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서 벗어나려면, 더 슬퍼해줘야 한다.
나는 평생을 불안과 슬픔 그 사이 어딘가를 헤매던 사람이었다. 적어도,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 10대 시절부터는 그랬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내 속은 항상 썩어 들어가, 내 눈에는 항상 슬픔이 묻어난다고 나를 잘 알던 사람들은 그러고는 했다.
내 삶은 평생 발버둥이었다. 승부욕과 완벽주의가 강한 자신,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력 0 체력 0의 최약골 몸뚱이를 타고난 나 자신과의 싸움. 결과는 점점 더 망가지는 육체를 좀비처럼 이끌고 꾸역꾸역 악으로 버티며 밤을 새우고 학교에선 꾸벅꾸벅 조는 죽은 생쥐 같은 내 꼴이었다. 성적표는 좋았을지 몰라도 인생이 참 비참했다. 위장장애를 달고 살았고, 기면증에 가깝게 아무대서나 쓰러져 잤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몸이 원망스럽고 애석했다.
학교에서는 나름 인기가 좀 있었지만, 그것 또한 밝아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애써 억지로 웃어 보이던 것이었다. 학교에서 낮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인지하기 힘들 정도로 나는 집에서 잔인하게 괴롭힘을 당했다. 나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자, 아빠와의 불화로 망가진 그녀의 자존감을 채우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밟히는 샌드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단지 착하고 만만한 딸이라는 이유로 내가 타깃이 되었다.
안정감이라는 건 살면서 느껴본 적이 없었다. 따뜻하고 편안한 집이라는 것도. 누군가의 지속적인 관심이라는 것도 내 인생에는 없었다. 난 계속해서 알지도 못하는 그 편안함이란 걸, 정 붙일 구석이라는 걸 찾아다녔다. 참으로 애타게 말이다.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고 찾는데 찾아질 리가 없다. 나는 친구들에게서, 애인들에게, 낯선 모르는 사람들에게 쉽게 기대하고 의지했고, 또 의지하려다 금세 포기하고 절연을 선언했다. 자라나면서 사람을 믿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사람이란 원래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진심이란 건 영화에나 나오는 개소리라고. 나에게 잘해주는 것도 다 위선이라고 믿었다. 세상에 진심 같은 건 없다고.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그런 게 존재한다면, 그런 걸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내가 너무 비참해지니까. 그래서 진심 어린 애정 그 비슷한 것을 봐도 눈을 질끈 감고 피했다.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거짓말일 거라고 되새기면서.
모두가 언젠가는 떠나갈 것이라고 믿었다. 사람이 그렇게 생겨먹은 거니까. 다들 자기 필요할 때만 찾고, 내가 필요할 때는 아무도 없잖아. 나를 사랑해야 하는 우리 엄마도, 아빠도 미워하고 귀찮아하는 나를 이유 없이 사랑해 줄 사람이 있을까? 그런 게 존재하기나 할까? 사람이 다 원래 그렇게 사는 거겠지.
내가 가진 불행을 합리화하기 위해 같은 불행을 가진 사람들을 찾았다. 그들의 불행을 보고 나누며 안심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야. 세상은 원래 불행으로 가득 차 있어. 행복은 영화 속에나 나오는 거니까. 불행은 나누면 잠시간은 가벼워지는 듯해 보였으나, 거진 커질 때가 더 많았다. 불행에 중독된 것처럼. 우리는 불행한 우리에게 오래도록 푹 빠져있었다. 술로 날을 지새우던 날이 참 많았다.
사실은 행복이라는 것이 너무나 고팠던 것 같다. 한 번 만져보기라도,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하루라도 그런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다면. 그게 뭔지 알 수라도 있다면. 세상 모든 것과 맞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행복에 대한 타는 갈증 비슷한 집착을 깊은 곳에서 느꼈다.
끔찍한 현실에서 도망을 칠 때는 잠시간의 그 시간이 너무 달아서, 그걸 행복이라 착각하기도 했다. 학교를 빼먹는다던지, 시험을 빼고 여행을 간다던지, 하지 말라는 연애를 일부러 하고, 가지 말라는 클럽을 가고, 담배를 피울 때면 뇌를 뒤덮는 그 해방감과 스릴에 웃을 일 하나 없는 일상이 잠시 잊혔으니까.
일탈이 주는 기쁨은 언제나 잠시 뿐이었다. 그건 온전하지 않았다. 마치 마약과도 같이, 아주 일순간의 강렬한 반쪽짜리 감정에 취하기 위해 자꾸 다시 찾게 되었다. 학교를 빠지고, 비난할만한 연애를 하고, 집에서 도망쳐 기숙사로, 해외로, 자취방으로 숨었다.
나는 그렇게 도망자의 기분으로 10대와 20대를 대부분 살았다. 편안한 곳은 어쨌든 그 어디에도 없었기에, 도망친 낯선 곳들. 낯선 사람들, 낯선 장소들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적어도 거기에는, 나를 매우 잘 알고도 나를 죽일 듯이 싫어하는 사람들은 없었으니까. 존재의 이유를 부정당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잠시간의 안정을 얻었다.
그렇게 어쩌다 수많은 여행을 하게 되었다. 혼자서 여행길에 오를 때면 여전히 그 오래된 기분이 나를 엄습한다. 불안하고 긴장되던 그 시절. 내 존재 자체가 죄였던,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였던, 익숙한 그 기분을 지우기 위해, 바이크 속도를 올리고, 파도에 나를 던지며, 독한 술을 한 잔 하고 잠을 청한다.
깊은 숲 속에 있을 때면 나무들이 나를 안아주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일렁이는 파도는 이런 몸뚱이도 괜찮다고 보듬어주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살아있다고. 피부에 물살이 부드럽게 닿고 바람이 뺨을 스치듯이 매만지면 죽어있던 감각이 깨어나 살아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럴때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잠은 잘 오지 않는다. 캄캄한 밤이 되어 우두커니 누워있으면 어렴풋이 옛날 생각이 난다. 벗어난 지 오래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는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거지 같은 감정들과 힘들었던 기억들로부터.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상처받았던 기억과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살았던 인생을 새로 쓸 수는 없다. 깊이 각인된 무력감도 공포도 불안도 완전히 도려낼 수는 없다.
그렇지만 바라봐 줄 수는 있다. 그랬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얼마나 많은 위안이 되는지. 그때 힘들었던 기억을 보며 참 어린 나이에 힘들었겠다,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 완전하지는 않아도 온전해지는 기분이 든다. 누구에게 털어놓을 줄도 몰라 들어주는 이 하나 없던 그때 나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완전하지는 않지만, 지금의 내가 행복해지려면 과거의 나와 화해하고 보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또 이렇지. 하나하나 짚어주면서 그때의 기분을 다시 한번 고스란히 느껴주면, 거지 같던 그 기분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과거의 나와 화해하는 방법이다.
슬픔을 몰아내는 방법은 슬픔이다. 슬픔에서 벗어나려면, 더 슬퍼해줘야 한다. 더 독한 슬픔일수록 마찬가지로 독하게 아파해줘야 한다. 그래야 슬픔이 지나갈 수 있다. 행복은 그 뒤에 기다리고 있다.
이 글을 쓰고 나면, 오늘 적어낸 나의 옛 감정들은 조금은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은 기분이 들어 이내 사라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로 글을 쓰지 않을까 생각한다. 후련해지니까. 글에는 신기한 정화 작용이 있어서, 쓰는 순간 그 더러움이 옮아가듯 나쁜 감정들이 종이 위에 남고 나는 한 결 가벼워진다.
기분을 씻어내는 샤워랄까.
샤워를 마쳤으니 갑자기
집 앞 개구리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