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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un 30. 2021

여전히 아이 같은 너에게_진영에게

오늘도 취업을 고민하는 친구의 고민 문자를 받고, 우리는 함께 잡플래닛의 회사 리뷰를 찾아봤어요. 퇴사한 회사를 평가하는 ‘잡플래닛’의 리뷰들은 대부분 기업에 대해 비판적인 경우가 많죠. 친구가 입사를 고민하는 기업 역시 평가가 널을 뛰었어요. 별점을 하나 준 어떤 이는 ‘체계가 없고 윗 사람들이 엉망진창이며 복지가 전무하다'라고 썼고, 그래도 별점을 세 개나 준 어떤 이는 ’문화가 수평적인 건 장점이지만 수익 구조가 없음‘이라고 평가했더라고요. 

저나 친구나, 직장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을 한 10년쯤 하면 일에 대해 좀 알아지려나 했는데, ‘일은 이러이러한 것이고 이렇게 하는 것이 정답이다’라고 명문화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면 기자 일을 10년 한 저에게 다른 직무를 하라고 준다면 신입인 셈이고, 직장과 직무, 직책, 주변 환경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따라 고민은 ‘CASE BY CASE’(케바케)라 어떤 사람의 업무 고민에 명확하게 해결점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거예요. 몇 년차가 되어도 우리는 조금씩 성격을 달리한 고민을 해가면서 자기 상황 속에서 최선 혹은 차악의 선택지를 찾아가야 합니다. 

출처: Unsplash

부모나 선생님,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 작가, 그 어떤 현자도 나에게 딱 맞는 해결법을 제시해줄 순 없습니다. 상황마다, 연차마다 직장마다 고민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누군가의 이름을 빌어 이 글의 제목을 뽑은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있을 수 있어서입니다. 이 글의 제목의 주인공인 진영은 제 후배의 이름이고 누군가의 가명이기도 합니다. 


살기 위해 어서 탈출해!


진영씨, 저는 당신이 왜 마지막 면접에서 몇 번이나 고배를 마셨는지 알 수가 없어요. 당신이 인턴으로 저와 함께 일한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제가 볼 때 당신은 정말 열정이 넘치고 유능하고, 못하는 게 없는…내가 사장이라면 꼭 뽑고 싶은 인재거든요.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보는 눈이 없어서라고 말하면 위로가 될지 모르겠네요. 제가 함께 일했던 후배들을 떠올려 보면 요즘은 모두가 뛰어나서 개인이 차별성을 가지기가 어려운 시대 같아요. 최종 면접에 5명이 올라갔고, 회사에서 정해준 T.O가 1명뿐이라면 정말 5명 모두 뛰어나서 한 명만 고르기가 어려운 거죠. 이력서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점수들은 상향 평준화되어서 영어 공인 점수도 너나 할 것 없이 높습니다. 다들 열심히 사니 나 하나 열심히 사는 건 잘 두드러지지 않아서, 도리어 불공평하게 느껴집니다. 

대학 때에는 높았던 자존감도 취업 과정에서 낮아지고, 실패가 반복되자 당신은 시계추처럼 기분이 왔다 갔다 했어요. 어느 날에는 ‘그냥 마음 편하게 가지려고요’라고 했다가, 어느 날에는 ‘제가 많이 부족한가 봐요’라고 했다가… 눈높이를 낮춰서 작은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두 달, 한 달을 다니고 그만둬야 했어요. 그 회사들은 제가 대략 이야기만 들어도 너무 이상해서 저 역시 ‘당장 그만두라’고 당신에게 말했죠. 나이가 들면서 제가 깨우치게 된 게 몇 가지 있다면, 남에게 섣불리 “이혼해” “회사 때려쳐”라는 조언은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친구가 아무리 남편 욕을 해도 옆에서 같이 북치고 장구 치면 우정만 박살 납니다. 나는 친구일 뿐이고 남편은 가족이니까요. 직장도 마찬가지예요. 다들 각자의 사정으로 불합리함을 참고 있는데 “그런 이상한 회사가 어디있어? 당장 때려쳐!!”라고 섣불리 조언하는 것은 현명한 선배의 태도가 아닙니다. 제가 당신의 생활비를 책임져줄 것도 아니라면요. 하지만 저는 당신이 이전 직장들을 그만둔 것은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가 사용하게 개인 금융정보를 내놓으라는 직장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당장 그만둬야 하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당신의 직장 내 처우와 직면한 상황을 들었을 때 ‘빨리 탈출하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습니다. 

출처: Unsplash

당신은 애써 장점을 찾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만뒀으면 해요. 불합리한 것은 불합리한 거예요. 입사 후 일요일에 한 번도 쉬지 못하고 있는데, 팀장과 팀원들이 진영씨에게 일을 몰아주고 퇴사를 했다? 그 사람들이 퇴사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거예요. 어떤 일이든 손을 번쩍 들며 “제가 할게요”나서는 것은 열정일 수도 있지만, 좋은 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직장에서는 굳이 나서지 마요. 악덕 기업들은 ‘오호라, 좋은 호구가 하나 들어왔군’ 싶을 겁니다. 얼마나 좋겠어요? 전문가를 뽑아서 시켜야 할 업무를 기존 직원에게 시킬 수 있으면? 인건비를 아낄 수 있으니 이게 웬 횡재인가 싶을 겁니다. 그런 곳에서는 ‘내가 그래도 이걸 해냈구나’ 성취감을 찾을 필요 없습니다. 자꾸 이렇게 짧게 회사를 다녀도 괜찮을까,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자기 위로의 방식은 좋지 않아요. 우리가 잘 해야 하는 건, 자신에겐 긍정하되 거절 또한 잘 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에게도 숙제이지만, 상대의 거절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회사에게도 내 의견을 잘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그럼에도 진영씨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거절을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길게 대화하고 싶었지만 일이 얼마나 바쁜지 당신은 잠깐의 짬도 내지 못했어요. 그래요. 앞서 말했지만 제가 뭐라고 ‘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조언을 할 수 있겠어요. 당신의 상황은 당신이 가장 잘 알고,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겠죠. 더 긴 이야기는 만나서 해요. 달콤하고 맛있는 것들을 먹으면서. 


글/ 김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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