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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ssong May 12. 2021

2. 멕시코에서의 ‘갭이어(Gap Year)’

당신의 ‘딴짓’을 응원합니다!

  멕시코에서 첫 발을 디딘 도시는 멕시코 제2의 도시 과달라하라였다. IMAC이라는 어학원에서 연수 동기들과 함께 5개월간 스파르타식으로 스페인어를 배웠다. 수업은 문법 위주로 이루어졌고 매일 아침 작문 숙제 검사와 수업 후에는 시험을 보는 일정의 연속이었다. 스페인어 실력에 따라 세 개의 반으로 나뉘었고, 우리 반은 6명의 한국인들 사이에 독일, 미국 소년 두 명이 함께 수업을 들었다. 두 친구는 고등학교를 갖 졸업하고 대학교 진학 전에 학업 및 진로 방향을 생각하기 위해 멕시코로 여행을 왔다고 했다. 말로만 듣던 ‘갭이어(Gap Year)’를 실천하는 친구들이었다.

  우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갭이어’의 의미를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사회경험을 위해 일을 하거나,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여행을 하면서 보내는 1년을 의미하는 단어. 1960년대 후반 무렵, 영국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런 풍습이 시작된 영국의 지역적 특징 때문인지, 미국권 학생들에게 보다는 영국 쪽과 유럽 쪽 학생들에게서 대학교에 등록하기 전에 갭이어를 갖는 것이 빈번하게 목격된다. 한국은 주로 대학에 진학 후, 대학 생활 도중에 갭이어와 유사한 성격으로 배낭여행 또는 어학연수 등을 다녀오는 것과 비교된다.” (출처: 나무 위키)

  이 친구들과는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한 번은 학업 문화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한국만큼 학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나라가 없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시절 밤 9시까지 야간 자율 학습을 하고 11시까지 심야 학습을, 그리고 주말은 학원에서 보낸다고 했을 때 많이 놀라 했다. 지금은 학업 문화가 많이 바뀌었을 것 같은데 나와 같은 90년대 생이라면 겪어봤을 그 시절 학업 문화이다.

  철저한 한국 입시를 거쳐온 나의 삶에는 ‘딴짓’이라는 것이 빠진 듯했다. 여기서 ‘딴짓’이라는 의미는 취미생활이 될 수 도 있고, 가까운 곳을 여행하거나, 다만 내가 먹을 음식을 요리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학생의 본분이라고 할 수 있는 공부 외의 활동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기억에 벚꽃은 항상 중간고사에 만개했고, 낙엽은 기말고사즘 졌으며 요리할 시간에 영어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이 좋은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마음에 ‘여유’가 없는 생활이었다. 무엇보다 좋은 대학이 나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나 ‘자신 그대로’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마치 좋은 대학에 진학하면 나를 사랑해줄 것처럼.

  좋은 성적이 곧 나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학생의 본분에 맞게 열심히 공부한 것에는 후회가 없으나 공부’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장’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듯 이제는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가능성과 결과를 열어두는 삶을 살고 싶다. 세상에는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이 공존하고 그중에서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선택해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되돌아보면 멕시코에서 보낸 5년의 시간이 나에게는 ‘갭이어’ 시간이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 나에게는 ‘딴짓’이었고 나보다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멕시칸들을 보면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접하게 되었다. 스페인어를 알게 되면서 라틴문화권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생겼으며, 멕시코 식문화는 세계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맛있고 다채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제주도만큼 아름다운 멕시코 만(Gulf of Mexico)의 바다 풍경을 내 두 눈으로 보았고 습한 바다 바람을 직접 몸으로 느꼈다. 멕시코 마야 문명과 스페인 식민지 문화의 결합은 멕시코에서만 느낄 수 있는 ‘멕시코 바이브(Mexico Vibe)’가 되었고 그위에 현대 문화까지 접목되면서 멕시코의 문화는 더욱 풍부하게 다가왔다.

  지금까지‘갭이어’는 일정 기간을 비워두고 전과는 완전히 다른 루틴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상에서 잠깐 벗어난다는 측면에서 ‘딴짓’이 ‘갭이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5년간 ‘멕시코에서의 딴짓’을 통해 삶은 계속 이어지는 것이고, 어떤 마음 가짐으로 무엇을 경험하고 느끼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외생활이 길어지면 여행과는 달리 일상생활처럼 주변 환경에 무뎌지는 시기가 온다. 자신이 너무 한 가지에 몰두해 주변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고 느낀다면 그 루틴에서 한 발짝만 물러나 마음에 여유를 가져보길 바란다. 나는 이러한 ‘딴짓’ 시간을 통해 문화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좀 더 풍부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난날 나 자신을 위해 요리할 시간도 주지 않았던 나 자신과 비교하면 지금의 나는 따뜻한 햇살 속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고 그 속에서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까지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앞으로도 ‘딴짓’을 원하는 나 자신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일 줄 알고 그 목소리를 존중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함께 공부했던 미국인 친구 케일럽(왼쪽)과 독일인 친구 까를로스(오른쪽) 그리고 같은 반이었던 현지언니(맨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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