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북 페어링 큐레이션 골목 여행
많은 사람들이 ‘좋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좋은 공간'을 찾아가느라 애를 쓴다.
우리에게 ‘좋은 공간'이란 무엇일까?
좋아하는 카페, 좋아하는 편집숍, 좋아하는 와인바 등 우리는 그 ‘좋아하는 공간'을 통해 즐거움과 위안을 얻고 있다.
나의 외국 동료들은 한국을 ‘카페의 나라'로 부른다. ‘커피의 나라'도 아니고, ‘카페의 나라'라니. 우리가 커피 재배국도 아닌데 무슨 소리냐며 되물었던 그 날의 대화를 기억한다. 한국에 와서 가장 놀라웠던 것이 두세가게 건너 하나씩 카페가 있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고 했다. 언제든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나라인 것이 놀라웠고, 그 다음으로는 사람들이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고,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이 놀라웠다고 했다. 스탠딩으로 에스프레소 바를 즐기는 유럽의 사람들이나, 음악이나 대화를 즐기는 다른 나라의 카페와는 달리 우리는 유독 카페라는 공간 안에서 다양한 시간들을 보낸다.
여행을 가면 하루에도 두세군데의 카페를 들린다. 하루에 커피는 한 잔이면 충분하면서도, 하루에 여러번 카페를 여행지에서 선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공간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궁금해서, 그렇게 귀를 기울인다. 그 공간 속의 공기들, 식물들, 작은 물건들, 가구들, 사람들, 희미한 향까지도 모두 한데 어우러져 어떤 이야기를 전한다. 그런 이야기가 선명하게 보이는 곳을 좋아한다.
그래서 공간을 갈 때면, 그 공간과 닮은 책들이 떠오른다. 그 느낌, 그 마음, 그 기억, 그 위안들을 건네주던 책들이 어느새 불쑥 마음에 떠오른다.
연희동, 편지 가게 글월을 찾아 오느라 들리던 연희동은 왠지 모르게 그 골목 안쪽으로만 들어서면 갑작스레 마음의 평화 같은 것이 찾아온다. 그 골목들이 내어주는 아우라 같은 것들이 있다. 고요하면서도 다정하고, 편안한 마음을 건네어준다. 그 마음을 얻으려고 자꾸 연희동에 간다.
https://www.instagram.com/_woodlot_/
13:00-19:00 | 월화 휴무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증가로 31
인스타그램에서 볼 때 마다 넋을 놓고 고요하게 움직이는 우들랏을 보면서, 우들랏의 공간에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마음이 어지러웠던 작년 봄 날의 오후, 우들랏을 가야겠다는 마음이 가득했던 날이었다. 연희동으로 향했던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신 우들랏의 승현님은 그 곳의 아름다운 모빌과 너무 잘 어울리는 편안한 목소리와 몸짓으로 반겨주셨다. 호들갑스럽지 않은 그 평화로운 환대가 참 좋았다. 출판사에서 일을 해 오던 사람이라 평생 글로 일을 하다가, 손으로 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이야기를 시작해주셔서, 우들랏 스튜디오 안의 아름다운 모빌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모빌은 지구의 중력과 노는 일이에요. 그냥 혼자 두면 저절로 그리 움직여요."
한번 툭 건드리고 나면 혼자 이렇게 저렇게 움직인다. 그 움직임이 부산하지 않고 따뜻했다. 그래서 한참을 멍하니 움직이는 모빌들을 바라보며 나를 안아주는 듯한 오롯한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느끼는 시간을 보냈다.
빨갛고 우아한 우들랏, 그 모빌을 집으로 들이고 나서 잠들기 전 볼 수 있도록 침대 머리 맡에 설치했다. 볼 때마다 떠오르는 사진책이 있었다.
몇 년 전에 선물받은 책이다. 빨간색 커버가 단정해보이다니, 그 묘한 이질감이 좋았다.
그리고, 사진집을 보는 내내 울렁대며 넘실대던 감정을 들여다보았다. 나의 아빠가 바라보았을 세 딸들의 시간들이 이러했을까, 나의 아빠가 기록해주었던 우리의 역사들이 이러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의 딸의 시간들을 기록하는 내 마음이 그러했다. 책을 쥐고 한참을 넘실대던 마음을 부여잡고 나를 달랬다.
우들랏의 빨간 동그라미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래던 그 순간, 이 책이 떠올랐던 것은 아마도 그 마음이 닮아서였을까.
캐피넷 클럽
https://www.instagram.com/cabinetclub_official/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433-10 1-3층
1층 아트샵과 가든 : 화 - 일 오후 1시 - 8시
2층 갤러리 : 월 - 일 오후 12시 - 8시
3층 오디너리핏 : 월 - 일 오후 12시 - 8시
소나기를 만났던 토요일 오후, 비를 잠시 피하고 찾아간 곳이 연희동의 캐비넷 클럽이었다. 연희동의 작은 언덕 같은 곳에 위치한 집. 하늘을 만나러 간 집이었달까. 정감어린 옛날 큰엄마 집 같은 공간 전체가 다 좋았지만, 옥상을 차지한 오디너리핏의 설레는 커피향과 함께 선물 받은 듯한 멋진 하늘과 산의 풍광은 소나기 속에 찾아갔던 골목길의 그 어떤 낭만까지도 전해주는 그런 매력이 뿜어지는 곳이다.
들어서자 마자 마주하는 다정한 정원도 좋았고, 1층과 2층에 이어진 캐비넷 클럽의 아트샵과 갤러리는 발견의 기쁨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수많은 포스터들에서 국내의 신진 작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도 있는 캐비넷 클럽. 온라인 스토어로 한 번 들어가면 수 많은 포스터 속에서 허우적대며 빠져나오지 못하곤 하는데, 이 곳에서 포스터들과 작가들의 작은 오브제들을 직접 마주하니 그 기쁨이 배가 되는 곳이다.
소나기 뒤 개인 하늘을 마주하고 긴 시간을 보내고 온 연희동의 소중한 공간.
그래서였을까, 이 곳과 닮은 책을 떠올리니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이 떠올랐다.
처음 이 인터뷰집을 만났을 때, 탄식을 내뱉었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아, 존경하는 마음 중에, 깨끗한 존경은 어떤 마음일지 책을 열기도 전에 심장이 두근거리며 상상이 가는 것이 아닌가. 내가 존재하는 현재의 세상에 깨끗한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한다.
자꾸만 떠오르는 목소리들, ‘문장으로 된 목소리’를 만나기 위해 시작된 그녀의 인터뷰. 그렇게 마주본 네 사람에 관한 책이다. 그녀가 감탄과 부끄러움을 숨길 수 없는 책이라고 소개했던 이 책 속의 네 사람을 마주보고 나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자꾸 떠올리고, 기억하고, 마음의 세수를 했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존경의 순간. 그 순간을 사유하지 않고 우리와 함께 나누어 준 그녀에게도 감사하며.
https://www.instagram.com/shop.grove/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90-5, 402호
오후 1시 - 7시 오픈 (목, 일요일 휴무)
grove 를 만난건 일년 전 쯤, 레터샵 글월에서 편지 박스를 찾게 되면서였다. 참으로 단정하고 단단해 보이는 나무 박스들이 글월의 한켠에 아름답게 놓여있었다. 그 용도를 물으니, 받은 편지들을 모아두면 좋을 것 같다하시니 그 작은 나무 박스 하나를 바라보자니 이미 마음이 동하였다. 그렇게 집에 몇 개의 grove의 나무 박스가 쌓이게 되었다.
grove는 ‘작은 숲’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작은 숲을 ‘나의 공간’이라 여기자는 것. 바로 그 나의 공간은 방이나 책상 위처럼 어떤 장소가 될 수도 있고, 나의 가방 속, 혹은 마음 속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어떤 것들로 나의 공간을 채울것인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이야기하는 grove. 공간을 채우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삶을 더욱 편안하고 윤택하게 만들어 줄 선택을 제안하는 우아한 편집샵, grove가 글월의 옆 집에 문을 열었다.
어반북스, 아틀리에드에디토의 문장수집가. Shop.grove 와 무척 닮았다. 단아하고, 우아한 모습도 그러하고, 위안의 순간이든, 반짝이든 순간이든 그저 잠시 손에 쥐고 펼치기만 했을 뿐인데 그 순간의 문장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닮았다. 나의 삶을 편안하고 윤택하게 만들어 줄 선택을 제안하는 grove와, 나의 그 어느 순간을 위로해주는 문장을 제안하는 문장수집가. 이 닮은 꼴의 책과 공간만으로도 따뜻한 위안을 가득 담을 수 있다는 것.
오늘 마주한 문장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내가 정말 나다워질 수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몽테뉴,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