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한 말이 너무 좋은데?
늦은 저녁을 먹고 쓰는 오늘의 일일일글 주제는 "나도 모르게 좋아하고 있던 말투"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동생이 주었습니다. 아마 동생은 본인이 언니의 글감이 되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겠지만요. 동생이 어른이 되고 나서부터는 종종 놀랄 때가 있습니다. 우리 집 막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하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생각보다 잦습니다. 동생은 겉으로 보기엔 게으르고 게임을 좋아하고 별로 생각이 깊어 보이진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요.
아무튼 이런 동생에게, 요즘 대화가 꽤 잘되니 저는 말하고 싶은 게 생기면 동생을 먼저 찾아갑니다. 오늘 아침에도 저는 일본어 공부를 하다가 문득, 아, 이렇게 개발세발로 적어서는 일본 본토인도 나의 글을 알아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손목이 저리고 중지 손가락 두 번째 마디 왼쪽, 연필이 닿는 면이 소옥 들어갈 때까지 힘을 주어 또박또박 정자로 글을 적었습니다. 5장 정도 적었을까, 이제는 꽤 동글동글 글자가 이뻐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걸 공유하고 싶었죠. 바로 방문 앞에 있는 동생 방으로 가서 일본어를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동생 방으로 가는 그 짧은 복도 위에서 저는 생각했어요. 쓸데없는 걸 한다는 표정으로 웬 일본어 공부?라고 하는 리액션이 그려졌거든요. 저는 이 반응에 거부감이 심합니다.
이는 제가 왜-라는 말을 싫어하는 것과도 같은 이유입니다. 제가 행동하는 데에는 엄청난 이유가 있진 않습니다. 한밤중에 산책을 하고 싶어지고, 갑자기 책을 와라락 읽는다던가 안 하던 요가를 등록해서 새벽 요가를 다닙니다. 저는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튀는 이유가 딱히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하는 모든 것을 궁금해하면 귀찮더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반응하고 말할 때 내가 기분이 좋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일본어 글자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때 동생에게 드디어 듣게 되었습니다.
"요즘 일본어 공부하는구나."
네가 일본어 공부하는 걸 알겠어. 하지만 난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아서 공부하는 이유는 묻지 않을게. 다른 사람들처럼 그리 궁금하지 않은데도 예의상 물어보는 귀찮은 짓도 하지 않을 거야-라는 뉘앙스가 순간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런 드라이한 반응이 좋더라고요. 적당한 거리감, 그렇지만 너의 현 상황과 변화 정도는 캐치 중이라는 무심한듯한 정도의 관심. 딱 그 정도. 남들은 그런 리액션에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딱 이런 미적지근함을 사랑했더라고요. 딱 이 정도, 내가 좋아하는 무심함의 구체적 형상을 처음 보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아마 동생과 일본어로 이런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저는 제가 어떤 무심함을 사랑하는지 알 수 없었을 거예요. 역시 사람은 혼자 있을 때보단 타인과 얽혀 있을 때 오히려 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