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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수 Mar 27. 2016

다음 생엔 천재가 되길

공략집 없이도 문제를 척척 풀거라

난 끈기 있는 편이 아니다. 지금껏 쉬이 포기하는 삶을 살았다. 다행히 별 문제는 없었다. 말을 곧잘 하는 터라 진심이 섞인 듯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으면 혼나는 상황은 모면할 수 있었다. 과외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다하지 못할 땐 답지를 베껴 썼다. 시간이 남으면 깊은 고민을 한 척 의미 없는 숫자와 수학 기호를 종이 이곳저곳에 채워 넣었다. 게임을 할 때도 성격이 드러났다. 레벨 올리는 게 힘에 부치면 인터넷에서 공략집을 다운로드 받았다. '알아가는 재미'는 중요치 않았다. 대장을 빨리 만나는 게 더 중요했다.


현실에서도 공략집 비슷한 게 존재했다. 아빠의 조언, 인터넷의 글, 저명인사의 성공담 같은 것들이 그랬다. 내 주관을 신뢰하긴 어려웠다. 서울에 떨어져 혼자 헤쳐가야 하는 학생의 자존감은 너무도 작았다. 내 결정이 옳다고 여길 경험이 전무한 탓도 있었다.  그러니 유경험자의 말을 듣는 게 더 안전할 것만 같았다. 언제나 묻고 또 물었다. '이건 괜찮을까요.' '제가 이걸 한다고 사람들이 알아줄까요.' 사회적 성공을 최고로 여기는 세상의 분위기도 이런 내 생각에 한몫을 했을 테다.


물론 마음을 고쳐먹을 때도 있었다. 한창 힐링이 화두였을 땐 너도나도 TV에 나와 자주적인 삶을 살라고 가르쳤다. 사람은 달랐지만 전하는 말은 비슷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후회가 적으니 젊음을 즐겨라. 그러나 며칠만 지나면 그들의 얘기는 힘을 잃었다. '헬조선' 담론이 스멀스멀 등장하던 때였다. 사람이 수저로 나눠지니 힐링 타령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대외활동을 하고 스펙을 쌓아야 했다.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선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거나 음악을 하는 친구들의 소식이 띄엄띄엄 들려왔지만 딴 세상 얘기였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불투명해 보이는 그들의 미래였다.


고등학교 재학 중엔 대학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다. 친구들은 대학 서열을 주기도문 외우듯 읊었다. 선생님과 주변 사람들은 대학의 중요성을 말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한다면 평생을 패배자로 살게 될 듯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스물셋을 넘어가니 대학 이름표가 그 사람의 능력까지 보장해주진 않는다는 걸 알았다. 천재를 상대하지 않는 이상 노력하면 얼추 경쟁할 수 있었다. 스물여섯이 된 지금은 대학을 하나님처럼 여겼던 그때의 내가 우습게 느껴진다. 어찌 됐든 대학의 의미를 바로잡기 까진 6년이 걸린 셈이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 지금 내 하루를 뒤덮는 생각도 그렇길 바란다. 분명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후회는 클 테다. 스펙이 개인을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도 없다. 그러나 여전히 절대다수는 그 기준을 충족하려 애쓴다. 그들이 원하는 삶이 나의 그것과 달라도 어쩔 수 없다. 공략집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 되라고 역설한다. 나는 선구자가 아닐뿐더러 그만한 깜냥도 없기에 이 흐름에 역행할 자신이 없다. 그러니 기를 쓰고 불평할 뿐이다. 지금은 학생이라는 신분이 '취준'의 무게를 덜어주지만 곧 이마저도 사라진다. 그럼 그때의, 졸업한 나는 지금보다 여유로울까. 아니라면 신경질적으로 변해 사회를 탓할까. 다른 건 몰라도 하나는 간절하다. 대학의 의미를 깨닫는데 걸린 시간보단 적길 바란다. 6년은 너무 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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