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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요 Jan 27. 2019

잡초의 생일



  서른세 번째 생일이다. 캐나다보다 13시간 빨리 내 생일을 맞이한 가족과 친구들에게 하루 일찍부터 축하를 받았더니 생일날이 배로 길어졌다. 사랑하는 친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낯선 곳에 떨어져 있는 내게 축하를 건넸다. 노래방 앱으로 불러 담은 축하 노래, 지산 록 페스티벌의 시규어 로스 공연 실황이 각종 이모티콘과 함께 카카오톡으로 도착했다. 아침 식사를 하러 주방에 갔더니 델핀이 귀여운 생일 카드를 남겨 두었다. 어제 친구가 보낸 노래를 들으면서 이게 내 생일 선물이라며 은근히 자랑한 덕분이다.  



  오전에 할 일은 2박 3일 카누 캠핑을 떠나는 게스트를 위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직접 만들고 건조한 파스타 소스, 후무스, 각종 수프 등은 뜨거운 물만 더하면 간편한 한 끼 식사가 된다. 나는 요한나가 준비한 식단에 따라 건조식품을 담고 각종 저장 식품을 챙겼다. 빵과 간식을 비롯하여 요리와 식사를 위한 모든 재료는 적당한 컨테이너에 소분하여 담았다. 덕분에 게스트들은 카누에 최대한 무게를 줄인 음식을 담고 패들을 저어 안전한 공간에 카누를 누이고 캠핑을 즐길 수 있다. 누군가의 캠핑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작은 흥분이 맘을 간지럽힌다. 게스트들이 온전히 누러야 할 설렘을 내가 조금 나눠 가진 것처럼 즐거운 작업이다.



  점심시간이 시작될 무렵 산장 식구 모두가 내 생일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다 같이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기로 했다. 머랭이 뭔지도 모르면서 달걀흰자 거품을 만들고 있는 등산복 차림의 잔은 우습기도 귀엽기도 했다. 요한나가 메모지에 손수 적어 놓은 레시피를 따라 만든 반죽을 나란히 두 개의 틀에 나누어 오븐에 넣어 두고서야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주방 한쪽 벽에 걸린 살라미를 얇게 썰어서 오물거리니 고급스러운 고기 맛이 난다. 맥주를 향해 울부짖는 마음을 다독이며 건강한 점심을 마칠 때쯤 경쾌한 알람 소리가 케이크의 완성을 알렸다. 밀가루를 한 줌도 넣지 않은 진득한 초콜릿 케이크는 가운데가 잔뜩 부풀어 올랐다가 곧 꺼졌지만, 나는 한껏 설레어 부푼 마음을 숨기고 손님이 비운 객실을 정리했다.



  우리 산장의 객실은 각 방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수달, 비버, 늑대, 곰 아마도 캐나다와 어울리는 동물의 이름을 가진 방은 고유의 색깔이 있어, 우리는 가끔 빨간 방 청소해야 해, 파란 방에 여분의 베개가 필요해 따위로 할 일을 정리했다. 여전히 수달을 영어로 발음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고 있지만, 델핀과 함께하는 객실 정리는 손발이 척척 맞아 순조롭게 진행된다. 델핀이 없었으면 나 혼자 얼마나 무료했을까 생각하니 이 소녀가 더욱 사랑스럽다. 저녁 때는 재료를 다듬으면서 몇 마디 불어를 배웠다. 내 혀가 어려운 발음을 찾아 입 속에서 헤맬 때마다 델핀은 깔깔거리며 좋아했다. “내 이름은 킴이야. 초콜릿 빵 하나만 주렴.”를 불어로 하면 "쥬마 뺄 킴, 쥬 뷰 엉 팽오쇼콜라 씰부뿔레."가 된다. 델핀은 소가 우는 소리를 ‘뮤’하고 흉내 내며 '뷰' 발음을 가르칠 줄 아는 친절한 불어 선생님이었다.



  나도 델핀에게 한국어를 몇 마디를 가르쳐 주곤 한다. 내가 그녀의 이름을 한글로 적어 보여주었더니 그녀는 자신의 한글 이름이 못생겼다고 속상해했다. 듣기에도 보기에도 어느 하나 나무랄 것 없는 예쁜 이름인데, 아름다움의 기준이 이렇게 다르다. 어떤 날은 대마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Weed’가 한국에서는 보통 잡초를 뜻한다며 한국어 ‘잡초’를 가르쳐줬더니, 이번엔 이 단어가 너무 듣기 좋다며 며칠이 지난 후에도 되묻곤 했다. “Weed가 한국어로 뭐라고? 나 이거 꼭 적어 놔야겠어.” 이런 게 바로 이것저것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애써 가꾸지 않아도 무성히 자라는 잡초의 매력일까.



  산장을 가득히 채운 달콤한 초콜릿 향이 모두 사라진 후, 저녁 식사를 마친 우리는 조촐하게 모여 생일을 축하했다. 조그맣게 자른 케이크에는 작은 초가 하나 꽂혀 있었다. 내 나이만큼 가득 꽂힌 초를 마주하지 않아 내심 안심하면서,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소원을 빌고 촛불을 껐다. 간절하게 소원을 비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삼십 대가 되었지만, 일 년에 한 번 주어진 기회가 왠지 아쉬운 마음에 급히 마련한 소원이었을 것이다. 부모님이 바라고 사회가 기대하는 화려한 꽃을 피우지는 못했지만, 특별한 재주와 거창한 계획 없이 잡초처럼 묵묵히 지내는 캐나다의 일상과 어울리는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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