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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ssong Aug 04. 2021

힘내라는 말 대신할 수 있는 건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

  일요일, 전 날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짐을 정리하느라 온 몸이 뻐근하고 피곤했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서 영화도 보고 낮잠도 자고, 제대로 쉬는 날이었다. 나른한 일요일 오후 낮잠을 자고 있는데 옆 방에 에어비앤비 손님이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살짝 잠에서 깨고는 피곤함에 계속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퇴근 후에야 부엌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옆 방 가족들을 만났다. 먼저 딸 요바나와 마주쳤다. 활짝 웃는 밝은 얼굴로 “옆방 이웃이야?”하며 나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요바나의 엄마 이레나와 남편 미겔과 인사를 나누었다. 요바나의 엄마 이레나 할머니는 나에게 렌틸 콩으로 만든 수프를 권했고, 너무 짜지 않게 간이 딱 맞아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멕시코 음식은 대부분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 짜다.) 이레나 할머니를 보면서 외할머니 생각이 아주 많이 났다. 우리 할머니처럼 염색하지 않은 희끗희끗한 짧은 파마머리 때문인지, 맛있는 수프 때문인지, 괜히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 졌다. 한국에 계신 우리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하니 이레나 할머니가 나를 꼭 안아주었다. 세 사람이 풍기는 따뜻함과 포근함 때문에 마음에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대학생 때 평일에 기숙사, 자취생활을 하다가 주말에 고향에 내려가 엄마가 해주는 집 밥을 먹고 거실에 대자로 뻗어있는 내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요바나는   전에 난소암 판정을 받아  차례 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난소암이 재발해서 내일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거라는  밖에 해줄  없었고,    안아주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괜히   목소리로 많이 웃었다. 내가 보내는 밝은 기운이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바나와 남편 미겔의 취미는 싸이클이다. 특히 장거리 라이드로 산에서 많이 타는데 자연 속에서 싸이클 동호회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건강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무엇보다 취미활동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감탄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산과 하늘 사진을 보여주면서 멋지지 않냐고 행복해하는 모습, 두 사람이 나란히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지긋이 웃어 보이는 모습. 세 사람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빠져 정말 편하게 웃고 떠들었다. 처음 만났지만 사진도 여러 장 찍고 계속 연락하면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우리 대화의 끝에 요바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기운이 느껴진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요바나의 가족들로부터 받은 인상을 나에게서 느꼈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더 감동적인 말은 요바나가 나와 이야기하는 2시간 동안 수술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고 했다. 내가 보내는 메세지를 읽어준 것만 같아 나도 덩달아 행복했다.

  아마 내가 좋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요바나, 미겔, 이레나 할머니와 나는 결이 비슷한 사람인가 보다. 그래서 첫 만남에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본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요즘 나를 잃어가는 것만 같았는데, 닮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게 돼서 내 모습도 조금 되찾은 것 같고 세상에는 여전히 조건 없이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요바나가 수술하러 가는 새벽에 나도 일찍 일어나서 꼭 한 번 안아줘야겠다. 내가 보내는 응원의 메세지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레나 할머니의 렌틸콩 수프. 집 밥이 최고야!
조금 아프지만 수술이 잘 끝났다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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