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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Apr 26. 2016

봄에 끝나는 것이 있나니, ‘봄배구’

다음 겨울을 간절히 기다리는 한 사람


봄. 봄은 따뜻하다. 볼을 베고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이 차츰 사그라들고 햇빛이 따뜻해진다. 사람들의 옷은 점차 얇아지고 밖은 차가움에서 벗어나 밝은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종종 찾아오는 꽃샘추위는 항상 차가웠던 겨울 바람보다 낯설어 더 차갑게 느껴지곤 한다.


봄. 또한 학생들은 개학과 개강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그들에게 봄은 오지 않길 바라는 계절이자 새로움을 맞이하는 설레는 계절이다. 학생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봄에만 볼 수 있는 벚꽃축제에 갈 것이다. 혹은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는 우스갯소리처럼 꽃구경은 커녕 시험준비를 할지도 모른다. 그런 학생들을 비웃듯 벚꽃들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활짝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흩날리는 벚꽃들을 보며 사람들은 말한다. 아 봄이 시작되었다. 그렇듯 봄은 시작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나는 봄이 시작되어 반가운 마음이 아닌, 봄이 와 끝나는구나 하는 아쉬운 마음을 갖는다. 봄에 끝나는 것,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 배구이다.


 배구는 흔히 겨울스포츠, 동계스포츠라 불린다. 겨울스포츠, 동계스포츠는 공식적으로는 눈이나 얼음 위에 즐기는 스포츠를 가리키는 용어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배구, 농구와 같이 한 해에 걸쳐서도 즐길 수 있는 겨울에 즐기는 스포츠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번 15-16시즌은 8월에 하는 리우 올림픽 예선 때문에 좀더 일찍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11월 중순 겨울이 올 즈음부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10월 초부터 시작하였다. 겨울 스포츠라기보단 가을 스포츠에 가까웠던 해였다. 167일. 만 5개월 14일. 4008시간. 10월 10일에 시작하여 3월 24일에 끝난 배구는 설레고 따뜻한 봄에 나에게 헛헛함을 안겨주고 있다.


 정규시즌이 끝나면 ‘봄배구’ 가 시작된다. 2위와 3위가 맞붙는 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에서 이긴 자와 1위의 맞대결 챔피온 결정전. 모든 팀들은 이 봄배구를 하기 위해 긴 시간의 정규시즌 동안 치열하게 경기를 한다. 종종 부상자가 나오며 오심으로 우는 팀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웃는 팀들도 있다. 주전 선수의 부상들로 1위에 내려와 2위를 차지한 팀이 있는가 하면 전반기 모든 경기에서 승점을 따냈던 1위 팀이 후반기에 5승밖에 거두지 못하는 씁쓸한 경우가 있었다. 반대로 전반기에 10승 8패 고만고만한 성적을 보이다가 전무후한 18연승을 기록하여 1위를 가져간 팀이 있었고 여자부 최초의 13연승을 기록하고 후반기에 대역전극을 보이며 1위를 차지한 팀도 있었다. 이 팀들은 차례대로 OK저축은행 러쉬앤캐쉬,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현태캐피탈 스카이워커스, 기업은행 알토스이다. 이들은 간절히 원하던 봄배구를 하였고 챔피온전에 진출하여 승부를 한 팀들이다.


 난 이번 시즌에 남자배구는 현대캐피탈을, 여자배구는 현대건설을 응원하였다. 둘의 정규시즌 순위는 1위와 2위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봄배구의 결과는 정 반대였다. 18연승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던 현대캐피탈은 힘 한 번 못 써본 채 져 준우승을 하였고 현대건설은 전반기의 좋은 모습을 되찾아 플레이오프 경기까지 합하여 5연승을 하며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 두 팀의 선수들 중 난 신영석과 한유미 선수를 가장 응원하였다. 


 신영석은 우리카드 한새 팀 소속이였으나 트레이드로 인해 현대캐피탈로 왔다. 큰 코와 전 농구감독 허재와 닮은 모습으로 코재란 귀여운 별명을 가진 국가대표 센터 이다. 하위권에 머물던 팀에서 순식간에 우승을 바라보는 팀으로 되었기에 그에게 우승은 정말 낯선, 쳐다볼 수 없었던, 누구보다 더 갈망했던 것이였다. 그런 그였기에 심각한 무릎통증에도 참고 경기를 뛰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현대캐피탈보다 더 잘했던 OK저축은행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1차전에서 자신의 실수가 많았던 터라, 그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한유미는 동생 한송이와 자매 배구선수로 유명하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은퇴했으나 번복하고 자신의 친정팀 현대건설로 돌아왔다. 그전에 인삼공사 배구단에서 우승을 맛보았으나 ‘한유미의 팀’ 이였던 현대건설에서 우승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녀 또한 고질적인 무릎부상이 있었으나 어려운 팀 사정을 알고 후반기 경기를 대부분 소화하며 희생하였다. 그녀의 결정적인 득점으로 인해 현대건설은 수월하게 경기를 가져갈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간절함은 봄에 결실을 맺었다. 둘은 눈물을 흘렸지만 다른 눈물이였으며 결과 또한 달랐다. 봄은 따뜻하지만 차갑다.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의 봄배구는 끝났지만 ‘봄’은 시작된다. 그들은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시작한다. 새로운 시즌은 차가운 겨울에 시작되지만 그들은 봄에 희망을 갖고 준비한다. 또한 봄배구를 하지 못한 팀들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봄에 끝난 나의 배구는 다시 봄배구를 위해 뛸 것이다. 


                                                                                                         by 안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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