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myselfolive Apr 16. 2021

대전, 대흥동 골목 여행

대전은 익숙하기도, 낯설기도 한 곳이다.

한동안 국내 출장이 잦아서 KTX를 일주일에도 2-3번씩 타던 해가 있었다. 부산, 대구, 광주, 여수, 순천 등 정말 다양한 지역의 남도 출장지를 찾아갈 때 마다, 스치듯 지나가는 대전이었다.

서울에서 기차만 타면 한 시간이면 도착하는 곳인데, 멈춰본 기억이 없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 곳을 일부러 찾아갔던 지난 5월. 작은 여행의 시작은 한가지 선명한 이유가 있으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 봄의 대전으로 실감하였다. 


대전 대흥동 골목 안, 햇빛을 가득 담은 아름다운 문방구 프렐류드

계획대로였다면 뉴욕 여행길이었을 봄이었다. 뉴욕 여행의 이유는 작은 연필가게 때문이었다. 연필과 햇살이 가득한 그 곳을 매일매일 인스타그램 피드로만 보다가, 그 작은 파도같은 마음들에 밀려 밀려 예약했던 뉴욕행 비행기였다. 그 모든 계획이 다 헝클어졌던 아쉬움에 몸부림치던 봄날의 어느 하루, 평상시 애정하던 문구 브랜드 프렐류드가 이 어려운 시기에 오프라인 문방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가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대전의 작은 골목 안 문방구를 찾아가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차를 세우고는 킥보드를 타고 대전 대흥동의 골목들을 돌아다녔다. 낯선 골목을 마치 매일 그 곳을 지나치는 생활자인것처럼 그렇게 생활하듯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보통의 날 가는 그런 곳들을 부러 찾아가는 그런 여행을 즐긴다. 동네 수퍼마켓, 문방구, 시장, 꽃가게, 학교 운동장, 도서관 등을 여행길에서 찾는 이유이다. 그렇게 내 동네를 탐험하듯 킥보드를 킥킥 차며 도착한 프렐류드는 한 골목의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긴 오후의 햇살이 드리우는 시간에 도착한 문방구였다. 문방구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아름다운 문방구의 커더란 창 가득 경쾌하게 자리 잡은 프렐류드의 패턴들이 넘실거리며 우리를 반겼다. 

어린 시절의 나는 매일 매일 하루에 수번씩 문방구를 들렀다. 아침에 등교하면서, 저녁에 하교하면서, 때로는 점심 시간에,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도. 학교 앞 문방구는 나에게는 위안의 장소 바로 그것이었다.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수천개의 작은 물건들간 보이지 않는 엄격한 규칙에 입각한 배열 속 보물을 찾아내는 흥분감, 무엇이든 말만 하면 척척 찾아내어 주시는 문방구 주인 아주머니의 자신에 찬 당당함, 다른 친구들이 찾아내지 못한 아주 작은 물건 하나를 찾아내었을 때의 그 희열감. 그 모든 것들이 내게는 내가 속한 그 시간의 세상 속 다른 한 쪽 끝을 마주하는 기분이 드는 작은 모험의 공간이었다. 그 작은 물건들이 주었던 위안과 즐거움 덕에 지루하지 않게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른이 되어서는 문방구를 찾을 일이 없어졌다. 그 대신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회사에서 사무용품이 필요하면 주문하라고 놓아 준 알파문구의 두꺼운 카탈로그에 매일 코를 박고 몇 백 페이지가 되는 그것들을 들추고 들추고 또, 들추는 탐색의 시간을 즐겼다. 작은 물건들을 통해 얻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부탁을 종종 듣는다.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의 위로가, 작은 격려가, 무언의 공감이 필요한 때를 마주한다. 그럴 때마다 친구를 찾아 뛰어갈 수도 있고, 나를 위한 큰 소비를 할 수도 있고,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도 있다. 나는 그럴 때 내 책상 주변의 작은 물건들을 찾아 낸다. 


책상은 나에게 작은 우주와 같다. 

내가 일궈내야 할 무언가가 일어나는 공간이 아닌가. 학창 시절에도, 어른이 되어서도, 일하는 사람이 되어서도 이 작은 우주 안에서 내가 해 내는 일은 실로 내 인생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우주 안의 작은 물건들을 채운다. 그 물건들과 함께 에너지를 채워 울렁거린다. 그런 보물들이 가득한 곳이 문방구이다.

이런 내게 프렐류드 스튜디오는 완벽히 새로운 우주였다. 

오후의 긴 햇살이 문방구 안으로 완벽하게 들어와 그 곳의 작은 물건들을 더욱 반짝이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문방구의 주인의 긴 시간이 고스란히, 그리고 아름답게 보여지는 곳이었다. 들어서자마자 몇백개에 해당하는 작고 작은 지우개들이 갤러리 전시 속 한 장면처럼 펼쳐있다. 이렇게 다양한 지우개들이 세상에 존재했던가 하는 감탄을 자아낼 무렵 눈을 돌리면, 그림자마저 칼라인 오시영 작가의 모빌들이 앙증맞게 매달려 있다. 한 쪽 벽에는 종종 밤에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마주했던 프렐류드 문방구의 주인장의 사랑스런 우주, 그녀의 책상이 그대로 놓여져있다. 그녀가 만든 문구들 뿐 아니라, 그녀가 사랑하는 문구의 주인공들이 있는 곳. 


‘낮에는 문구를 만들고 밤에는 문구를 씁니다.’  

그녀의 반짝이는 우주를 만날 수 있는 곳, 대전을 찾아가야 했던 온전한 이유가 된 그곳, 프렐류드 스튜디오. 나의 대전 골목 여행의 첫번째 장소이다.

프렐류드 스튜디오 : https://www.instagram.com/preludestudio/

OPEN 12:00 - 20:00 / 월요일 휴무, 대전광역시 중구 중앙로 129번길 30


이름처럼 달콤한 시각적 즐거움까지 선사하는 카라멜 파스타 바

다음 프렐류드 스튜디오를 찾아 나선 여행길 함께 찾으리라 마음 먹었던 장소들이 있다. 그 중 단연 첫번째로 손꼽히는 곳이, 생면 파스타 집으로 유명한 카라멜 파스타 바이다. 프렐류드에서 걸어서 2분 거리. 이 골목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들이 함께 하기로 약속한 곳인가 하는 즐거운 탄성을 불러 일으키는 곳. 

머무르는 모든 공간이 문화생활이 되도록 지향하는 카라멜의 러프하고 캐주얼한 공간. 프렐류드 스튜디오의 뮤제 다은님의 강력 추천 메뉴 - 알리오올리오, 뇨끼 그리고 알배추샐러드. 골목까지 찾아가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는 얼마 전 오픈한 밀키트 샵인 카라멜의 밀크샵의 라구 밀키트를 추천한다.

카라멜 파스타바 : https://www.instagram.com/karamel_pastabar/

Everyday OPEN 11:30 - 21:00 (Break time : 15:00 - 17:30), 대전광역시 중구 보문로 288번길 19


도시 여행자들에게 삶의 다양한 방향을 제안하는 서점, 다다르다

처음 다다르다를 마음에 두었던 것은 영수증 일기 때문이었다. 흔하디 흔한 영수증, 종종 받지도 않고 그냥 버려주세요라고 하던 그 영수증 종이 하단 가득, 서점 아저씨의 어느 날의 일기가 들어있었다. 그 영수증 일기를 받으려고 서점을 향했다. 책 한 권을 사고 그 한 권의 책 뿐 아니라 서점 아저씨의 생각까지 선물받는 기분이었다. 처음에 다다르다 서점의 이름을 듣고는 ‘어딘가에 다다르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던 내게, 서점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즐거운 발견이었다. Differeach - 다르다 + 도달하다 - 이 두 가지 단어가 합쳐져있구나 생각하게 된 이 아이디를 보고 ‘아, 다 다른 사람들에게, 다 다른 삶의 방식을 책을 통해 다다르는 그런 서점’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서점, 다다르다는 1층에는 작은 카페의 공간에서 프릳츠 커피를 만날 수 있다. 기분 좋은 커피 향과 함께 올라온 2층에서는 나무 책장 한 가득 단정하게 꽂혀있는 책들과 커다란 영수증 일기를 만날 수 있다. 구석구석 창가 옆 자리에는 고요한 독서자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모습이 이 서점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광경이었다. 

대전의 작은 골목 속 이 따뜻한 서점, 다다르다의 아멜리에와 라가찌는 #삶은여행 이라며 서점에 들린 낯선 도시 여행자들을 반갑게 맞이해주신다. 그 곳에서 우리는 또 다른 삶의 관점과 방식을 이해하는 새로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멋진 책 한 권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가득한 곳이다.

다다르다 (서점) : https://www.instagram.com/differeach/

Open 12:00 - 20:00 / 화요일 휴무, 대전광역시 중구 중교로 73번길 6


일상적이지만 일상적이 아닌 곳을 찾아서, 사무실이나 사무실이 아닌 Samusil

여행이라는 것이 떠나기 전에는 무척 특별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길을 나서려는 마음이 앞선다. 그렇게 찾아간 여행지에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의 장소들이 우리를 마주하나, 그것이 왜 그렇게 다르게 느껴지는지 감탄을 하게 된다. 뉴욕을 여행하면서 즐거웠던 카페들이 그러했고, 런던을 여행하면서 흥분했던 뮤지컬 공연들이 그러했고,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면서 탄복했던 자연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우리는 일상에서도 카페에 가고, 뮤지컬도 보고, 자연을 마주한다. 여행을 가면 특별해지는 것은, 또는 여행을 가서 특별한 곳을 찾고 싶은 마음은, 일상적이지만 일상적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또는 그렇게 일상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이런 곳을 통해 여행을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기에 사람들이 이 곳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사무실 (카페) https://www.instagram.com/samusil_coffee/

OPEN 11:00 - 23:00 / 대전광역시 중구 대종로 452번길 3


바로 딱 그 집! 지하 상가 속 보물 같은 #바로그집, 아이스크림 떡볶이

지하 상가, 이 단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말랑해졌다. 어느새 고층 건물들이 당연하고, 멋진 쇼핑 컴플렉스들이 즐비한 도시에 살고 있는 어른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 친구들과 와글와글 떠들며 일탈의 장소의 아이콘이었던 지하상가의 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대전에 가면 꼭 먹어달라며 신신당부했던 친구의 간절한 눈빛을 떠올리며, 킥보드를 신나게 굴리며 내려간 지하상가의 바로그집. 이름도 바로그집인 바로 그집.

아이스크림 떡볶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정말로 떡볶이 소스에 아이스크림을 넣어서 이런 맛이 난다고 하셔서 웃음을 더했던 장소. 하루종일 골목 여행을 한 후, 에너지 충전으로 최고였던 바로 그집.

OPEN 평일 11:30 - 21:00 / 셋째주 화요일 휴무, 대전 중구 중앙로 145 지하상가 C나 61호


무채색의 도시가, 다채로운 색으로 다가왔던 대전의 골목 여행

내게, 정말 아무런 색으로도 존재하지 않았던 한 도시가, 이 골목 여행 이후 때때로 다시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대전, 청주, 천안 등을 등지로 자연과 잘 어울리는 건물들이 속속 생기고 있고, 감성 가득 담은 카페들도 부쩍 보이고, 무엇보다 다시 백 번 가고 싶은 프렐류드, 다다르다 등을 더 온전히 즐기기 위해 3박 4일 여행을 계획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작은 골목 골목 사이에, 그들의 일상을 누리듯 그렇게 찾아가는 골목 여행, 그 작은 매력에 빠져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케터들의 애씀의 흔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