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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마릴린 Apr 09. 2021

[사워도우]노예에서 해방되기_⑴시작.

2018년 속초에서 사워도우 베이킹을 시작했고, 어느덧 4년 차에 접어들었어요. 글과 사진을 보며 독학으로 배운 터라 내가 잘 하고 있나 늘 궁금했지만, 빵이라는 건 원래 맛있는 것이고, 제가 만든 빵 역시 맛있으니, 잘 하고 있구나 생각만 했지요. 사실 몇 달 전 만 해도 저에게 사워도우 베이킹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의 밥빵을 만드는, 일상의 부엌일 중 하나였어요.

밥빵.                                



그런데 '인스타그램'을 본격적으로 보게 되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인스타그램에서 제가 팔로잉 하는 베이커들의 빵을 보면 제 빵이 좀 후져 보이는 거예요. 화려한 색상, 레이시한 내상, 소리만 들으면 터키의 에크멕과 같을 얇은 껍질. 누군가는 ph meter를 동원하고, 누군가는 네 종류의 스타터의 모습을 타임랩스로 찍어 올려요. 누군가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밀가루를 사용하고, 누군가는 거북이 모양, 리스 모양, 하여간 별의별 모양으로 빵을 만들어요. 제가 시대에 한참 뒤떨어져 있는 것만 같은 두려움이 생기기까지 했어요. 하여 이 사람 저 사람의 레시피를 혹은 방법을 따라 해 보고는 했는데, 그걸 따라 한다고 해서 비슷만 했지 제 빵이 그들의 빵처럼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 무렵의 저녁 시간, 저희 부부의 대화는 늘상 이런 식이었어요.


"자기, 이제 스케줄이 어떻게 돼? 나 먼저 씻을까?"

"나는 15분 있다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땡기고, 한 시간 반 있다가 성형한 다음에, 자기 전에 스타터 밥만 주면 돼. 나는 땡기고랑 성형 사이에 샤워할 거니까 자기 빨리 씻고 나와."

사워도우 만드는 분이라면 제가 하는 소리를 다 이해하실 거예요.ㅎ


사워도우 베이킹에 대한 불안과 함께 열정 또한 활활 타오를 무렵, '페이스북'의 한 사워도우 그룹에 가입했어요. 헌데 그곳은 인스타그램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어요.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인스타그램이 '요즘의 핫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페이스북은 '그냥 사람들'이 있는 곳 같아 보였어요. 페이스북 그룹의 빵들은 하나같이 투박하고 소박했는데, 제 것보다 못생긴 것도 허다했지만 제 것보다 분명 더 맛있을 것 같은 빵들도 수두룩했어요. 그곳에서 이런저런 질문들, 답글들, 방법들, 레시피들, 팁들을 읽다가, 아하! 싶은 순간이 왔습니다.


"No need to check the internal temperature: the bread is done when it looks done."


"The one thing you need to remember is that sourdough is very forgiving ... Most of the time, the result will taste great, even if it doesn’t look Instagram worthy. Don’t overthink it."


사워도우 빵을 막(!) 만드는 아저씨의 말이에요. 명언이죠? 저 말들이 가슴에 팍 와닿아서 그의 글을 찾아 읽어 봤는데, 그가 빵을 만드는 방법은 정말 방법이랄 것도 없었어요. 냉장고에서 스타터를 꺼내, 밀가루, 물, 소금과 몽땅 섞고, 시간이 된다면 두어 번 당겨 주고, 출근했다가 집에 돌아와 상태를 보고 냉장고에 넣던가 베란다에 두고 반죽이 오븐에 들어갈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굽기. 끝. 우리가 쌀밥을 짓듯이 그저 일주일의 양식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일주일 치 빨래를 몰아서 하듯이요.


"사람들이 너한테 돌을 던질 거야. 감히 '신성한' 사워도우 베이킹을 마치 별거 아닌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로 치부하고 있잖아! 농담이고, 실은 나도 그래. 하물며 어떤 사람은 나한테 내 스타터 이름이 뭐냐고 묻기까지 했다니까. '왼쪽은 통밀이고, 오른쪽은 호밀인데...'라고 대답했지. 나도 디스카드 안 만들어. 병에서 남은 거 긁은 다음에 빵 굽기 전날 밥 한 번 주고, 그 다음날 그걸로 르뱅을 만들거든."

"어떻게 알았어? 실은 나 두 곳의 사워도우 그룹에서 금지당했어. 내 생각에 그들은 내가 신성모독을 했다고 여기는 거 같아."

"나도 그룹에서 쫓겨난 적 있는데..."


깔깔깔. 깔깔깔 웃음이 멈추자 그동안의 불만도 어느 정도 사라지는 기분이었어요.


주식으로서의 빵.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취미로서의 사워도우 베이킹이 아니라 주식(사전: 밥이나 빵과 같이 끼니에 주로 먹는 음식)으로서의 사워도우 빵에 대한 거예요. 회사일로, 집안일로, 육아로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야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 아니라, 회사일로, 집안일로, 육아로 바쁜 와중에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상의 부엌일 중 하나로요. 아래는 사워도우 스타터와 르뱅에 대한 내용인데, 일단 함께 봐요.


들어가기에 앞서 용어를 명확히 할게요.


스타터: 병에 든 그 스타터,

르뱅: 본반죽에 넣을 스타터.

피딩=밥주기=리프레쉬: 다 같은 말이니 제일 짧은 단어, 피딩을 쓰겠어요.



1. 스타터, 언제 피딩할 것인가?

○ 피크에 할 수 있다.

○ 피크가 조금 지났을 때 할 수 있다.

○ 피크를 지나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때 할 수 있다.

○ 푸욱 꺼진 후 할 수 있다.

○ 배를 쫄쫄 굶겨 할 수 있다.

○ 다음 필요시까지 안 할 수 있다.


2. 스타터, 냉장고에 언제 넣을 것인가?

○ 피딩 후 피크에 달했을 때 넣을 수 있다.

○ 피딩 후 두 배가 되었을 때 넣을 수 있다.

○ 피딩 후 조금 부풀려 넣을 수 있다.

○ 피딩 후 바로 넣을 수 있다.

○ 피딩 없이 바로 넣을 수 있다.

○ 아예 냉장고를 떠날 필요가 없다.


3. 르뱅, 반죽에 언제/어떻게 넣을 것인가?

○ 피크에 넣을 수 있다.

○ 세 배 이상 부풀면 넣을 수 있다.

○ 두 배 이상 부풀면 넣을 수 있다.

○ 냉장고에서 꺼내 피크에 도달하면 넣을 수 있다.

○ 냉장고에서 꺼내 세 배 이상 부풀면 넣을 수 있다.

○ 냉장고에서 꺼내 두 배 이상 부풀면 넣을 수 있다.

○ 냉장고에서 꺼내 바로 넣을 수 있다.

○ 실온의 디스카드 스타터를 본반죽에 넣을 수 있다.

○ 냉장실의 디스카드 스타터를 본반죽에 넣을 수 있다.

○ 냉동실의 디스카드 스타터를 본반죽에 넣을 수 있다.


정답을 고르는 게 아니에요. 왜냐면 다 답이기 때문이에요.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있지만 모르는 것들도 좀 있지요?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사워도우 빵 막(!!) 만들기에 대해 올릴게요. 사워도우의 노예로부터 해방되기, 혹은 사워도우에게 인질로 잡히지 않기가 내용이 될 거예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집빵을 구워 먹을 수 있기를 바라며!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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