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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진 Jun 01. 2020

여름, 런던은 축제 중(?!)

날씨를 겪어보니 이해가 됩니다

같은 도시가 맞나 싶습니다. 여름 런던은 겨울과는 사뭇 다릅니다. 오후 4시면 이미 컴컴해져 괜스레 기분을 가라앉게 만들더니 이제는 밤 9시가 되어도 환합니다. '흐린 날, 비 오는 날이 좋다고? 실컷 느껴봐라'라고 말하는 듯했던 심술궂은 날씨도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푸른 하늘은 높디높고,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기분 좋게 몸을 스칩니다. 근심도 우울도 무력해질 것만 같은 날씨입니다. 괜히 즐겁고, 유쾌한 기분이 듭니다.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통계를 보면 유럽에서도 영국의 피해가 가장 큽니다. 인구당 확진자, 사망자수가 가장 많습니다. 최악은 지났다고 하지만, 사태가 완전히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뉴스로만 소식을 접하다 집 밖으로 나서면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리젠트 파크, 세인트 제임스 파크, 그린 파크와 같이 거대한 왕실 공원에서든 집 바로 뒤 소박한 공원에서든 한가로이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겨우내 누리지 못한 햇빛을 온몸에 저장이라도 하겠다는 듯 몸을 잔뜩 드러낸 채 잔디밭에 누워 햇살을 즐깁니다. 친구, 가족과 함께 음식을 싸가지고 나와 먹기도 하고, 맥주나 와인을 즐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너른 풀밭 위 자유로운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뮤직 페스티벌에라도 온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참고로 영국 정부는 지난 5월부터 개인적인 야외 활동을 무제한 허용했고, 하루에 한 번은 가구 외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번달, 그러니까 6월부터는 6명까지 모임을 해도 된다고 합니다. 느슨한 규제를 유지하는 정부도, 권고를 넘나들며 좀처럼 야외활동을 자제하지 않는 사람들이 얄밉기도 했는데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됩니다. 1년 내내 우중충한 날씨를 견뎠고 어쨌거나 시키는 대로 두 달을 실내에만 머물렀는데, 이 아까운 날씨를 낭비할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더구나 런던의 공원은 탁 트인 야외이고, 넉넉한 나무 그늘부터 잘 가꾸어진 수십여 종의 장미, 호숫가를 하릴없이 떠다니는 오리, 백조, 펠리컨 등 볼거리까지 가득한 완벽한 쉼터이자 놀이터이니까요.

세인트 제임스 파크. 왕실 공원 중 하나로 과거 왕실 정원으로 사용되던 녹지를 시민들에게 개방, 도심 속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달까지 쌓인 숙제를 해치운(물론 가장 중요한 논문이 남았지만요!) 저 역시 요즘은 발길 닿는 대로 런던 시내를 탐험 중입니다. 찬찬히 공원을 걷기도 하고, 한국의 을지로와도 같은 힙스터의 성지, 캠든에도 다녀왔습니다. 드디어 집 바로 옆 버로우 시장(Borough market)에서 장을 보고 굴도 사 먹었습니다. 시장 상인들은 대부분 소규모 자영업자로, 조금씩 돌아오는 손님들의 발길을 반갑게 맞이하며 생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저도 세인스버리나 테스코 같은 슈퍼마켓 체인에서만 장을 보다가 활기찬 시장에서 장을 보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미미하지만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도 들고요. (참고로 락다운 기간 동안 영국 슈퍼마켓 체인인 세인스버리와 테스코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https://www.ft.com/content/ea2df582-a3f1-46b0-865b-8dd780d34e37)


독특한 간판이 인상적인 캠든 거리.
런던브리지 인근 버로우 마켓. 락다운 중에도 영업을 이어갔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소 완화 돼 발길이 다시 늘고 있다.


다만, 락다운 중 런던 탐험의 한 가지 난처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없다는 겁니다. 일부 테이크어웨이를 위해 문을 열어둔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레스토랑, 바, 상점이 문들 닫은 데다 공중화장실까지 폐쇄된 터라 아무리 급해도 해결할 곳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실제로 저의 플랏 메이트들은 산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급한 일(!)이 갑자기 찾아와 거의 뛰다시피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지요. 저는 이런 상황이 걱정돼서 밖에 나가기 직전 꼭 화장실에 들르고, 가급적 밖에서 무언가를 마시지 않습니다. 공원에 보면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들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 물론 얼마 전 공원에서 주변을 수상하게 살피며 풀숲을 헤치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긴 했습니다만... 며칠 전 BBC에서 이런 상황을 기사화하기도 했네요. 한 인터뷰이가 '먹기가 두렵다(I'm scared to eat)'라고 말했는데, 제가 바로 그런 심정입니다. ( Coronavirus: When will public toilets be reopened? *https://www.bbc.co.uk/news/uk-52774794 ) 


이번 달부터는 레스토랑과 펍, 상점들이 서서히 문을 연다고 하니 이 '긴급 상황' 은 좀 나아질까 싶습니다. 

아, 물론 정말 긴급한 상황부터 하루 빨리 나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리젠트 파크의 장미 정원. '자유로운 영혼(Free Spirit)'이라는 장미 이름이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영국 사람들의 기질을 잘 보여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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