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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리톡 Jul 23. 2020

MBTI 성격유형을 정반대로 알고 살아온 나

나는 누구일까요 01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자기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다. 내 삶의 주인은 당연히 나여야 한다. 그런데 나는 여태까지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오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20여년간 MBTI의 성격유형을 정반대로 알고 살아왔다. 나의 성격유형은 한국인의 2%에 해당되는 ENTP로 분석되었다. 하지만 나는 30여년간 한국 여성의 대다수에서 나타나는 성격유형인 ISTJ로 알고 지내왔다.
안 맞는 옷에 억지로 나를 구겨넣은채 "행복하다. 만족한다." 는 주문을 외우며 살아온 셈이다.


그 껍질 속에 말랑하게 살아있는 내 알맹이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 2년전 이맘때였다. 남편과 함께 상담을 받게 되었다. 그 때 교수님께서는 내 상태가 심폐소생술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하셨다.
일단 아내부터 살려놓고 보자고 남편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이야기를 쭉- 듣고난 후 교수님의 첫마디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왜냐하면 그 첫마디에 내가 울음이 터져 통곡하기 시작했으니까.


"많이 힘드셨겠어요. 지금 입고 오신 그 옷도 본인 스타일이 아니에요. 이런 옷을 입을 사람이 아닌데...애썼네..."


문자 그대로 옷에 대한 이야기였다. 검정색 가디건을 입고있었다. 다 울고 난 후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여기 소매 뒤집어보면 안쪽은 제가 좋아하는 초록색이에요..."



나에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다. 나와 정확히 12개월 +15일 터울이다. 즉, 내가 태어나고 백일도 되기 전에 엄마에게 동생이 찾아왔고 내가 돌이 되자마자 동생이 태어났다...
나에게는 23개월 터울의 아들, 딸이 있다. 그래서 엄마가 나와 동생을 낳았을 때, 그 짧은 터울의 의미를 너무나 잘 알게되었다. 산후조리도 못하고 연년생을 낳아서 포대기로 한명 업고 한명은 팔로 안고 장을 보러 다녀야했다는 엄마의 그 고된 시간들이 같은 여자로서 너무나 속상하고 한편 죄송하기도 했다.

아직 말도 못하는 돌쟁이 아가였던 내게 간난아기 동생이 생겼다. 당연히 부모님은 그 아기에게 더 집중하셨을테고 나는 부모의 관심이 절실했다. 그래서 아기였던 내가 선택한 방법은 엄마 아빠가 좋아하실만한 일을 해서 칭찬받는것- 이었다. (비뚤어져서 관심받는 방법을 택하지 않은 내가 대견하다 ㅜ)
내가 하고싶은것보다 엄마가 원하는 것을 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향하는 마음을 애써 부정하며 엄마가 기뻐하실 일을 했다.



덕분에 엄마가 기억하는 나의 어린시절은 말썽한번 부리지 않는 순종적인 아이, 착하고 말 잘듣는 아이였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재수하지 않고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대학원에서 석사도 마치고, 국가연구소에 취직하고, 20대를 넘기기 전에 결혼도 했다. 아이도 아들, 딸 골고루 낳았다. 나의 삶은 전형적인 범생이의 행보였다. 엄마, 아빠가 어렸을 때부터 스무살이 될 때까지 거의 매일 이야기하시던 자식농사의 결실을 다 이루어(?) 드렸다.



나는 나를 잃어버린지 오래되었다. 내가 어떤 아이인지 생각해볼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 맞는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 안의 진짜 나는 저렇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죽은듯이 살아가기에는 너무 active 한가 보다.끝까지 나 아닌척 살았어도 좋을 뻔했는데, 불가항력적으로 진짜 내가 스멀스멀 삐져나오다가 어느날 겉껍질이 튿어져버렸다...NP의 성향으로 그렇게 긴 시간동안 감춘것이 기적이라고 한다. 부모의 사랑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어린 내가 얼마나 몸부림을 쳤을지...

큰 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이 도대체 어디서 만들어진 말인지 너무 궁금하기도, 원망스럽기도 했다. 아빠는 매일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서 어떤 살림의 밑천을 마련하고 싶으셨는지, 우리 아빠의 성품에 비추어 판단컨데 칭찬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계셨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다 커서 부모가 되고 나서야 내가 누군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상담은 적절한 타이밍에 나를 살려냈고 진짜 나를 대면하게 되었다. 엄마의 틀에 맞추기 위해서 나는 정반대의 모습을 꾸며냈었는데, 그것들을 하나씩 반대로 돌려보았더니 무채색의 삶에 무지개빛 전구가 켜지는 듯 했다. 내 과거를 되감기해보니 순간순간 진짜 내 모습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때마다 밖에서 무언가가 나를 톡톡 두드려 제자리로 들어가게 했었다. 그 무언가는 바로 부모님의 기대- 였다.



작년에 엄마와 아이들과 한달간 제주살이를 하며 엄마께 그 모든 이야기를 전했다. 엄마는 나의 이런 깊고 깊은 상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셨고 적잖이 놀라셨다. 엄마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고 엄마를 전혀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다만, 앞으로의 나의 모습은 엄마가 알던 나와 좀 다를 수 있으니 놀라지 마시라고 귀뜸해드렸다 :)

 


이 어마어마한 세상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믿지 않는다. 분명히 어떤 창조주가 만들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도 그분이 만드신 것이다. 창조주는 나를 사랑하고 나에 대한 특별한 계획이 있을것이다. 나를 이런 부모님에게 태어나게 하신것도, 그런 틀 안에 잠시 가둬두셨던 것도 이유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쯤 효도했으면 이제부터는 나다운 나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내가 누구인지 탐색하면서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되면 얼마나 기쁠지 기대가 된다:)


내 삶을 능동태로 만들기 위해서 내가 풀어야할 첫 번째 숙제는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매일매일 생각한다. 집안일을 하면서도 산책을 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 하고싶은 것은 또 무엇? 되고싶은 것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직은 자꾸 가족들이 원하는 것, 아이들을 위한 것, 남편을 돕기 위한 것으로 한정되고있다. 내 마음이 있는 곳에 내가 있겠지. 내 마음은 지금 어디있나? 돈이 있는 곳에 내가 있나? ㅎㅎㅎ 더 생각해보았다. 내 마음 깊은 곳으로 찾아가 나를 만나자고 자꾸 자꾸 손내밀어보았다.


그래서 만난 내가 좋아하는 것은...

책읽기, 텃밭일하기, 피아노치기, 베이킹하기, 찬양듣기, 여행가기, 가족들과 함께하기, 중고거래하기, 화초, 발효, 도서관, 전통방식 배우기, 흙냄새, 새로운 경험하기, 새로운 것을 배우기, 새로운 곳에 여행하기, 새로운 사람 만나기, 새로운 모든 것!!! 그리고 .


내가 싫어하는 것은...

쇼핑하기,수다떨기, 예쁘게 디자인하기, 유행 따라가기, 시간과 돈 낭비하기, 같은것 반복하기, 남들이 다하는 것, 도시의 아스팔트, 인공적인것, 화학조미료, 무채색


내가 하고싶은 것은...

너무 많다. 너무너무 많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만도 이정도인데 더 알게되면 분명히 더 많아질 것이다. 나의 원함을 드러내는 것이 이렇게 어색하고 부끄러운 이유는 오래 머물던 껍질에서 나오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서겠지? 조금 더 단단하고 당당한 내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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