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즈음에는 혼자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
부모님 집에 딸린 내 방이 아니라 정말 나만의 공간
스물 일곱, 직장 생활을 한 지도 벌써 만 3년이 된 나는 부끄럽게도 아직 캥거루족이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쓰는 건 아니다. 단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을 뿐이다.
사실 한 문장으로 포장한 이 간단한 말 속에는 엄청난 이해관계가 담겨있다. 가히 살인적인 서울 집값에서 매달 주거비용으로 지출되는 고정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엄청난 혜택이기 때문이다. 어디 주거비용 뿐인가. 빨래, 청소, 설거지 같은 생존을 위한 가사노동부터 화장지, 치약, 샴푸 등의 자잘한 생필품 구매 비용, 그리고 최근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전기 누진 요금을 비롯한 각종 공과금까지. 이 모든 것을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부 공짜로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내 몸을 누일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을 제공받는 혜택을 얻기 위해서는 동시에 맞바꿔야 하는 대가도 꽤 크다. 저녁 7시만 되면 어김없이 퇴근 여부를 묻는 엄마의 전화를 귀찮지만 티내지 않고 받아야만 한다. 피곤함이 극도로 몰려와 그 누구와도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은 날에도 부모님의 질문에 꾸역꾸역 답을 토해내야 한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새벽에 들어가는 날에는 다음 날 아침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잔소리 폭탄을 견뎌야 한다. 얹혀사는 처지기 때문에 큰 가구를 새로 들인다거나 벽지를 마음대로 바꾸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회사와의 거리가 꽤 되므로 출퇴근을 위해서 적어도 매일 1시간 이상을 대중교통에 꼬박 투자해야 한다.
연애라도 할 때는 이 모든 자유의 속박과 불편함이 배가 된다. 폭염에 시달리는 더운 여름에도 통화 내용을 들키지 않기 위해 방문을 꽁꽁 닫아놓아야 하고, 그마저도 밤 늦게 화장실에 가는 부모님께 발각되면 이 시간에 뭐하냐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공식적으로 외박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캥거루족으로 연명하고 있는 건 독립할 만한 깜냥이 되지 않아서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내 처지가 그렇지 못해서. 나는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여행을 다녀와야 하고,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은 직접 가서 봐야하고, 체력 증진과 다이어트를 위해 헬스장에도 다녀야 한다. 흠모하는 작가의 책은 반드시 사서 읽어야하며, 스트레스 완화를 위해서는 치료보다 쇼핑이 저렴하다고 믿으니까. 그리고 퇴근 후에는 시원한 맥주 한잔을 곁들인 친구들과의 수다가 꼭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지금 내가 벌고 있는 수입으로는 절대 답이 나오질 않는다.
부모님하고 같이 살면 좋잖아 돈도 많이 모을 수 있고
결혼 자금 모아서 시집 가면 되지!
맞는 말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 절약할 수 있는 돈이 꽤 크다. 그리고 난 그 돈을 저금하는 대신 내 일상의 만족을 높이기 위해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지출을 줄여서 돈을 모은데도 결혼으로 독립하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그건 혼자가 아니라 둘이니, 완전한 독립이 아니다. 나에겐 혼자만의 시간과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니까. 결혼을 할지 안할지는 아직 모르고, 설령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된대도 그 전에 반드시 혼자만의 독립을 이루고 말리라.
최근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서른 즈음에는 나만의 공간을 가진 완전한 독립을 이루어 내는 것. '그때 쯤이면 쥐꼬리만한 지금의 연봉보단 수입도 조금 오를테고, 지갑 사정의 팍팍함도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에 기대서.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마음대로 돈을 써선 안되겠지. 그래도 앞으론 돈과 맞바꾼 내 자신의 자유를 찾고자 노력해보려 한다. 지금의 마음으로 화이팅해서 미래의 내가 꼭 서른 즈음엔 독립을 이뤘으면 좋겠다. (아, 올해까지는 긁어놓은 카드 값이 있어서.... 내년부터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