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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수 Apr 04. 2016

'#글스타그램'의 역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봄이 오니 인스타그램이 난리다. 피드에는 벚꽃 사진이 만개한데다 커플들의 셀카가 가득하다. 덩달아 '#감성 글귀', '#글스타그램'의 해쉬태그도 늘었다. 4월 3일 현재 #글스타그램의 게시물 숫자는 90만 개를 넘어선다. 이를 꼬리표로 단 사진들은 대개 압운(rhyme)을 맞춘 한 두 문장으로 이뤄진다. 내용은 특이하지 않다. 연애 중인 20대의 말랑말랑한 감정을 드러내거나 이별의 슬픔을 말한다. 인간관계에 관한 모순된 고민도 눈에 띈다. '혼자 있는 게 좋은데 혼자 있는 게 싫다.' 따위의 글들이 그렇다.


#글스타그램은 싸이월드의 종말과 함께 사라졌던 온라인 속 자기표현의 재개다. '오글거림'의 성행으로 기를 못 펴던 감성의 부활이기도 하다. 짧은 시간 동안 문화를 소비하는 '스낵 컬처(Snack Culture)'의 영향이 미쳤을 수도 있다. 카드 뉴스와 15초 동영상에 익숙해진 지금의 세대에게 #글스타그램은 최적화된 감성충전 창구일 테다. 하지만 #글스타그램을 훑는 내 엄지손가락엔 힘이 없다. "레게 잘해, 날 설레게 하니까"는 도대체 뭘 말하는 걸까. "기분이 저기압일 땐 반드시 고기 앞으로 가라."는 재밌기라도 하다만 검색 결과를 가득 채운 문장들은 그저 데이터 낭비로만 느껴진다. 그런데도 업데이트는 줄어들 기미를 안 보인다. 어쩌면 #글스타그램은 사람들의 셀카와 카페 사진으로 점철된 SNS 환경에서 차별성을 갖기 위한 방편이 아닐까.


'네가 좋아요를 누른다면 나도 누르겠다.' SNS의 기본은 호혜성이다. 이를 충족하려 사람들은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겼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팔로잉은 적은 반면 팔로워가 넘쳐나는 인기인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예전엔 잘생기고 예쁜 사람만 그 범주에 들 수 있었으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그 판도를 바꿨다. 콘텐츠를 갖추면 누구나 인기스타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SNS의 사람들은 남들과 달라지려 노력했다. 옷 잘 입는 사람들은 #데일리룩, #ootd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인스타그램의 피드(한 화면에 총 16장의 사진이 노출)를 예쁘게 꾸미는 것으로 활로를 찾았다. #글스타그램도 그렇게 시작했을 테다. 물론 정말 '좋은 글귀'를 나누려는 사람들도 있겠다. 그러나 분명한 건, 검색 결과를 뒤덮는 문장들이 그 의도를 가려버린단 거다.


더군다나 팔로워 늘리기 목적의 SNS 이용은 본래 목적인 자기표현을 어렵게 한다. 유명세를 얻으려는 이용자는 전략적으로 제한된 자기표현만을 반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팔로워가 원하는 콘텐츠만을 업데이트하는 행위는 곧 주체성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실의 '나'가 온라인의 '나'로 대치되어 버린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유명인의 타이틀을 얻는다면 누구보다 높은 자존감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먼 나라 얘기다. 하루에도 수천 개씩 업데이트되는 두 문장의 글 중에서 주목을 얻기란 어렵다. 콘텐츠 생산에도 불구하고 좋아요와 댓글을 비롯한 피드백이 줄어들면 당사자는 점차 자기 노출을 줄이게 된다. 결국에는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려 하는 소극적 이용자가 될 뿐이다. 본전 찾기도 힘든 셈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읽었던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빈둥대던 군 시절 할 게 없어 집은 책이었지만 깊은 울림을 줬다. #글스타그램처럼 금세 휘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질도 훨씬 좋았다. 부족한 감성은 책에서 찾는 편이 낫다고 확신하는 이유다. SNS는 감성을 채워주지 못한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을 쓴 헤밍웨이 같은 작가도 없다. 그 속에서 넘쳐나는 글들은 딱딱 들어맞는 압운으로 한국어의 재미를 키울 따름이다. 그러니 책을 읽는 게 낫다. #글스타그램 유명인의 글을 엮어 낸 것들은 제외다. 이미 구입했다면 래퍼를 꿈꾸는 친구에게 선물해주자. 라임 북으로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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