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은 봄보다 찬란하여라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길거리에 벚꽃의 향기처럼 은은하게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아! 봄이 왔구나.’ 내가 봄이 온 것을 느낀 것은 날씨가 따듯해져서도, 새삼스레 달력을 보게 되어서도 아니다. 바로 거리에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이라는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해 봄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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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봄, 갓 스무 살의 나는 ‘벚꽃 엔딩’과 함께 캠퍼스를 거닐었다. 하지만 난 ‘벚꽃 엔딩’ 이라는 곡이 싫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 제 짝을 찾아가는 친구들이 부러워졌고 괜스레 외로운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 애꿎은 봄에게 꽃샘추위같이 차가운 샘을 부렸다.
SNS에는 봄이 되어 흐드러지게 핀 벚꽃들과 벚꽃 못지않게 활짝 핀 친구들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정말 행복한 시기를 ‘봄이 왔다.’라고 표현하는데, 친구들에게는 정말 ‘봄’이 온 것 같았다. 친구들의 모습은 ‘봄’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완연한 봄 앞에서 나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춥디추운 겨울을 혼자 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애써 ‘무관심’이라는 외투를 입고는 아무렇지않은척했지만 꽁꽁 언 손과 발을 녹일 수는 없었다. 그것이 나의 스무 살의 봄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 기억은 4년이 지난 지금도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그 외투는 더 두꺼워져 추위에는 많이 무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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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게 가장 추운 1월 끝자락에서 겨우내 꽁꽁 얼었던 고인 눈에도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벚꽃의 색과 비슷한 목폴라 니트에 검정색 코트를 입은 그녀는 수줍게 내게 다가왔다.
대학로에서 식사와 영화를 함께하고 카페에서 얘기하는 어찌보면 틀에 박힌 지극히 평범한 만남이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있어서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그날의 기억은 너무나도 선명해서 지금도 눈을 감고 회상하면 다시 그날로 돌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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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닮은 그녀는 나랑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나는 막내지만 그녀는 장녀였고, 나는 닭 가슴살이였고 그녀는 닭다리였다. 이렇게 다른 우리는 오히려 이상하리만큼 말이 잘 통했고 다른 점조차 잘 맞았다. 아니 잘 맞춰졌다. 닭 가슴살을 좋아하는 나에게 닭다리를 혼자 다 먹을 수 있다며 좋아했다. 봄 햇살처럼 나를 감싸주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외투로 두껍게 나를 감쌌던 내가 그녀의 따듯한 햇살아래 어느새 외투를 하나 둘씩 벗고 있었다. 가장 추운 1월 말이었지만 내 기억엔 적어도 그날 대학로만큼은 따듯한 봄이었다.
1월 28일 그날 밤, 그렇게 나에게도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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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오늘도 거리에는 벚꽃 엔딩이 들려왔다. 그런데 싫지가 않았다. 평소라면 봄만 되면 들려오는 이 노래에 벚꽃 연금이라며 봄과 봄 노래에 대해서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별 관심도 없던 이 노래의 가사 말이 아주 또렷하게 들렸다.
나에게 있어서 봄은 그저 겨울과 여름의 징검다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이번에 오고 있는 봄은 뭔가 달랐다. 봄 같은 그녀가 나에게 봄을 선물한 그 이후부터 봄이 오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려지고 설렜다.
4년전의 햇살이 없던 봄은 비로소 햇살과 함께 봄내음과 싱그러움으로 내게 다가왔다.
봄에 대한 기억이 다시 쓰여지고 있다.
by 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