀 더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한다. 즉, 창작을 위한 ‘투자’의 개념을 조금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보자고 말했다. 작가들에게 투여하는 출판 자본만이 창작을 위한 투자는 아닐 것이며, 작가에게 진정한 창작의 영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새로운 문화적 자극이야 말로 무형의 투자일 것이며, 공시적으로는 외국작가들의 창작 환경과 작품 활동에 대한 이해가, 통시적으로는 과거의 국내외 작가들의 각종 창작 환경과 작품 활동에 대한 이해가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종 레지던스 프로그램이나 작가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문화적 인프라의 구축이야말로 당장의 창작을 위한 금전적 투자 못지 않게 중요한, 장기적 안목을 지닌 진정한 ‘투자’가 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단순히 소재 고갈에 대한 임시방편으로 원 텍스트를 차용하고 그것에 의존하려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의 뚜렷한 의도와 그에 알맞은 색다른 시선들이 뒤따를 때 패러디와 패스티쉬, 그리고 원소스 멀티유즈로 나타나는 상호텍스트성은 수용자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와 그 의미를 빛낼 것이다.


<베스트셀러는 잘 팔린, 다시 말해 상업적으로 성공한 스토리텔링이다. 사람들은 서점에서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기보단 주로 베스트셀러 코너를 찾는다.>



마지막으로 앞서 제시한 방법과는 다르게 자본에 얽매이않고, 문학의 본질적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앞으로 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이인화와 장정일의 대담에서 대중이 많이 찾는 베스트셀러를 생산하는 것이 자본주의 시대 문학의 생존전략이라는 것이라는 논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논리에 따르면 대중이 좋은 작품을 찾아 읽도록 하는 노력이 장려될 리 없고 작품의 질적 차이를 논하는 자세가 권장될 리 없다. 이인화의 논점처럼 시장에서 많이 팔리도록 하는 것이 자본주의 시대의 문학이 가져야 할 필요성이라고 보았을 때, 숫자로써 계산될 수 없는 가치와 질의 차이를 중시하는 문학은 수학적 계산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적 가치 안에서 어느새 소멸하고 만다.(『문학·대중·자본주의』, 장남수, 실천문학, 1996)  현대의 독자들이 베스트 셀러만을 찾는 현실은 수요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광고를 통해 능동적으로 창출하는 자본주의의 수법과 닮아있다. 현대의 독자는 자신이 판단한 가치가 아닌 자본으로 만들어진 가치에 의해 문학의 선택을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문학의 본질적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독자 스스로 문학을 찾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허생전』에 담긴 작가의 자본과 상업 영역의 서사적 담론화는 오늘날의 경영자들에게는 물론 산업사회의 여러 문제에 소설적 형상으로 대응하는 작가들에게 유익한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또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나 『삼포 가는 길』에서 나타난 경제적, 문화적 충격은 문학이 쓰인 시대의 상황을 상징적 공간을 통해 고스란히 반영한다.(『소비시대와 상업주의 문학의 향방』, 김종회, 한국의 민속과 문화, 2001) 이와 같이 소설은 분절적 시대의 부정적인 모습에 대해  정교한 관찰로 접근하거나 총체적으오 대응으로써 다양한 가치를 창출한다. 소설이 시대의 본질을 각자의 방식으로 부각하고 그에 대한 개성 있는 해석들을 할 때, 독자는 정신적으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화 시대, 그리고 소비시대의 부정적 현실들이 완강하게 우리 삶의 앞길을 막아선다고 할 때 이를 폭넓은 시각으로 조망하고 해결의 방책을 모색하는 힘은 문학이 가진 정신주의의 덕목임이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 반영적 특성, 그로 인해 시대상과 같이 연구되는 특징을 가진 것이 문학이다. 해외의 예시를 보면 일본의 경우 현재는 시집을 사고파는 경제적 가치를 가진 물질로 보는 것이 아닌 서로 공유하는 정신적 가치를 가진 지식으로 보는 경향을 보인다. 우리나라 문학의 과거와 일본의 예시를 보았을 때에도 문학이 시대를 거스른다 할지라도 문학이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상, 인간이 그 가치를 탐구하고자 하는 이상 문학이라는 불씨는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by 여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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