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패닉이 흑인좀비를 죽이는 날은 언제 오려나.
총을 든 흑인이 곧이어 등장한 다른 흑인을 쏴 죽이며 말한다. "There's only one black guy in walking dead!(워킹데드에 흑인은 하나 뿐이야!)" 동영상 공유 서비스 Vine의 드라마 워킹데드 패러디다. 물론 한 명의 흑인 배우만 등장하진 않았으나 워킹데드의 배우 인종 구성은 지속적인 비난을 받았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도시 애틀랜타 인구의 약 55%가 흑인이지만 드라마에서 그들의 비중은 너무도 작았다.
'미드'의 배우 인종 구성은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어왔다. 사람들은 실제보다 훨씬 적은 수의 소수인종이 등장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미국 내 흑인을 연구하는 Bunche Center의 Hollywood Diversity Report에 따르면 주연을 맡는 소수인종은 늘어나고 있지만 실제 인종 구성비율에는 못 미친다. 그나마도 특정 인종을 겨냥한 드라마 Madea's Big Happy Family 등의 런칭 덕이었다. 12-13년의 증가폭이 낮은 이유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맨 인 블랙 3, 장고와 같은 흑인 배우 주연 영화 개봉이 11-12년에 몰린 탓이다.
이 같은 양상도 힙합 레이블의 이야기를 다룬 Empire(FOX), 동양인 가족을 전면에 내세운 Fresh Off The Boat(ABC)의 흥행으로 완화되는 듯하다. 하지만 최근 헐리웃 내에선 인종에 상관없이 역할을 두고 배우들이 경쟁하기보단 특정 인종에 역할을 부여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필름 제작 과정에서의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인 셈이다. 美언론은 이를 잘못된 정책이라며 비판한다. 미봉책에 불과한 해법으로 갈등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공중파 TV의 소수인종 주연 드라마는 늘었지만 HBO∙Netflix 등이 제작한 드라마의 주류는 여전히 백인이다. 백인이 지상파 TV보다는 유료 케이블 TV, 스트리밍 서비스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 워킹데드도 유료 케이블 TV인 AMC가 제작했다. 공중파 TV가 '미디어의 역할'보단 시청률 확보를 위해 다양성을 앞세운 드라마 제작에 힘썼다는 추측이 가능한 이유다.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가톨릭 신자가 대다수인 히스패닉의 폭발적 성장을 바탕으로 소수인종은 'Minority'의 꼬리표를 떼는 중이다. 2050년이면 그들은 미국 인구의 절반을 넘어선다. 유색인종의 표심을 잡지 못해 대선에서 연달아 패했던 美공화당이 히스패닉, 흑인 후보를 등장시킨 것도 이 같은 사회적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대중적이어야 할 매스 미디어의 변화'의지'는 더딘 편이다.
얼마 전 연극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Harry Poter and Cursed Child)'에서 흑인 여배우가 헤르미온느를 연기한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사람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단순히 '영화 속 헤르미온느가 엠마왓슨이라 그렇다'는 주장으로 일반화하기엔 비난 발언의 수위가 너무도 셌다. 원작의 헤르미온느는 '갈색 눈에 곱슬머리를 가진 영리한 소녀'로 묘사된 게 전부였다.
여전히 우리가 떠올리는 외국인은 파란 눈의 백인이다. 고정관념의 힘은 세다. 그래서 그들과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우리에게도 주인공은 백인이 맡는 게 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상이 현실이 되는 TV에서마저 인종이나 성에 따라 역할이 고착되는 건 슬픈 일이다. 흑인 헤르미온느와 함께 여자 제다이가 등장했듯,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