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슬픈 꽃이 생겼다.
밴쿠버 시간으로 오후 6시 30분, 일찍 퇴근을 하고 부모님께 보이스톡을 걸었다. 한국은 오전 10시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아빠는 내게 물었다. 이제 일어났나? 딸의 늦잠을 나무라는 듯했다. 아니, 나 이제 퇴근하는 길이에요. 아빠는 내가 캐나다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또 잊으셨나 보다.
5월 중순, 거제도는 노란 꽃으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거제도를 노랗게 물들인 꽃의 이름은 금계국이었다. 금계국의 원산지는 아메리카, 열대 아프리카, 하와이제도라고 한다. 아메리카라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대륙이 아닌가. 오랜 외국 생활에 이민자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외국인 노동자로서, 비행기로만 10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 거제도를 지배하고 있는 금계국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몇 번의 검색 끝에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금계국은 '큰 금계국'이고, 국립생태원이 외래 식물 유해성 2등급으로 지정한 생태계 교란종으로, 토종 식물을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나는 어쩐지 국립생태원이 '큰 금계국'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만 같았다. 고향을 떠나서 타지에 정착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국립생태원은 절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이제 겨우 일흔이 되신 아빠가 치매 증상이 보인 것은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한다는 딸의 연락 때문이었다. 5월 20일, 딸이 한국으로 가는 날을 아빠는 끝내 기억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계속 물어보셨다고 한다. 점점 심각해져 가는 아빠의 증상을 충분히 짐작케 하는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와 달리, 휴대폰 너머 아빠의 목소리를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딸, 지금 서울에 있어?' 아빠가 내게 물을 때마다 '아니, 나 아직 캐나다에 있지. 아빠는 딸이 엄청 보고 싶은가 보네.' 비슷한 내용의 대화가 거제도와 밴쿠버를 몇 번 오고 가고, 5년 만에 거제도에서 부모님을 만났다.
너무나 오랜만에 만난 아빠는 더 이상 꽃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치매라는 병은 최근의 기억부터 아빠의 머리에서 서서히 지우고 있었다. 엄마는 몇 번이고 아빠에게 꽃이름을 알려주고, 잘 기억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아빠 우리가 어릴 때부터 자주 가던 횟집 이름이 뭐야? 금곡횟집 맞지? 내가 꽃이름 물어볼 때마다 금곡횟집부터 생각해 보자.', '아빠, 지금 손가락에 금반지 끼고 있지? 나 없을 때 엄마가 아빠한테 꽃이름 물어보면 금반지부터 쳐다보고 생각해 봐.' 길을 잃을까 봐 두려워 엄마 손을 꼭 잡는 아이처럼, 산책하는 내내 아빠는 내 손을 잡았다.
아빠, 엄마와 2주 동안 거제도 곳곳을 여행하며 많은 사진을 찍었다. 엄마와 함께 사진을 찍을 때, 아빠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치매 증상을 내보인 이후로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만 따라다니는 아빠의 휴대폰 속에 엄마의 연락처는 '달콤해'라고 저장되어 있었다. 이토록 서로에게 다정한 부모님이 하루하루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지낼 수 있다면, 아빠가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는 꽃이름 하나 정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무슨 문제일까 싶었지만, 나는 그것이 너무나 서글펐다. 치매는 부모님을 곁을 8년이나 떠나 타국에 살면서, 연락조차 자주 하지 않은 나를 2등급 불효자로 지정했고 나는 어떤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큰 금계국의 꽃말은 행복, 활력, 생명력, 건강, 장수라고 한다. 아마도 강한 번식력 때문에 지어진 꽃말일 것이다. 아빠에게 꼭 필요한 꽃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아주 슬픈 꽃이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