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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un 30. 2021

탈가정 여성 청소년, 집을 찾다_나의 EXIT

나의 첫 번째 비상구길거리


그저 자유로움만 상상하며 아무런 대책 없이 집 밖으로 향했습니다. 가진 돈이 없어서 낯선 사람들에게 저를 맡기는 경험을 겪어야만 했고, 그 과정과 결과는 폭력적이었습니다. 그렇게 돈을 얻어도 청소년인 저는 제 몸 하나 누울 공간이 없었습니다. 청소년이기 때문에 찜질방도 숙박업소도 피시방도 만화방에도 가서 잘 수 없었습니다. 집을 계약하는 것은 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주거가 안정적이지 않으니 모든 것이 불안정하기만 했습니다. 주거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것이 필요했지만 결국 주거가 불안정하면 다른 것들을 얻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보내는 날들이 많아졌고, 식료품 시식 코너에서 끼니를 때우는 날도 늘어만 갔습니다. 제 모습을 지켜보는 누군가는 그런 삶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은 선택이 아니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돌아갈 곳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존재를 인정하는 곳이야말로 내가 돌아갈 곳이자 ‘나의 비상구’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두 번째 비상구시설


같이 지내던 일행을 통해서 가출 청소년 보호시설, 통칭 ‘쉼터’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쉼터에 입소하는 순간 부모님과 다시 연락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저에게 되어 있는 가출 신고도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남아 있는 모든 용기를 모아 부모님께 다시 연락했습니다. 집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과 고등학교를 자퇴하겠다는 뜻도 전했습니다. 17세라는 나이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기에 너무 이른 나이였을까요? 하고 싶은 공부도 없었고 일을 하고 싶었지만 시작조차 어려웠습니다. 3개월이 지나 쉼터에서도 나가야 할 때가 왔습니다. 새로운 쉼터에 가기 위해 인터넷에 ‘청소년 쉼터’를 검색했습니다. 여러 청소년 쉼터들이 검색됐고 가까운 곳의 전화번호를 적어 동전을 챙겨 공중전화로 향했습니다. 부모님의 연락을 피하려고 집을 나서자마자 핸드폰부터 없앴기 때문입니다. 많지 않은 동전 탓에 마음은 조급했지만, 쉼터는 이런 제 마음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출처: Unsplash

희망을 품고 전화했지만 한 이미 15명의 정원이 가득 차 받아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결국 다른 갈 수 있는 쉼터를 찾아 헤맸고 다행히도 갈 수 있는 쉼터가 있었습니다. 쉼터라는 공간은 내가 자고 싶을 때 잘 수 없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없었고, 하고 싶은 프로그램만 할 수 없었고, 같이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도 지내야만 했지만, 거리에서 살지 않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쉼터에서 지낼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는데 아무런 대안이 없어서 쉼터를 옮겨 다녔습니다. 여러 쉼터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하기도 하고 댄스 학원도 다녔습니다. 봉사활동도 하고 짧게 일도 하고 연극도 해봤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나의 비상구’는 그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청소년과 비상구 


탈가정 청소년에게 비행 청소년, 가출 청소년이라는 꼬리표만 달아서는 그 무엇도 해결하거나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요? 거리에 있는 청소년에게 어떤 위험이 일어나는지, 위험을 겪은 후에 어떤 비상구로 향해야 하는지 충분히 전해지고 있을까요? 아직도 거리에는 비상구를 찾고 있는 청소년이 무척 많습니다. 청소년을 만나는, 만나야 하는 많은 사람이 좀 더 다양한 것을 상상했으면 좋겠습니다. 통제와 격리가 아닌 서로 함께 삶을 살아내는 것을 우선으로 하길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의 분위기와 기관 혹은 단체의 운영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사람들의 관점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화의 시작이 어렵지만, 시도하는 많은 사람이 생기길 바랍니다. A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 단체들이 함께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상구는 어디에나 존재해야 합니다. 당신의 시작과 결심이 많은 사람의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비상구 나의 EXIT  


계속 떠돌다가 우연히 만난 움직이는청소년센터 EXIT. 그곳은 저에게 환대를 아끼지 않았고 언제 어느 곳에서나 마주칠 때마다 환호와 반가움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저의 어떤 이야기든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주거에 대한 불안감을 털어놓았더니, 자고 싶을 때 잠을 잘 수 있고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수 있었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은 시간에 먹을 수 있는 아주 기초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입주를 위한 기다림 끝에 그곳에서 저의 삶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주거가 안정되니 미래를 향한 다양한 방향을 고민하고 계획하는 시간을 여유롭게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내 삶뿐만 아닌 다른 사람의 삶도 살펴보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회문제가 남의 일이 아닌 결국 나의 일이 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과거의 고통을 다시 어루만지고 나의 역사를 기록하고 나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돌볼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가 무언가 해내길 바라는 것이 아닌 함께 무언가 하고 싶다고 제안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날 이해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나를 완전히 꺼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그 순간에 저도 그들을, 그 공간을 ‘나의 비상구’로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의 다른 주거 시설들은 그 공간을 보고 주거 시설의 역할을 잘해낼 수 있겠냐는 우려를 표했습니다. 

출처: Unsplash

문제와 갈등이 없는 집단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와 갈등을 어떤 시선으로 누군가의 관점에서 풀어갈 것인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은 저의 일상에 따뜻함으로 스며들어 단단함을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서운한 일이 생겨도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제안해도 제게 주는 따뜻함과 환대, 애정이 좋아서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 사람들과 공간은 멈춰 있던 제 시간을 다시 흘러가게 했고, 잠시 지나쳐가는 무언가가 아닌 다시 돌아가는 ‘나의 비상구’가 되었습니다. 그곳도 결코 완벽한 공간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를 했다는, 불가능이 아니라는 의미 하나만으로 충분한 공간입니다.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집을 떠나 밖으로 향하는 것을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떠나는 방법만이 문제와 갈등을 없애는 방법인지 깊은 고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문제와 거리를 두는 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거리로 나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상황들에 처하거나 목격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이미 거리 위에서 비상구가 필요한 분들이 계신다면 조금 더 주변을 둘러봤으면 좋겠습니다. 거리를 걷다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보이면 망설임 없이 찾아가세요.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고 원치 않은 난처한 상황을 겪을 수도 있고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문을 두드리면 그중에 ‘나의 비상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집을 나선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닌 만큼 우리를 위해 준비된 많은 문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나의 비상구’를 꼭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꼭 찾길 바랍니다. 저에게 비상구는 길거리이기도 했고, 시설이 되기도 했고, 사람이 되기도 했고, 공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많은 비상구를 통과해 오면서 지금의 저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비상구는 예전에도 있었을 것이고, 지금 당신 앞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다른 비상구를 만나거나 내가 누군가의 비상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내 어려운 상황이 해결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우리는 반드시 버티고 극복해서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이 너무 힘들다면 행복했던 과거를, 즐거울 미래를, 힘든 현재를 극복할 나 자신을 상상해보세요. 당신이 문을 두드린다면 많은 사람이 함께일 것입니다.


Thanks to. 지난 10년간 어두운 밤거리에 환한 비상구의 임무를 마친 용사들과 이상한나라의 시민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합니다.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제 비상구입니다. 당신들을 만날 수 있어서 나의 시간이 지금까지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글/ 곰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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