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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ssically Jan 28. 2024

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무엇을 채워 넣을 것인가?’

단식을 한 후에 일주일쯤 지나면 라면, 떡볶이를 야식으로 먹고 있을 수 있다. 이사를 하면서 쓸모없는 물건들을 처분했으나 이내, 곧 새 집 현관 앞에는 택배박스들이 쌓이고 집 안 곳곳에 물건들이 들어찬다. 스마트폰을 비우는 일도 이와 비슷했다. 정신과 시간을 갉아먹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앱들을 삭제했지만 여전히 네이버뉴스 속을 헤맬 수도 있고 쇼핑사이트에서 세일 아이템을 모두 훑으며 장바구니를 채울 수도 있다. 결제라도 하면 다행인데 1시간을 훌쩍 보내놓고 그냥 창을 닫는다. 나가서 하는 윈도쇼핑은 걷기라도 하지.


스마트폰이 요주의 물건인 것은 맞다. 여태껏 만나 본 중 비교불가로 막강하다. 그런 물건에서 한 발 짝 떨어지기로 결심을 했다면 앱들을 삭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앞으로는 좀 더 시간을 잘 활용해 보겠어.’라는 의지에 기대는 것도 헛된 기대다. 40년 넘게 나와 같이 살았으니 이제 우리도 그 정도는 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았을 때 일상의 속도가 느려지고, 새소리가 들리고, 타인의 삶을 엿보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좀 더 여유로워졌다는 등등의 감동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하루가 힘들었던 날, 몸이 지치거나 호르몬에 의해 마음이 널 뛰면 다시 쉽게 도망갈 곳을 찾게 된다. 스마트폰이 아니더라도 태블릿, PC, TV, 넷플릭스가 피신처로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몸의 변화를 위해 단식을 했다면 내가 유지하고 싶은 몸을 위해 무엇을 넣을 것인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면 무엇을 내 옆에 남길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하는 것처럼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진짜 세상에 더 주의 기울이는 일상을 꾸리기로 결심했다면 비워낸 그 자리에, 시간에 무엇을 채워 넣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놓쳐서는 안 된다.


물건들을 버리는 일이 말 그대로 집 청소로 끝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게 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기기들을 조금 덜 써보자’에서 시작한 이 과정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리 많이 빼앗긴 줄도 몰랐던 나의 시간과 정신, 어쩌면 영혼까지 어디로 되돌려 놓아야 할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 이 질문에 답하게 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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