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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수 Apr 20. 2016

아빠와 엄마, 병렬적 구성

60년대생이 살기에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오랜만에 마주한 아빠는 늙어있었다. 머리가 허옇게 셌고 어깨도 조금 움츠러들었다. 슈퍼맨 같던 아빠의 모습은 아들이 나이 들수록 사라진다고 하더만, 그래도 심했다. 얼굴엔 주름이 너무 깊게 패였다. 커피 한잔 하러 간 카페에서 나눈 얘기는 생각보다 길었다. 대학생활과 정치를 거쳐 20년 전의 학예회 날 포청천 춤추는 내 모습을 본 아빠가 "만세!"를 외쳤던 때까지 닿아있었다. 그동안 테이블 위에는 커피 컵 네 개가 겹쳐 쌓였다.


카페를 나와선 송정역의 철길을 걸었다. 문득 아빠 사진을 찍고 싶어서 햇살이 너무 좋다는 핑계를 댔다. 아빠는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곤 어색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찍은 아빠 사진이었다. 희한하게도 우리 집엔 가족사진이 없다. 아주 어릴 적의 사진이 몇 장 있긴 하지만 '가족사진'이라기엔 다들 지금과 많이 달라서 영 느낌이 오질 않았다. 송정역의 그 날부터 이래저래 아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같이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볼 때 언제고 상관없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잘 나오든 못 나오든 상관없었다. 지금까진 하나도 없었으니 그냥, 아빠 얼굴을 남기는 걸로 충분했다.


엄마는 그대로였다. 여전히 예뻤고 젊은 사람들과도 잘 어울렸다. 다행히 머리가 세지도 않았다. 스마트폰도 곧잘 쓰는 터라 멜론 계정을 공유해 같이 이용했다. 다른 이들에 비해 젊어 보이는 엄마를 둔 건 알게 모르게 뿌듯한 일이었다. 생각 없이 내 앨범을 보던 친구들이 "네 엄마셔?"라고 물을 땐 참 기분이 좋았다. 그럼 엄마의 '젊음'을 자랑하듯 얘기했다.


엄마 고향은 충청도가 아닌걸


얼마 전 노래를 듣고 있을 때였다. 플레이리스트를 몽땅 지워버려서 기록을 바탕으로 노래를 추천해주는 멜론 라디오를 쓰고 있었는데 심수봉의 미워요가 흘러나왔다. 최근 3일간 들었던 '그때 그 사람' 스타일의 곡이란다. 새로 블루투스 스피커를 장만한 덕에 노래 듣는 시간이 부쩍 늘어난 엄마의 기록이었다. 엄마는 조영남의 점이를 좋아했다. 자니 리의 뜨거운 안녕도 곧잘 듣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엄마가 젊은 게 아니었다. 같이 탄 차에선 언제나 내가 노래를 틀기에 몰랐을 뿐이다. 엄지가 아니라 집게손가락으로 화면을 꾹꾹 누르는 엄마를 보곤 피식- 웃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블루투스 스피커 사용법을 알려줄 땐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게 짜증 났다. 엄마는 흐름을 애써 따라갈 뿐이었다. 억지로 젊어지길 바랐던 건 나였다. 엄마도 이런 거 알아두는 게 좋지 않냐는 식으로. 부모님의 간섭엔 몸부림치던 내가 오히려 부모님을 간섭한 셈이다. 


가족 얘기가 나오면 우스갯소리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머리가 클수록 가족은 띄엄띄엄 봐야 한다.' 난 점점 가족을 우선순위에서 밀어 두기만 한다. 가족과 떨어진 지 6년이 지나니 더 그렇다. 쉬는 날이면 으레 향하던 부산행 KTX를 탄 지도 꽤 오래가 지났고 아빠와의 전화는 그보다 더 뜸해졌다. '각자의 삶이 있지 않나.' '자주 보지 않아서 그런 거니 괜찮다.'라는 말은 나를 위한 무기에 불과하다. 가족을 미뤄둔 그새 아빠는 이미 늙어버렸다. 외면하려 했지만 엄마도 그렇게 늙어가는 중이다. 그걸 막으려던 시도는 내 욕심에 그쳤다. 내가 원하는 엄마와 아빠를 만드려던 탓이다. 집게손가락 대신 엄지를 쓰라고 엄마를 닦달하거나 아빠의 흰머리를 트집 잡는 건 아무래도 자식 몫은 아니다. 이제는 내 자리에서 그들을 응원할 방법을 찾는 게 낫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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