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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Jul 01. 2016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놀이와 인간-게임에서 확인하다

 로제 카이와라는 사회학자의 [놀이와 인간]이라는 책을 공부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세 가지. 


 첫째, 왜 학자들은 쉬운 말을 이리 (더럽게) 어렵게 말해 읽는 이로 하여금 영겁의 고통을 안겨주는가.

 둘째, 놀이는 장애물을 극복하면서 즐거움을 수여하는데, 놀이에서의 장애물은 임의로 만들어진 것이며 자신이 수준이 모자라면 피해가거나 여러 번 반복하거나, 무시할 수 있지만, 현실의 장애물은 그러한 배려가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놀이에서의 장애물은 ‘가짜’장애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짜’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만약 이 ‘가짜’가 없다면 놀이가 자아내는 풍부한 창의력도 없어지는 것이다.

 셋째, 어렸을 때 소꿉놀이나 숨바꼭질 등을 경험함으로써 성인이 되었을 때 필요한 규칙을 은연중에 미리 습득했다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게임의 예를 들 수 있겠다. 플레이어 간의 거래를 통해 경제에 대한 생각의 기틀을 잡았고 가난한 캐릭터를 키우던 나는 적은 능력치로 상대적으로 강한 몬스터들을 사냥하기 위해 나의 손재주를 키워야 했기에 아곤(경쟁)이라고 해석되는 나의 불타는 승부욕을 체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로 로제 카이와는 놀이의 재미 요소로 아곤(경쟁), 알레아(운빨), 미미크리(흉내), 일링크스(아찔함)을 꼽았다. 이 중에서도 나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의 게이머들은 아곤에 불탔다.


 이 중 첫째에 집중하면 공부 더 하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니, 둘째와 셋째 문장에 대한 생각을 담아보려 한다.




나의 유년시절


 나의 초,중,고 시절은 대부분이 그렇듯 공부와 게임으로 압축된다. 게임과 공부를 풀어서 말하면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에 그 둘 중에서 당연 게임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도 대부분 사람들과 일치할 것이다.

 처음 게임을 접한 것은 사촌형 집에서 했던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대전 게임이었다. 이런 종류의 게임은 반드시 승자와 패자를 만드는데 컴퓨터로 실력을 늘려서 사촌형들에게 도전하곤 했다. 그들은 나에게 넘을 수 없는 장벽과 같았고 그 벽을 허물기 위해 수없이 노력했었는데 어머니의 한숨이 늘었던 것도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중학교 시절은 스타크래프트의 시절이었다. 방과 후 친구와 스타 한판이면 7교시의 묵은 피로가 싹 가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친구에게 연패를 당하는 날이면 모니터와 본체를 고이접어 분리하여 신명나게 매질하곤 했다. 그 뒤 고등학교 시절도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또 하나의 대전 게임을 하며 이번에는 적뿐 아니라 아군이라는 장애물도 극복해 나가며 나의 신분(RATING)을 드높이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공부도 게임과 차이가 없어 보인다. 개인의 실력(암기력)을 길러서 장애(문제)를 극복하고 그에 따른 레이팅(점수)을 얻는다고 봤을 때 공부도 아곤이다. 하지만 왜 한 쪽만을 선호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피드백의 속도와 상호작용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피드백이란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었을 때 다가오는 보상이며 게임의 피드백 속도는 매우 빠르다. 또한 게임이라는 경험을 한 뒤에는 온라인상에서 게임이 만들어낸 유머코드 같은, 일종의 화두 역할을 하는 각종 부가적인 콘텐츠를 함께 즐긴다는 데 있어서 골깊은 차이가 있다. 한 마디로 나의 학창시절은 아곤의 역사라고 줄일 수 있겠다.



나와 RPG게임


 내가 지금까지 대체로 이야기한 것은 아곤이 주된 게임이었다. 그런데 RPG게임들은 위 내용과는 또다른 경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만화와 유비하여, 앞서 말했던 것들이 장애물을 극복하는 소년만화였다면 RPG게임은 일상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작고 새로운 사회를 구축하는데 이를 통해 타인과의 평등한 관계에서 대화하는 경험과 죽고 나서 다른 플레이어가 떨어뜨린 아이템을 함부로 주워 먹지 않는 상호간의 존중을 꾀했으며 게임 운영자가 즉각적으로 반응 할 수 없는 게임 상 운영의 맹점을 유저들이 보완하면서 사회와 집단에 대한 사유를 넓히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더욱이 고등학교 경제교과서로 숫자놀이를 배우는 것보다 게임 속에서 장사를 하면서 깨우치는 것들이 더욱 빠른 효과를 가져다주었으며 매 게임마다 다른 자아를 형성하는 일종의 미미크리(흉내)를 적용하며 즐거움을 경험했다. 즉,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게임에서 플레이 때마다 실증한다.

 나는 지금까지 게이머로 지냈고 그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신봉하고 있다. 허구적인 장애물과 그것이 주는 지적유희를 즐기며 타인과 소통하며 커뮤니티를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by 박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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