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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요 Jul 06. 2017

몬테 발도의 첫 인상

이탈리아 북부 여행



아침 일찍 잠에서 깨었다. 내가 누웠던 더블 침대에는 잔이, 맞은편 싱글 침대에는 보리가 아직 곤히 잠에 빠져있다. 스르륵 빠져나와 재빨리 샤워를 하고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거실로 나왔다. 테라스 한쪽에서는 옆방 커플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나는 반대쪽 구석에 놓인 테이블에서 책을 보아도 되는지 마리사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특유의 경쾌한 이태리어로 대답을 하고는 금세 달려와 썰렁한 철제 테이블에 따뜻한 커버를 덮어 주었다. 그리고 커피 한 잔과 쿠키도 내어 놓았다. 작은 테이블 뒤로 조금 헝클어진 그녀의 침대가 슬쩍 보였다. 그녀의 공간을 내어준 것에 감사하며 책을 펼쳤다. 얼굴을 스치는 찬 바람이 시선을 어지럽혔다. 패러글라이딩을 하기에 바람이 좀 거센 것은 아닐까 살짝 걱정이 되었다.  





푸석푸석한 머리를 한 사내들이 일어났다. 커다란 식탁은 마리사 이모가 차려낸 음식들로 가득 찼다. "이 파이는 내가 직접 만든 거야. 아, 잼도 있는데 가져다줄게. 이 잼은 너희들 뒤에 보이는 저 나무에 열린 배로 만든 거야. 커피가 부족하네. 더 만들어 줄까?" 그녀는 직접 만든 음식들을 다정하게 권했다. 말로만 듣던 '할머니가 직접 만든 파이'는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달고 부드러워서 진하고 고소한 커피와 잘 어울렸다. 아침을 차려 주고 잠시 집을 비운 그녀를 대신해 남은 음식들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했다. 이렇게라도 그녀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마리사 이모 집의 전화를 빌려 패러글라이딩 예약을 확인하고, 렌터카를 빌려 말체시네로 향했다. 잔은 낯선 환경에서의 운전으로 조금 긴장을 한 것 같았다. 회전 교차로가 거듭 나타날 때마다 우리는 몇 번째 출구로 나가야 하는지 소리를 높여 함께 수를 세었다. 수많은 회전 교차로를 통과하여 데센짜노에서 말체시네까지 가는 길은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예상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우리는 잠시 헤매었고, 휴대폰마저 무용지물이 되어 패러글라이딩 업체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패러글라이딩으로 지상에 내려오겠다는 바람도 결국 흩어져버렸다.





작은 케이블카에서 내려 큰 케이블카로 갈아타면 확연히 산에 오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기울기가 급해 산 꼭대기에서 누군가 케이블카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올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특히 이 날은 정상에 점점 다다를수록 안개가 심해 마침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마침내 1790m 몬테 발도 정상에 도착하면 우리가 전혀 다른 공간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금세 깨닫고 옷매무새를 점검하게 된다. 나는 긴소매 옷을 꺼내 입고 잔의 점퍼까지 빌려 입었다. 몬테 발도 역시 두꺼운 안개를 겹쳐 입고 있다. 그리고 좀처럼 안개를 벗지 않았다. 우리는 발끝으로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더듬더듬 안갯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엄청난 안개였다. 조금 앞서 가던 사람을 이내 삼켜 버리는 안개 너머로 무엇이 있는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잠깐의 빈틈 사이로 보이는 흐릿한 풍경과 어렴풋이 들려오는 워낭소리가 마음이 더욱 움직인다. 안개로 뒤덮인 높은 산 위에 심드렁히 널브러져 있는 소 떼를 상상하며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여느 산 꼭대기의 컵라면 가격처럼 두 배 정도 비싼 값을 예상했지만 카푸치노의 값은 지상의 여느 카페와 다르지 않았고, 천상의 분위기 때문인지 그 맛은 곱절로 따뜻하게 몸을 데워주었다.





이제 보리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아직도 안개에 파묻힌 몬테 발도 정상을 뒤로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 케이블카가 한번 쉬어가는 동안 나는 영문 모를 복통으로 주저앉았는데 보리가 담아준 사진에는 어째서인지 웃고 있다. 토끼 앞니가 훤히 보이는 흔치 않은 사진을 담아준 고마운 보리는 독일로 돌아갔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잔에게 시련을 안겼다. 잔이 미리 예약 해 놓은 다음 일정, 그가 기대했던 알프스 산맥을 포기하고 나는 이곳 가르다 호수에 하루 더 묵고 싶었다.






정사각형 사진은 모두 포토그래퍼 김보리가 찍어 주었습니다. www.kimb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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