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흔한사람 Jul 05. 2024

자매여행, 우리 참 잘 살아냈다

그렇게 어렸던 우리가 어느새 이렇게 자라서 이탈리아라니.

얼마 전 연년생 자매인 우리는 그렇게 벼르고 고대했던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엔 유럽여행을 기획해 보고 도시도 여러개 더 다녀올 생각도 했지만, 우리답게 최대한 걷고 잔잔하게 추억하는 선택을 했다. 로마에서 자유여행을 시작해 딱 하루는 당일치기로 남부여행 가이드를 받고, 작지만 아름다운 도시 피렌체에 가장 오래 머물렀다. 그런 여행에서 기억나는 소소한 스침들의 기록.




피렌체 전경 명당이라는 미켈란젤로 광장의 번잡함보다 더 우리다운 장소를 원해 헤매던 중, 언덕배기 작은 성당 앞 노상방뇨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포기하려고 왔던 길을 돌아보니 좀 전의 그 할아버지가 손짓했고, 어설픈 영어대신 손짓과 본인의 언어로 저 쪽의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더 멋진 뷰가 있다고 가르쳐주셨다. 그렇게 찾아간 조금 더 큰 성당엔 교인들이 운영하는 작은 상점 하나와 납골당을 지키는 묘지기 고양이와 가만히 책을 읽는 중년의 연인이 존재하는 바라던 풍경이 있었다.



하루에 두 번씩도 들르던 슈퍼마켓에서 가장 높은 선반의 낯선 과자를 노려보며 먹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조용히 다가온 내 가슴팍만 한 키의 히잡을 두른 그녀는 빤히 간절한 눈으로 본인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영어도 띄엄띄엄 알아먹는 내가 갸우뚱하자 손을 뻗어 다른 과자를 가리켰고 난 사양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더 슬퍼진 표정을 보고 혹시 싶어 그 과자를 꺼내드렸더니, 몇 차례 고개를 숙이며 활짝 핀 미소를 보답해 주었다.



피렌체 막바지, 괜히 마음에 드는 적당한 기념품들을 사고 싶어서 혈안이었다. 구글링과 네이버에서 찾은 가게들을 뒤로하고 바깥에 걸린 명화 콘셉트의 고양이 엽서에 이끌린 1n연차 집사. 이탈리아 무채색 삽화가 그려진 2025년 달력을 하나 상점 주인께 내밀고 소박하게 8유로를 계산했다. 그는 내 어깨를 톡톡 치더니 돈 안 내도 되니까 걱정 말고 따라오라했고, 왁싱 스탬프 관련 물건들이 놓인 앞에 멈춰서서는 내 풀네임과 좋아하는 컬러를 물었다. 이내 붉은 왁스를 녹인 후 A와 H를 교차해 새긴 멋진 왁싱 스탬프 책갈피를 만들어 선물해 주셨다. 마치 자기 아이에게 처음 무언가를 가르쳐줄 때의 아버지 같은 태도와 느린 말투, 쉼표, 말장난을 재치 있고 상냥하게 섞어주셨다. 첫인상은 무뚝뚝한 느낌이었는데, 왁싱 스탬프를 뚫어져라 바라보다 세트 구색을 사긴 어려우니 포기했던 내 생각을 들켰던 걸까? 그냥 우연히 마음 내킬 때마다 하던 이벤트셨을까? 아무렴 어떤가 내가 그렇게 행복했는데.



또 다른 날, 슈퍼마켓에서 오늘도 플랜을 리드하느라 지친 동생의 나이트 포션을 고르고 있었다. 이국의 애송이들에게 맥주맛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발그레한 뺨의 할아버지는 비틀비틀 어떤 맥주를 추천해 주었고, 거절을 잘 못 하는 우리 자매는 유교미소를 장착하고 그 맥주를 집어 들었다. 할아버지는 만족한 미소와 말을 건넸고, 동생이 말하길 ‘언니, 이거 이렇게 쓰는구나. 추천하는 건 봤는데 못 읽어서 못 샀던 맥주야!’

그래서 그 맥주 이름이 뭐라고요? 동생님 가르쳐줘!



그림과 이세계보다 아름다웠던 포지타노에서는 눈썰미가 좋은 어느 가족이 동생에게 가족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한국인이자 디자이너인 동생은 사명감을 꽉 채워 비율과 그리드, 발끝과 관광지 배경 등을 고려해 여러 장을 찍어드렸다. 그들이 사진을 부탁했기에 근거리에서 아름다운 가족의 단편을 대놓고 빤히 볼 수 있었다. [가족사진 = 우리 둘 사진]에 익숙한 우리. 둘째는 무슨 생각을 했니? 막내야 가끔 생사 알려줘서 그저 고맙다. 너는 한 달에 한 번 남매 단톡방에 이모티콘 하나만 귀여운 거 찍어주면 누나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걸 알고있느냐.



아이스커피의 노예들이 스타벅스를 찾아 한 잔씩 들고 터미널에서 마시고 있으니 우리 같은 국적불명의 이방인들이 다가와 ‘스타벅스 어딨 나요?‘라고 물었고 ’아 당신들도?’라는 생각에 반가워 동생이랑 같이 웃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었는지는 몰라도 아이스커피민족에게 오아시스 좌표를 알려드려 뿌듯했다.



바닥의 타일만큼 사람이 빼곡한 터미널에서 잠깐이라도 쉬고 싶었던 우리는 적당한 음식점에 의자 하나를 두고 서로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테이블의 손님이 뒤쪽에 3인 테이블이 비자 우리에게 알려주었고, 사이좋게 나란히 쉴 수 있었다. 전부 2인 테이블인데 이 테이블에 의자가 3개여서 앞쪽의 테이블이 의자가 하나였구나 싶었다. 주변 손님들께 한껏 표정과 몸으로 양해를 구하고 원래 자리로 옮기려 하자, 또 다른 테이블에서 내 손의 의자를 낚아채어 목표를 대신 이뤄주었고 주변의 모든 손님들이 같이 웃고 있었다.



테이블 값이다 생각하고 기대 없이 사 온 음식을 먹는데, 옆 테이블의 다음 손님이 본인의 가방을 여기다 둘 건데 지켜달라 부탁했다. 부탁도 받았고 한국인이니까 옆 손님의 가방 쪽으로 아예 몸을 돌리고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손님이 앉고 싶은 눈치로 다가왔다. 마침 제대로 말문이 막혀서 설명을 못 하던 차에 내 뒷 테이블의 손님이 ’someone sit there'라고 간단히 말해준 덕분에 난 내 임무를 지켰다. 뒤늦게 전 상황을 모르는 자리 주인이 돌아와 고맙다고 표현을 했고, 나는 뒷 테이블의 손님을 찾았는데 그새 또 다른 이가 앉아있었다.


이국의 풍경과 문화, 먹거리 말고도 뭔가 많은 감상이 있었는데 애써 모든 것들을 떠올리지 않아도 불현듯 소소한 추억들이 우리를 잔잔히 웃게 하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