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람이면 좋겠어 ep.18
지난 9화에서 슬쩍 내비쳤던 새로운 도전, 회계 공부를 시작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어
내가 선택한 첫 관문은 '전산세무 2급'이었어. 사실 내 마음속 최종 목적지는 '재경관리사'라는 조금 더 높은 산이었는데 무턱대고 정상에 도전하기보다, 먼저 기초 체력을 다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전산세무 2급은 이전에 접해본 적도 있어 익숙하기도 했고, 재무와 원가, 부가세와 소득세라는 회계의 뼈대를 잡기에 가장 적당한 선택지처럼 보였기에 나는 전산세무2급에 도전하기로 했어
그렇게 결연한 의지로 이론 공부에 매달린 지 3주...
일단 재무회계의 원칙부터 소득세의 복잡한 계산식까지 일단 한번씩은 훑었어. 다만 이게 문제인 게 분명 자주 본 문제고 답도 고를 수 있는데, 머릿속은 마치 안개 낀 새벽 거리처럼 하얗기만 해. 단편적인 지식들은 떠다니는데, 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큰 그림, 즉 '목차'라는 지도가 그려지지 않는 느낌이었어
사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어...
이론을 어떻게든 한차례 훑고 난 나는 뒤늦게 이 전산세무 2급은 실기 비중이 무려 70%에 달하는 시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 사실 이미 알고 있었던 부분인데 뭔가 외면하고 싶었던 것 같아 실기를 공부해야 한다는 걸 말이야;;
뭐 어쨌든 닥쳤으니 부랴부랴 실기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기출문제를 돌리기 시작했어.
하지만 기초 공사가 덜 끝난 자리에 급하게 가구부터 들여놓으려니 사달이 나기 시작했지. 이론은 이론대로 머릿속에서 뒤엉키고, 실기는 실기대로 손가락 끝에서 겉도는거지 전표 입력 한 줄을 넣을 때마다 멈칫거리는 나를 발견할 때면, 머릿속은 그야말로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는 기분이었어
시험은 4월 4일 낮 12시인데 과연 그때까지 이 실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으려나...
주변에서는 '마음 편하게 먹어라', '너무 부담 갖지 마라'고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
사실 나는 이 공부를 시작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목표를 말했었어. 누군가에게 내 목표를 선언하면 이뤄질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그런데 그 결연했던 다짐이 지금은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버린 것 같아.
만약 떨어지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호기롭게 내뱉었던 말들이 무색해질까 봐, 그 실망스러운 모습이 타인의 눈에 비칠까 봐 겁이 좀 나는 것 같아
정말 잘해내고 싶었는데...
하지만 막상 책상 앞에 앉으면 느껴지는 그 막막함에 압도되어, 공부를 시작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머뭇거리며 보냈어. 어떤 느낌인지 알지? 뭔가 공부를 시작하면 내 수준이 들통날까봐 무서운 거 있잖아
'내가 조금만 더 끈기 있는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조금만 더 엉덩이 힘이 좋은 사람이었다면'
자책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괜찮은 사람이 된다는 건,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인정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과정일거라 생각하며 조금씩 나를 다독여보고 있어
비록 시작은 머뭇거렸고 과정은 뒤죽박죽일지라도, 남은 며칠만큼은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고! 4월 4일, 시험장을 나올 때 스스로에게 '잘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비록 지금은 걱정이 앞서지만, 이 불확실한 발걸음 끝에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
응원해주면 좋겠어
나도 열심히 해볼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