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고, 그렇게 두 번을 더 환승하면 회사에 도착한다. 출근해서 오늘의 업무를 처리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다보면 하루가 금방이다. 퇴근하고 동네에 도착하면 벌써 하늘이 깜깜하다. 그럼 할 수 있는 거라곤 기껏 동네 친구와 함께 마시는 맥주 한 잔. 이렇게 살 순 없다고 반성하며 갱생을 다짐한 날은 헬스장에서 런닝 한 세트. 얼굴에 마스크팩을 붙여놓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났구나 생각하며 잠드는 하루. 이런 매일의 반복이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생각하며 버틸 수 있는 힘은 휴일이 있기 때문일 거다. 원래 나는 노는 걸 너무 좋아하는 일명 유희왕이었다.
지금 들어가서 노시려구요?
제안서 마감을 앞두고 회사에서 밤을 꼴딱 샜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 졸음은 쏟아지고 눈은 감기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놀고 말겠다는 의지로 택시를 타고 난지 캠핑장으로 내달렸다. 캠핑장에 도착하니 새벽 다섯 시쯤. 입장 밴드를 구매하기 위해 매표소 직원에게 말을 걸자 판매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금 들어가서 노시려구요?" 판매원의 비웃음도 나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들어간 캠핑장에서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아침을 맞았고, 나는 그 길로 옷을 갈아입고 바로 사무실로 향했다.
놀고 싶어, 근데 놀고 싶지 않아
이렇게 놀기 좋아했던 내가 회사 생활 3년 만에 변했다. 그 이유의 8할은 아마도 1년씩 노화되고 있는 나의 체력 때문이라고 말하겠지만 사실 수고롭게 놀고자 하는 열정이 예전같지 않아서다. 평일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주말엔 뭐할까 생각하다가도 이내 '피곤한데 뭘 또 해. 그냥 집에서 쉬자' 라는 생각이 뭉실뭉실 피어오른다. 정말 놀고 싶은데, 놀고 싶지가 않다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온다. 예전에는 그렇게 아까웠던 택시비가 세상 제일 아깝지 않은 돈이다. 온몸을 꾹꾹 눌러주는 마사지를 받을 때면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다.
우리 배부른데 마저먹고 별똥별 보러 갈래?
이렇게 변절(?)해버린 내가 다시금 수고스럽고 유난하게 놀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있으니 얼마 전 바로 시간 당 유성우가 150개씩 쏟아진(다고 하지만 볼 수 없었던) 날이다. 그날도 퇴근을 하고 친구와 동네 단골집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문득 오늘 유성우가 떨어진다고 했던 기사가 떠올랐다. 쌩뚱한 나의 제안에 쿨하게 콜을 외친 친구 덕분에 자리를 마무리하고, 집에 가서 돗자리를 주섬주섬 챙겨 나왔다. "우리 졸업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누워있음 별똥별 보일 거 같지 않아?" 몇 년 만에 호기롭게 방문한 초등학교는 정문이 굳게 잠겨있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 이대로 들어가긴 너무 아쉬워 친구네 집 옥상으로 행선지를 바꿨다.
여름 분위기가 물씬 나는 보사노바 음악을 틀고, 친구네서 챙겨온 얼음에 술을 야금야금 타먹으며 유성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하늘은 깜깜하기만 했다. 10시부터 떨어진다는 별은 아무런 기척 없이 12시가 되도록 평온했다. "와 진짜 너무 더워 죽을 거 같지만 지금까지 기다린 게 너무 아까우니까 우리 30분만 더 있다 가자" 라고 말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오매불망 기다리던 별똥별이 툭 하고 떨어졌다. 애초에 서울에서 별을 보겠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었을 수 있지만, 어쩜 두 시간 반 동안 정말 딱 하나가 떨어질 수 있을까. 그래도 그때의 감격스러움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아, 물론 소원을 비는 것도 잊지 않고 살뜰히 챙겼다.
수고한 기억이 일할 때 뿐이라면 속상하잖아
유난을 떨어가며 별똥별 하나 본 게 뭐 대단한가 싶지만 그래도 이런 수고로움이 아니었다면 여름 밤에 떠올릴 수 있는 귀여운 에피소드는 탄생하지 못했을 거다.(옥상에 누워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너무 귀엽지 않은가?) 친구와 옥상에 누워 노닥거리지도 않았을테고, 보사노바 음악의 로맨틱함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했음은 물론 (구남친을 욕하며 마시는) 시원한 술맛도 몰랐을테지. 아마 그냥 집에서 시원하게 에어컨 틀어두고 티비로 삼시세끼나 보고 있었을거다.(이것도 나쁘진 않습죠) 무엇보다도 이러한 에피소드가 켜켜이 쌓여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건데, 내 평생 수고한 기억은 일할 때 뿐이라면 얼마나 비참한 기분일까. 그래서 이 날을 계기로 나는 다시 유희왕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예전만큼의 명성은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 수고스럽게 놀아야지. 다양한 색깔의 에피소드로 촘촘하게 삶의 여백을 채워나가야지.
그러니 앞으로 저와 만나는 모든 분들, 조금 유치하고 유난스럽더라도 같이 수고롭게 놀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