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곤란하게 하긴 싫어서 괜찮다 말하는 거짓말쟁이가 되고서야.
익숙할리가 없다.
그냥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잔잔하되 유쾌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하고 꿈을 꾼다. 예전과 달리 크게 무서울 것 없는 꿈을 자주 꾼다. 건강한 컨디션의 유쾌한 모습으로 사람들과 섞여 내 일에 매진하고 마침내 목표했던 분기를 끝내며 동료들과 자축하는 그런 꿈.
요즘은 깨고나면 제일 무서운 꿈이기도 하다.
너무나 평범한데, 불가능할 꿈인 것들은 무섭다.
각자에게 당연했던 어떤 존재나 일상을 잃고나서 그 상실을 없던 일로 만드는 꿈을 꾸고나면, 다시 한 번 사무치게 커다란 상실의 구멍이 뻥 뚫린다.
목에 가슴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숨이 차서 핏대를 세워가며 호흡을 붙잡다가 숨죽여 끅끅대고 울었다.
어떤 일들에 내 침묵의 이유가 있다고해도 그건 겁이 많은 나를 위한 변명이지 모든 것을 위해 괜찮은 건 아니다. 참거나 버티고 이해하는 노력외에 잘 싸우고 맞춰가는 것도 노력이다. 그런걸 해내는 사람들이 사실 더 멋있고 시원시원해서 좋다. 마구잡이로 내지르는게 아니라, 어떻게든 납득할만한 쉼표나 마침표 연결점을 만들기 위해 용기내는 일.
어릴땐 내가 제일 웃긴 친구이고 싶었던 때도 있고,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다 필요할 때 언제고 곁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었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곁에서 행복할 수 있는 작은 틈이었다. 아마 그냥 그런 절대적인 내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바람을 다른 사람에게 실천했던 것 같다.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내가 그런 주변인이 되면 되니까.
몇가지 일들로 나는 내가 되고싶은 유쾌한 겉옷을 어설프게도 못 걸칠만큼 피폐하고 내면이 뿌연 사람이 되었다. 흔한 것들이다. 가정의 불화, 폭력, 왕따, 성범죄, 살인. 내 일생의 머릿속 메모리에 있는 것들이니 아무리 구겨넣거나 비워내려해도 비울 수 없는 흔한 것이 되었다.
요령이 너무 볼품없는 내가 부끄러워 개차반인 것 같은 날은 버겁다. 너무 아파서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고나서도 조금 머리가 돌아가면 '그래서 진짜 그만큼 아팠던거야?'라고 스스로도 불신한다.
수십번 수백번 사회생활하며 '괜찮아요, 아팠어요, 죄송해요,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을 해왔다. 15년이 넘었으니 어쩌면 더 많이 했겠지. 나도 힘들지만 듣는 사람에게도 좋은 말은 아니다. 나를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유대라는 이유의 걱정과 고문이고, 나를 불신하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미움의 씨앗이고, 아무래도 상관없는 사람에게는 저런게 말버릇인 사람. 그래서 더 몹쓸 인간같았다.
나를 좋아하기 힘들땐 사람을 더 좋아하면 됐고, 좋아하는 사람때문에 힘들땐 한계를 넘기고 내 마음을 여러쪽으로 찢어낼때까지 견뎠다.
덜컥 내가 좋다는 낯선 사람은 대부분 무서웠고, 익숙한 사람은 찬란했기에 깨질 것 같이 예뻤다. 안 되는 걸 알아서 더 혼자가 쉬웠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나는 이렇게 혼자도 함께도 어려워 아무것도 못 하게 됐을까.
꺼낼 수 없는 믿음을 내게서 찾기 쉽게 발가벗은 연인이고 친구이고 싶었다. 세상에 정말로 너를 이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럼에도 네게 목 메지 않고 너무나 편안해. 그러니 누군가 필요할 땐 나를 부담없이 찾아줘. 보여줄 수 없고 강요하는 것 또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니까 그저 허락되는 한 필요한 때에 머물래. 반대로 상대에게 내가 불필요하거나 걱정을 주거나 나를 좋아해서 같이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면 도망치게되는 아이러니. 절대 누구와도 다시 함께 할 수 없을 딜레마.
특별히 이제는 원망도 없다. 바람빠진 웃음만 조금 나온다. 어차피 그렇게 그런 연애와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시간을 돌려서 사람이 아닌 더 멋져보이는 다른 기회를 잡았더라도 내 몸과 내 내면들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테니까. 지금의 내 힘듦은 오롯이 내 것이려니.
누군가들을 증오하고 미워할 에너지가 있었다면 난 더 악바리로 열심히 살았을까? 속으로 겉으로 도토리 줍는 사람들. 좀 더 의미없이 소중하고 예쁜 것들이 그득해서 더이상 무언가를 혼자 주울까 말까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만의 별들이 눈과 마음에, 오늘과 내일에 어떤 형태로든 반짝였으면.
당신은 반짝이고 있나요?
나는 어떤가요?
사라지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