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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May 02. 2024

드디어, 환경탐구!

환경탐구일지 #1

<더 잘 사는 삶>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시작한 탐구모임에서 창의성, 일, 관계, 삶에 이어 환경이라는 주제를 다루겠다는 생각을 처음 한 건 3년 전이다. 환경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참여형 교육 기획을 한다는 이유로 요청받은 환경교육을 두어 차례 진행해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행동을 환경친화적으로 바꾸는 것은 "전문 지식"보다 "관심"과 "보람"이라고. 그리고 든 또 하나의 생각! 환경에 대한 시각이 바뀌면, 큰 노력 없이도 좀 더 자연친화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불확실한 미래가 아닌 당장의 내 만족과 보람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환경탐구를 하고 싶었다. 환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야말로 더 잘 사는 삶의 키가 되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렴풋한 내 생각과 달리 <환경탐구>라는 타이틀로 모집을 시작했을 때, 신청자는 첫해 두 명, 둘째 해 세 명이었다. 피어코칭 방식과 집단지성에 기반한 라이드 탐구 모임의 최소 인원은 6인이다. 두 번의 모집 실패를 경험하고 나자 이건 모집이 안 될 주제인가 싶었다. 분명 시대적으로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기존 라이드 탐구 참여자들에게 피드백을 요청했을 땐, 약간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있었다. 환경은 어떤 측면에서는 아는 게 힘이 아니라 모르는 게 약인 주제 같다는 의견이 있었고, 나를 위한 탐구가 아닌 사회를 위한 탐구의 영역이라 다른 주제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고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했던 교육을 비롯한 요즘 성행하는 환경 교육은 정부가 주최인 무료 교육이 대부분이라 개인이 부담하는 참가비가 존재하는 데다 다양한 탐구 퀘스트로 높은 참여율을 요하는 라이드의 방식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가비 무료, 퀘스트 자율, 워크숍 참여에 대한 참가비 보증금 제도와 퀘스트 수행에 대한 선물 제공! 이게 내가 선택한 대안이었다. 시작해 보니 이런 방식에는 확실히 장단이 존재했다. 어쨌든 덕분인지 최소 인원 6명이 모였다. 모두 여성이었다. 예전 같으면 다양성이 부족하다며 취소했겠지만, 그저 함께 탐구할 동료가 생겼다는 사실에 감사와 환영의 마음으로 시작했다. 읽어야지 마음만 먹고 있던 주제 관련 도서들을 읽기 시작했다. 카드뉴스로 이어지는 독서야말로 내겐 탐구의 시작이었다. 



탐구 생활의 기본은 자기 이해이다. 우리는 결국 자기다움으로 세상을 보고 행동을 하지 않던가(We see the world not as it is, but as who we are). 모임은 서로의 다름을 통해 자신을 더 잘 이해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다름은 결국 나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쉽게 인지하고 자신에게 맞는, 자신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뷰, 코칭대화 방식을 활용한다. 이것이 모든 탐구모임의 첫 과정이라면 그다음인 주제이해는 매 모임이 다르고, 특히 새로운 주제를 시작하는 이번에는 조금 더 고민되는 과정이었다.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있던가?  


환경이란 무엇인가? 


이 주제는 녹색의 인상을 주지만 의외로 개인에 따라 모호하게 읽힌다. 일부 사람은 환경이란 말에 우리 주변의 자연을 떠올렸고, 생태계, 보호라는 단어들은 연관어로 떠올린 반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자연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 조건을 떠올렸다. 실제 환경은 다양한 의미로 활용된다. 그 기저는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는 것, 상태 등의 의미를 내포한다고 하겠다. 생각하는 환경의 중앙에 지구자연을 가운데 넣는 것과  혹은 사람을 넣는 것의 차이는 아무래도 클 수밖에 없을 듯하다. 환경의 가운데 나를 넣는 사람으로서 내가 만든 환경탐구 지도는 다음과 같다. 사실 이걸 만들고 나서 이런 인간 중심적인 녀석이라는 자기비판적 생각이 들었으나 그게 내 현실이니 인정하기로 했다. 아직 탐구 초기이고 처음이라 조금씩 발전시켜 가야겠지. 나는 환경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리적인 것과 만져지지 않아도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제도적인 것으로 구분했다. 물리적 환경은 자연적인 것인공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을 듯하다. 동식물과 하늘, 땅, 바다 등이 자연적인 것이라면 내가 살고 있는 집, 그 안의 가구, 차, 컴퓨터 등은 내가 자주 접하고 영향을 받는 나의 인공적인 환경이라 하겠다. 이번 모임에는 도시농업/텃밭, 동물권, 비건, 쓰레기 등의 이슈에 관심이 있는 크루들이 있는데 이 주제들은 자연과 깊은 관련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인공환경이자 환경 개선이 이슈라는 생각을 했다. 인간 선택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나는 문화 다양성만큼 생태계 다양성에 관심이 있는데 이와 더불어 기후의 이슈는 자연보호의 관점으로 볼만한 자연환경 이슈가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이러한 이해의 작업들이 환경을 정의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Don't define, but simplify). 딱 맞아떨어지지도 않는다. 그저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개념화 과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나도 <자연의 이름 붙이기>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다루는 것처럼 완벽한 구조화를 꿈꾸며 인공적으로 자연을 분류하려 드는 짓이 머저리 같은 짓이라는 것쯤은 이제 알고 있다.   


내가 환경탐구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레이첼 카슨의 환경학 고전이라 불리는 <침묵에 봄>에서 인용한 대로 "참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면,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모르는 게 약일 수 있는 상황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 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내가 생각하는 오만한 인류(나)의 가장 큰 장점은 대부분의 것들을 선택하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현시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선택할 수 없다기보다 선택권을 만들어 낼 상상력의 부족이 원인 아닐까?


아직까지 인류가 발전,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선택해 온 역사는 단기적으로는 편리함을 주었을지 모를지언정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한둘이 아니라는 게 시대에 걸쳐 증명되어 왔다.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과학, 화학 등 어려운 분야의 전문가들은 그 분야의 전문가일지언정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지구의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니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전문성, 이해도를 보태 집단지성의 힘으로 더 나은 선택을 생각할 때이다. 인류는 그만큼 발전했고, 지구는 그만큼 위험해졌기 때문이다. 난 지구 없는 인류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지구가 없다면 내가 존재하지 않은 확률은 매우 높다. 내 짧은 생의 추억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침묵의 봄>에서 언급된 인류의 어리석은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첫 환경 탐구일지를 마치려고 한다. 6주간의 짧은 탐구를 통해 내가 어디에 가 닿을 수 있을지, 무엇을 얻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이 경험으로 내가 더 잘 사는 삶으로 한 발짝 나아가길 바란다. 


[침묵의 봄, 지표수와 지하수 중 정리 요약] 고의적인 독극물 방류가 너무나도 일상적으로 자행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런 물이 식수원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저수지 낚시라는 취미생활을 즐기기 위해 이런 일을 저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당국을 설득해 원치 않는 어종을 몰살하는 화학물질을 저수지에 투입하는 모종의 계획을 실행한다. 이런 과정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나 등장할 정도로 기이하다. 저수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지 낚시꾼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낚시꾼들의 이러한 계획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오염된 물을 마시거나 아니면 유독물질을 제거하고 수질을 정화하기 위해 세금을 더 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하지만 아무리 수질을 정화한다고 해도 유독 물질을 완전히 걸러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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