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쪽쪽이님과 28개월 22일 아기의 작별식을 마치며
우리의 첫 만남은 아마도.. 800일 전쯤이었지?
2년도 훌쩍 지난 시간 동안 정말 고마웠어.
이 고마움을 어떻게 다 설명해야 할까, 아니 말로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오래전 첫아기를 키울 때는 건강했고 젊었기에 모유수유를 했었어. 쪽쪽이는 그저 귀여운 아기들이 하는 예쁜 액세서리 같이 보였지. 노산에 젖량도 딸리고 몸의 관절이 다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이 아픈 상태에서
깨어있는 시간 내내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그녀에게 널 만나게 해 준 뒤로는 정말.. 신세계가 따로 없었어.
보드라운 애착이불과 쪼쪼. 너만 있으면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행복해 보였거든.
사실말이야, 난 자신 있었어.
워낙에 순둥순둥했던 첫째를 키웠을 때는 아기를 그리 울려본 적도 없었고 울고 떼쓰거나 바닥에 누워서 뒹굴거나.. 뭐 그런 건 티브이 속, 문화센터에 가면 볼 수 있는 광경이었지.
둘째 그녀를 만난 후 난 깨달았어. 아.. 내가 아기를 잘 키웠던 게 아니라 그 작은 아기가 온 힘을 다해서 엄마한테 맞춰서 살아줬구나. 초등학교 시절까지도 자라면서도 속 한 번 안 썩이고 사랑스러웠던 건 나뿐만 아니라 아이도 나를 위해 노력했던 거였어.
(중등시절 사춘기를 겪는 그 천사 같았던 아이를 보며.. 그때 좀 덜 잘해줄걸 하는 유치한 생각을 하는 건 나뿐일까?)
훗, 역시 인간은 자기의 경험치에서 밖에 사고하지 못하는 걸까? 육아에 관해서는 교만하디 교만한 나를 따끔하게 가르쳐주시려고 극대노 아기를 뒤늦게 보내신 걸까?
둘째, 그녀는 아주 생각지도 못한 상황과 나이에 귀한 딸로 태어났지. 뱃속에서 딸이라고 했을 때 박수까지 받았어. 나에게 딸은 원할 수도 원해서도 안 되는 유니콘 같은 존재일 뿐이었어. 감히 딸을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 같았거든. 그런데 딸이라니!
아들도 그리 순둥 한데 딸은 얼마나 더 수월할까?
갓 구워 낸 노릇노릇 모닝빵같이 생겼던 그녀는
비록 작은 아기지만 돌즈음부터는 밥도 오빠만큼 먹고과일도 오빠만큼..... 뭐든 오빠만큼 먹는 대식가에
화가 나면 어디서 본 적도 없을 텐데 손에 잡히는 물건은 다 집어던지고 바닥에 누워서 오열+떼부리기를 시간제한 없이 할 수 있는 있는 대단한 성격이었어.
화가 나는 포인트도 대체로 예상 못한 부분이라 그냥 무조건 성질부리기부터 하는 거지. 어느 유전자에서 온 건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대단한 성정을 가진 분께서 고스란히 물려주셨나 봐.
보통이 아닌 그녀에게로부터 너를 빼앗는 건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어. 아주 난폭하고 강렬하게 반항할 거라는 것은 당연했거든.
돌 지나고 몇 번의 시도 끝에 그냥 포기했지. 외국은 4살까지도 한다더라, 너무 빨리 떼면 손가락으로 옮겨가서 더 고생한다. 지금 아픈데 쪽쪽이까지 못 하면 너무 괴로울 거야 등등 나는 포기할 구실을 끊임없이 찾았어. 두 돌이 넘어서까지 자다가 쪽쪽이가 빠지면 계속 깨어나기를 반복해도 포기가 안되었어.
솔직한 마음은, 혼자 어르고 달래서 재울 엄두가 안 났거든. 몇 시간씩 아기띠를 하고 서성거려도 너 없인 잘 생각이 없는 그녀를 말이야..
일부러 미루고 미루던 영유아치과검진을 29개월을 단 며칠 남겨두고 갔지. 의사 선생님께서는 당장 쪽쪽이 끊기를 권유하셨고 지금이라도 멈추면 구강구조가 바르게 돌아올 거라고 하셨어.
그래.. 이젠 더는 도망칠 곳이 없다.
치과선생님이 그녀에게 직접 쪽쪽이를 하면 이빨이 몽땅 까맣게 변한다는 무시무시한 조언을 해주시고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쪽쪽이를 안 하는 그녀에게 기립박수를 쳐주시고 집에서는 싹둑 자른 쪽쪽이를 보여주며 쪽쪽가 아파서 찢어졌어. 이제 병원에 보내주자라는 말로 설득시켰지.
물론 눈물로 지새운 첫날밤은 있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너무 수월하게 이별했어.
그렇게 24시간 쪽쪽이를 원하고 사랑했던 네가 맞단 말이야? 여자의 변심은 진짜 차갑구나.
나는 너를 잊지는 못할 것 같아.
2개에 만삼천 원인 네가 130만 원이었더라도 난 그 값을 기쁘게 지불했을 거야. 2년이 넘는 독점육아 속에서 이만큼 해낼 수 있었던 건 모두 네 덕분이야.
친애하는 나의 육아동지 쪽쪽이야, 정말 고마웠어.
-사랑을 담아, 그녀의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