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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정 Cathy K Oct 14. 2023

어린 시절의 기억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

*우울증 관련된 묘사가 있습니다

우울증을 진단받았던 건 2019년 여름이었지만.

사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우울증이 생겼던 건, 중3 여름 즈음이었던 것 같다. 2010년 즈음.


어느 날부터인가 잠이 안 오기 시작했다.

일어나기 싫었다.

아침이 끔찍이도 두려웠다.

새벽이면 내장이 꼬이고 죽을 것 같은 느낌에 잠 못 이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지나자 속이 텅 빈 것 같았다.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느끼려고 해 봐도,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머리가 멍했다. 매스꺼웠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기 시작했다.

방금 들었던 수업, 어제 들었던 친구의 이야기. 내가 누구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기억이 안 나기 시작했다. 뇌가 순간순간 작동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입맛이 없었다. 점심시간에 대신 잠을 자기 시작했다.

아니, 하루 종일 잠을 자기 시작했다. 어디서 그렇게 잠이 몰려오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책상에 엎드려서 목이 아플 때까지 잠을 잤다. 밥은 굶었다.

때로 억지로 가서 밥을 먹을 때면 모래알이 씹히는 기분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아니 사실 지금까지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이상한 거라는 걸.


스스로에게 되뇌었던 것 같다. 정신 차리자, 약해빠져서는.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니 속으로는 계속해서 엄청난 자책과 죄책감, 자괴감을 느꼈다.


증상은 나날이 심해져만 갔다. 밥을 항상 굶는 게 습관이 됐다.

가슴에 항상 무언가 얹힌 듯이, 답답했다. 아무것도 소화가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장 좋은 고등학교 중 하나라고 불리는 곳에 진학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도 가고 싶지 않았고. 수업도 듣기 싫었다. 밥맛은 여전히 없었고.

수업 시간에도 여전히 잠을 잤다. 노는 데에도 관심이 없었고, 고작 뭔가 했다면 약간의 연애랄까.

공부는 죽어라 했지만 마치 좀비 같이 관성에 따라 죽은 몸을 움직이는 꼴이었다.

기억도 감정도 없는 뇌에 지식을 억지로 욱여넣는 꼴이었다.


고2 때였나.

시도 때도 없이 소화가 안 되고 피곤해서 양호실 단골손님이었던 나는

어느 날 양호실에 또다시 누워 오후 4시에 잠을 청하고 있었고. 꿈을 꿨던 것 같다. 어딘가로 떨어지는 꿈. 누가 내 귀에 대고 높은 톤으로 오페라를 부르는 것 같은 괴이한 꿈. 나는 그게 귀신이라고 생각했다.

죽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눈을 번쩍 떴는데 회색빛 천장이 보이더라. 그게 너무 끔찍해서 눈을 다시 질끈 감았다.

마치 눈을 감으면 이 세상이 사라지리라는 듯이. 몇 번이고 다시 꾹 눈을 눌러 감는데. 끔찍하게도 바깥에서 사람들 소리가 계속 들리는 거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사라지지를 않았다. 사라지면 좋겠는데.

그게 너무 절망스러웠다. 살아있다는 게.


이때까지도 스스로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더 어린 시절부터 이런 감정에 익숙해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가끔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 조각들을 더듬어 보면,


어린아이는 아직 두뇌가 발달하지 않아, 감정을 다 느끼지 못한다는데도.

극심한 공포와 외로움. 혼자 있는 공간의 비대함. 불안과 긴장 같은 기분들이 떠오른다.


누가 내 귀를 세게 당겨서 힘없이 끌려다니는 기억. 모두의 앞에서 혼나 쪽팔리던 기억. 새로 태어난 동생에게 모든 사람들이 가있어, 나는 이불을 움켜쥐고 어둡고 좁은 방에서 잠을 청하던 기억. 누군가 내게 호통치는 기억들. 미움받는 기억. 방 밖으로 나가기 두려웠던 기억. 아무도 오지 않는 방에서 홀로 잠들던 기억. 세차게 내리는 빗 속에 혼자 남겨져 한없이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던 기억.


어린 시절,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정상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나는 누구도 원치 않던 아이였다. 태어나서 엄마 인생을 망친 아이. 성가시기만 한 존재. 시끄럽고 불만 많고 돈을 써대기만 하는, 있어서는 안 되는 짐짝 같은 것. 이상한 것. 문제아. 존재만으로 수도 없이 미움받아 숨 쉬는 것도 웃는 것도 우는 것도 눈치 보던 기억이 내 무의식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나는 아직도 소리 내어 우는 법을 알지 못한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그 기억들이 깊이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어, 현재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부모다운 부모가 없어서, 어린아이였던 적이 없는, 학대받고 방치당하던 아이가 커서 성인이 되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남들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 또는 관계에 과도하게 집착하게 된다.


남의 거절을 극도로 두려워하게 된다.


나를 좋아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의 애정을 제대로 받을 줄 모르게 된다. 사랑받는 기분이 이상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들을 이어가면서도, 이상한 줄 모르게 된다. 언제나 그렇게 취급받아왔기에.


그리고 외로움을 타지 않게 된다. 언제나 외로웠던지라, 그게 이상한 줄 모르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상적으로 남들과 관계를 가지기 힘들게 되는 것이다.

혼자 있는 게 편하고.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게 불편해진다.



정말 행복해지더라도, 의심을 하게 된다.

너무 이상한 걸? 그럴 리가 없어.

하며 행복이 달아나기를 기다린다. 불행을 자꾸 찾아 나선다.


행복이나 안정이라는 기분이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잘못된 것만 같다.


아파도 돌봐달라고, 도움을 청하지 않게 된다.

문제가 있어도 논의하지 않게 된다. 누가 나를 정말 위해줄 거라고,

누가 나를 진심으로 위해줄 거라고 믿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방 안에서 스스로를 끝없이 저주하게 되는 것이다.

나 같은 건, 나 같은 것 때문에. 내가 나 같아서. 사랑받지 못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비난하면서 방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된다.


부모는 아이 인생의 첫 20년 정도를 함께하지만,

그 영향은 아이가 부모를 벗어나 다시는 보지 않게 된다고 해도 계속된다.

20년 간 인생을 사는 법을 처음 배웠던 기억들은 우리 나머지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결정하게 된다.

그래서 부모가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낳아서 키운다는 게 참 무서운 일인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모든 습관과 경향들, 감정들은 모두

어린 시절의 습관과 기억들에서 기인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어서 우리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자라지 못하는 성인. 아이였던 적이 없어서 여전히 아이 같은 성인.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아직도 뼛속 깊이 외롭고, 사람 못 믿고, 슬퍼할 때가 있다.

오래된 습관 같은 것이라, 어쩔 수가 없다.


30년 가까운 인생 중 10년을 넘게 우울증에 시달렸고, 불면증이 있던 시간이 없던 시간보다 더 길고.

몇 년은 울기만 했고, 그러면서 치료를 받았고, 수도 없이 많은 글을 쓰고 상담을 받았고.

지금은 그나마 많이 행복해지고, 견딜 만 해진 덕에 이렇게 담담히 글로도 쓸 수 있게 되었다.


괜찮아진다.

결국은 괜찮아진다.

괜찮아지려고 하면 괜찮아지기는 한다.


어떤 기억들을 떠올릴 때

한없이 슬퍼지고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난다면.

그 안에 너무 많은 슬픔이 숨어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성인이 돼서 강해진 내가

어려서 힘이 없던 기억 속 나의 손을 꼭 잡고 위로해 주고 한참을 울어줘야

수십 년 된 그 울분이, 괴로움이 조금이나마 풀릴 수가 있다.


내 기억 속 그 애가 슬퍼하지 않게 되어야, 외롭지 않게 되어야.

지금의 내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더 이상 어두운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을 수 있다.


부모답지 않은 부모를 만나.

지금껏 남들 모르게 속으로 홀로 울고 있는 수많은 어른 아이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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