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자(!)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언제나 과학자가 꿈이었던 나는 꿈을 이룬 셈이다. 학부에서 환경 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역시 공학이지만 자연과학 쪽에 가까운 생태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전공이랑은 좀 다르지만 연관 있는 분야의 국가 연구소에서 기후변화 관련 연구를 해왔다. 중요한 프로젝트에도 참여해보았고, 업무 보고하러 청와대도 가봤고, 군사 분계선 근처에 가서 샘플링을 하기도 했다. UN이 주최하는 외국의 회의에도 갔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쓸 일 없는 국제 자격증도 하나 땄다.
결혼 후 아이를 23개월 터울로 둘을 연달아 낳고도출산휴가만 마치고 회사로 복귀했다. 일 욕심도 많았고, 인정의 욕구도 컸고,무엇보다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출산 일주일 전까지 야근하고, 출장, 교육 등 workholic으로 살았다. 그리고 임신 중에 박사학위까지 병행하느라고 평일에 주 1회는 학교에서 3과목 수업을 연달아 듣고토요일에는 풀타임으로 출근을 하는 생활을 1년간 했다.
태교가 뭔가요? 회사 업무와 학위 공부가 태교였다. ㅎㄷㄷ다시 생각해도 몸이 두 개였나 싶은 강행군이었다.그래서 애기가예민하고 까칠한 건지도 모르겠다. (분명 그 때문일 거다...)
둘째를 낳고도 복직해서 직장을 다니던 어느 날, 첫째 아이에게 엄마의 빈자리가 보이기 시작했다.나도 엄마가 처음인지라 두려웠다. 자식 농사 망치면 헛 산 인생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래서 모든 인정의 욕구를 애써 뒤로하며 눈 딱 감고 직장을 그만두었고 박사학위 과정도 포기했다. 만삭에 캠퍼스 언덕을 오르며 고생한 그 시간들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때 내가 얼마나 단호박이었는지,주위에서 직장이 아깝다, 공부한 게 아깝다며 많이 말렸지만전혀 귀에 들리지 않았다.결과적으로 지금은 내가 직장과 학위를 포기하고 아이들 곁으로 온 것이 참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02_새로운 곳으로 이사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얼마 후부터 아이에게 아토피 증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온 얼굴이 멍게처럼 빨갛게 뒤집어졌는데 속수무책이었다. 알러지 검사를 했더니 약 24개 항목에 알러지 반응이 있다는 결과지를 받았다. 마늘, 양파 등 양념과 소고기, 돼지고기 등 모든 고기류, 과일류 등 일반적인 식재료 대부분에 알러지가 있다는 말도 안되는 = 지킬 수 없는 결과지였다. (아직도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실험과정을 파악해보고 싶을 정도로 이해되지 않는다.)
식품으로는 아이의 아토피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 공기가 좋은 경기도 근교로 이사를 했다. 아파트지만 창문을 열면 숲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이제 내 직장은 상관이 없으니 남편 출퇴근만 고려하여 출퇴근이 가능한 반경의 최대치로 선택했다.
이사를 왔다는 뜻은 바로 앞동에 살던 친정엄마와 멀어졌다는 뜻이다. 혼자서 애를 키워본 적 없고 살림해본 적도 없고,직장만 다니던 내가 2세 4세 꼬맹이 둘을 데리고 집에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이사한 동네에 마침 어린이집도 자리가 없어서 두 달쯤 애들이랑 같이 셋이서 집에 있었는데... 뼈만 남도록 살이 빠졌다. 다들 나만 보면 밥은 먹고 사냐고 물어보고, 밥 사주겠다고 하던 매일이 멘붕이었던 나날이었다.
(나는 육아보다 밭일이 백배 쉬운 1인)
03_나는 어렸을 때 책을 좋아했다. 지금도 좋아하고 앞으로도 쭉 좋아할 것 같다.
나는 책을 좋아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좋아하고 있다.대학 때 전공 공부를 너무 힘들게 하느라 잠시 독서 단절의 기간이 있었지만 그 외에는 늘 꾸준히 책을 읽어왔다. 어린 시절에 화장실에서 책 읽느라 한 시간씩앉아있었던 기억이많이 난다. ㅎㅎㅎ 화장실에서 이문열의 삼국지 10권을 다 읽었다. 10권짜리 책을 3번도 더 읽었다.
책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읽어온 것이 나에게 유익했다는 사실을 20대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경험으로 체득했다고나 할까? 나중에 내가 아이를 낳으면 내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도록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결혼 전부터 있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부터는 사교육을 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책 육아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육아도 책으로 배웠고, 애들한테 책도 많이 읽어주었다. 내가 읽어주는 것 말고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서 좀 더 전문적으로 독서지도에 대해 배우고 싶었다.교육을 받아보려고 알아보던 나는 여차 저차 해서 아예 독서지도사 자격증까지 따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혼자 자격증 공부를 하고 동영상 강의를 80시간 정도 듣고 과제도 내고 오프라인 시험을 보고 자격을 취득했다. 자격증을 따긴 했지만 써먹을(?) 생각은 아니었고 우리 애들 독서지도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시작한 공부였기 때문에 일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자격증 관련 연수를 해준다고, 실제 교수법을 가르쳐준다는 등등의 유혹에 넘어가서회원을 모집하고 독서 수업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하하-
그래서 나는 지금은 독서지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당연히 나의 첫 번째 우선순위는 육아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방치되는 시간은 수업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풀타임으로 활발하게 일하진 않았지만 어느덧 스리슬쩍 5년 차가 되었다. 아이들의 친구들을 메인으로 그룹을 짜서 수업을 하고 있고,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저녁식사 이후나 주말에는 수업을 하지 않는다.
첫째와 둘째가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동시 입학하던 작년에는 나는 멀티가 안되기 때문에 수업을 잠시 쉬었다. 그리고 방학에 우리 애들 가르치기 위해서 또 팀을 짜서 방학 특강을 진행했다. 수업이 많다고 유능한 강사가 아니라는 강한 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ㅋㅋㅋ
지금 우리 아이들은 다행히도 책을 아주 좋아한다. 9세가 된 아들과 7세가 된 딸은 책이라면 뭐든지 다 재미있다고 한다.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모습 - 아이가 2-3시간 푹 빠져서 책을 읽는 일-도 자주 있다. 한글도 4세 때 깨쳤고, 독서 독립도 6세 때부터이루어졌다. 엄마가 읽어주는 속도보다 자기가 눈으로 읽는 게 더 빠르다고... 처음부터 혼자 읽고 싶어 했다. (그래도 엄마가 읽어주라던데... 엄마 입에 모터를 달아도 한계가 있으니 그냥 혼자 보는 걸로 ㅎㅎ)
아이러니하게도 첫째는 한글을 깨칠 때 책으로 배우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벽에 붙여주신 ㄱㄴㄷ 포스터를 보고 자음, 모음 조합으로 한글을 배웠다고(친정엄마께 들은 얘기 ㅜㅜ) 들었다. 그때는 분명 첫째가 책에 관심이 없었는데, 첫째가 책을 좋아하게된 시점은 분명히 내가 독서 수업을 한 이후이다. 6세가 되자마자 1월부터 친구들과 같이 수업하면서 우리 첫째에게 탁월한 성취욕, 승부욕이 자극되었던 것 같다. 둘째도 6세가 되면서부터 책을 읽어주다가 눈에 띄는 통문자를 하나씩 알려주는 방법으로 한글을 두 달만에 마스터했으니 책 육아로 얻은 이득이 벌써 많다.
04_세 번째 직업으로 물망에 오른 것이 있는가...?
미래학자들이 예측하길 현대인들은 수명이 120세까지 연장될 것이고 직업 교체를 위한 준비기간을 5년으로 잡았을 때 일생 8개의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책에서 얼핏 본 이야기라 출처와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굉장히 인상 깊은 이야기였다.
직업의 기준을 경제적인 수입 유무로 본다면,나의 두 번째 직업은 독서지도사라고 치고, 앞으로 6개 남았다. (잠시 한살림에서 일했던 적도 있지만 알바 정도로 해두자.)
나는 블로그 카테고리를 한두 개로 정하는 게 블로그 운영에서 제일 어려울 이슈일 정도로 관심사가 다양하다. 하지만 결혼 후 남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유학을 포기했듯이, 직업도 가족이 협조해주지 않으면 실현하기 어렵다. 당연히 환경과 여건도 중요할 것이고.현재 물망에 오른 나의 새로운 직업은 남의 편의 반발이 극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남의 편이 나의 진심을 알아줄 때까지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을 쌓고 잘설득해보려고 한다. (아마 다시 태어나야 할지도ㅋ)
나는 세 번째 직업을 위해 오늘도 작은 습관 하나를 실천한다. 글을 쓰며 나를 알아가는 것이 작지만 중요한 습관이다.오늘도 내가 글을 쓰면서 강의 경력이 있다는 사실을 하나 알아냈다.(아이들 독서 수업ㅋㅋ) 글을 쓰는 활동은 나를 좁혀가는 깔때기인 것 같다. 알짜배기 진액이 모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마음으로 오늘도 마음의 소리 한 줄을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