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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ssong May 20. 2021

3. 멕시코에서의 인종차별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인종이 있나요?

  중국을 시작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집어삼킨 지 1년이 넘어가고 있다. 아시아 국가에서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는 점점 유럽, 아메리카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이 눈 앞에서 펼쳐졌다. 길에서 걸어가던 사람들이 쓰러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손 쓸세 없이 죽어갔다. 많은 국가에서 중국을 질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중국인 혹은 아시안을 저격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단지 코로나 바이러스 발생 국가가 중국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특정 아시안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일상에 행해진 급격한 제한 탓에 스트레스와 우울감에 빠진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탓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는 아시안들을 상대로 총기난사 및 묻지 마 폭행이 행해져 죽거나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SNS를 중심으로 Stop Asian Hate이라는 운동이 급격하게 번졌다.

  멕시코에서도 2020년 4월, 5월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정점에 달했다. 뉴스와 주변 지인들로부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기에 꼭 필요한 외출을 해야 할 때면 혹시 공격의 대상이 될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걱정이 계속되던 어느 날 회사 동료가 잠깐 나를 불러 할 말이 있다고 했다.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녀는 혹시 이 사진 속에 있는 사람이 내가 맞냐고 물어왔다. 사진을 확인한 나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녀의 핸드폰 화면에는 며칠 전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는 내 모습이 담겨 있었고 그 위에 스페인어로 “당신이 실제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눈 앞에서 목격한다면”이라는 문구가 쓰여있었다. (실제로는 더 저급한 말로 표현되었지만 이 정도로 순화해서 말할 수 있겠다.) 정황을 보니 나를 마트에서 목격한 한 멕시칸 남성이 몰래 내 사진을 찍어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사진과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포스팅했고, 그 남성의 페이스북 지인들을 통해 해당 포스팅이 여러 사람들에게까지 전달된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가 내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과 나를 코로나 바이러스의 실체로 묘사한 그의 발언에 너무 화가 나고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동료 중 한 명이 그 남성과 전 직장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다고 했다. 평소 행실과 언행이 좋은 사람이 아니니 무시하라고 했지만 인종차별이 얼마나 비도덕적인 것인지 가르침을 주고 싶었다.

  먼저, 그 당시 근무했던 회사 인사팀에 상황을 설명하고 그 남성이 일하는 회사 인사팀에 연락해 포스팅을 삭제할 것을 요청했지만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했다. 혹시나 나에게 보복이 돌아오면 어쩌나 두렵기도 했지만 결국은 변호사를 통해 소장을 제출하기로 마음먹었다. 남성의 페이스북 정보와 내 사진이 포스팅된 게시물 등을 증거로 변호사를 따라 소장을 제출할 수 있는 여러 기관들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마침 코로나로 인해 모든 관공서가 문을 닫고 무기한으로 업무를 중단한 상태였다. 두 달, 세 달이 지나도 코로나는 더욱 심해졌고 소장을 제출할 수 있다는 기약마저 없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결국 나를 보호할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내가 소속되어 일했던 회사도,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도 아니다. 사실, 멕시코에서 인종차별을 당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스페인어 학원에서 담당 선생님은 한국인 학생들이 스페인어를 못 한다며 멍청하다했고 수업 때마다 부정적인 평가로 학생들의 의지를 꺾어 놓았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언어폭력에 같은 반 친구들과 의논을 거쳐 학원 관계자에게 진술서를 제출했고 담당 선생님은 학원에서 한국인 수업을 맡을 수 없게 되었다. 또, 한 직장동료가 한국인을 묘사할 때 눈을 찢고, 한국 음식만 보면 토하는 시늉으로 불쾌함을 드러낼 때, 이러한 언행은 인종차별임을 확실하게 전달했고 그 행동이 반복되었을 때는 팀 회의를 소집해 주변 사람들에게 까지 당사자의 행동이 차별적 행동이라는 것을 알렸다. 하지만 이번 사건 앞에서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섣불리 용기 내지 못했다. 특정 인종을 향한 무차별적인 폭행을 보면서  사람들이 무서웠다.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는 나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졌다.

  일 년 전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 멕시칸 남성에게 직접 해당 포스팅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고 명백한 인종차별적 언행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법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해서 잘못된 행동을 알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반성하지 않을지라도 자신의 행동이 옳지 못하다는 것은 인지 할 테고 그다음 행보는 본인의 양심과 도덕성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 자신이고 내 권리는 주장할 수 있는 사람도 나 자신이다. 앞으로는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부당한 것에는 아니라고 소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푸르고 맑은 풍경을 보면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Rel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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