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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정 Cathy K Mar 28. 2023

아직도 저는 저를 작가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저에게 인정받는 제가 되려면 언제가 되어야 할까요?

오랜 시절 어릴 적부터 일기장 한편에는 항상 “작가가 되고 싶다 “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그게 어떤 작가인지는 몰랐어요. 글을 쓰던, 웹툰을 그리던, 시나리오를 쓰던, 막연히 작가가 되고 싶다 고만 생각했었죠.


그리고 동시에 작가란, 내가 닿을 수 없는 머나먼 존재라고 언제나 생각해 왔어요. 서점에 가면 수많이 종잇장들 너머에 있는, 작업실에서 골몰하는 천재적이고 고독한 예술가 즈음의, 엄청난 환상을 가지고나 있었다고 할까요.


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들은 대부분, 세계 철학사와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하버드 출신 박사님들이 쓰셨던지, 또는 천재 소설가들이 쓴 장편들로 파묻혀 지냈던 것 같아요. 러시아어학과를 (반쯤 장난으로) 준비하면서, 러시아 문학도 반 학기 정도 팠었네요. 도스토스토예프스키인가, 아직도 이름조차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수많은 다작하는 대문호들의 소설들을 빠르게

읽어내리며, 아, 작가란, 매일 방에 처박혀 고뇌하며 7000 페이지쯤 써야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작가의 고난도 생활고도 모두 멋져 보였어요. 가슴 애린 연약하고 섬세한 서사를 읽을 때면 그 예민함과 비련함에 감탄했고요. 추리소설을 읽을 때면 작가의 기획력과 치밀함에, 문학을 읽을 때면 흘려보냈던 일상을 포착해 내는 언어에 감탄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속에는 그런 마음이 자리 잡았던 게죠. 작가란 대단한 사람이라고.


저 같은 건 아마 늙어 죽을 때까지 작가 발치에는 가까이도 못 가보겠거니 내심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일까요? 3년 전 출판 계약을 했지만, 도저히 책을 마무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5번인가 엎었고요, 그리고서는 그 너덜거리는 찌꺼기 원고들을 들춰보지도 못한 게 벌써 일 년은 넘었어요.


책을 쓰려고 앉을 때마다 그런 기분이 들었거든요. 너 같은 게 무슨 작가라고, 있어 보이는 척 폼 잡고 앉아서 행세야,라고 아주 못난 생각이 들었거든요.


나 같은 건, 감히 나 같은 게 내가 어릴 때 우러러봤던 위대한 작가 행세를 하다니요? 송구스럽고, 뭔가 부끄러웠습니다.


글이 안 써지는 날에는 더더욱.


눈 꼭 감고 한 페이지를 써간 뒤에는 그런 생각이 몰려옵니다. 방금 쓴 그 쓰레기 같은 건 뭐야? 그런 걸 누가 읽어주겠어.라고요.


방 안에 있는 내 머릿속의 다른 내가 글을 쓸 때는 최대의 적입니다.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 없거든요.


잘 쓰면 잘 썼다 가끔은 인정해 줄 줄도 알아야 하는데 만족을 모릅니다. 어딜 잘난 척이냐고, 호통을 치기도 하고요. 그럼 내일은 또 그만한 글을 쓰지 못할까 봐 불안해집니다.


그렇게 불안해하며 자다 보면 다음날 원고지를 보기가 두렵습니다. 오늘 어제 내가 생각한 대로 정말로 글이 안 써지면 어떡하지? 난 역시 틀렸어, 하면서요.


그렇게 내가 나를 계속해서 쥐어짭니다.


사실 글쓰기를 나는 원래 되게 좋아하는데 말이죠. 누가 본다고 생각하니 또 글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누가 “작가님” 하고 부를 때면, 그 이름에 먹칠하는 것 같아 부끄러워 더욱더 웅크려집니다.


저는 요즘 글 쓰고, 말하고, 만들면서 꿈꾸던 대로 살고 있는데요, 누가 저에게 뭐 하는 사람인지 물어보면 여전히 저는 저를 작가라고 소개하지 못합니다.


매일 글을 쓰지도, 충분히 치열하지도 못한 제 자신에게 부끄럽지만 그렇다고 매일 쓸 자신은 없습니다. 매일 쓰는데도 부족하다면, 치열한 제 자신이 너무 비참해질 것 같아서. 정말 원하는 일임에도, 차마 그렇다고 인정할 수가 없네요.


이런 찌질한 심정마저도 글감이라고 써서 아무도 안 본다고 생각하는 브런치에 또 뱉어놓고 갑니다. 저는 언제쯤에나 정말로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부끄럽지 않게 풀게 될까요?


그리고 언제쯤에나 저는 저를 “작가”라고 불러줄 수 있게 될까요?


스스로에게 인정받는 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 같습니다. 저는 저에게 당당하게 치열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제가 주눅 들지 않고 사소한 제 성과에 행복해할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그런 소박한 사람이 꺼내놓는 소박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보잘것없는 일상적인 이야기에 울림이 생길 때 비로소 저는 작가가 될 자격이 생기고,


그런 보잘것없어 보이는 글조차도 놓지 않고 매일 똑바로 바라보며 써나갈 때 비로소 저는 저를 작가라고 부를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멋진 척, 귀여운 척, 있어 보이는 척 이런 거 다 빼고 소박하고 담담하고 차분하게 쓰고 싶은데 제 안에 흑염룡이 아직 살아계신가 봅니다. 이 글마저도 계속 자꾸 딴 길로 새는 걸 보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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