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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수 Dec 06. 2015

맑은 날의 민중총궐기

복면 써도 안 잡아가서 다행입니다

서해안 어민들은 국경을 넘나드는 중국어선의 무분별한 조업으로 골머리를 썩는다. 이들은 바닥까지 긁는 저인망 그물을 이용해 조그만 치어까지 잡아들여 생태계를 위협한다. 어선이 지나간 바다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한국의 처지도 비슷하다. 복면 쓴 참가자 모두를 원천 금지하는 복면금지법은 시민 모두를 불안에 떨게 한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우리나라 국민의 정치참여는 늘어났다. 시민단체 가입은 물론,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을 통한 의견 개진도 활발했다. 때로는 집회와 시위로 사회적 요구를 드러내기도 했다. 수능을 거부하는 학생, 퇴역 군인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흐름은 역행했다. G20 홍보 포스터에 쥐그림을 덧칠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대통령을 풍자하는 만평을 그리는 화백은 고소당했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위협을 피할 목적으로 표현을 스스로 억제하는 ‘자기검열’을 키워갔다. 공안정국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사회에서 시민의 정치참여는 어느새 ‘불온’ 한 것이 되어버렸다. 광장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점차 줄어갔다.


그럼에도 권력의 부당함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복면을 쓰고 집회에 참여했다. 정치참여와 자기검열이라는 딜레마에서 짜낸 고육지책이었다. 경찰의 무분별한 채증을 비롯, 고소∙고발 남발 탓도 있었다. 경찰은 복면시위의 익명성이 폭력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난해 10,504건의 시위 중 폭력시위는 0.3%(35건)에 불과했고 이 중 대다수는 대중의 폭력을 선동하는 전문 시위꾼에 의해 발생한 것이었다. 복면시위 자체를 폭력시위로 치환하는 경찰의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MBC 뉴스데스크 캡쳐


'익명성에 기댄다'는 비난을 받는 쪽은 경찰이다. 2013년 UN인권위원회는 시위에서 경찰의 신분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계급이나 이름을 나타내는 명찰을 감추거나 뗀 채 시위를 진압할 경우 폭력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므로 오히려 이들이 위법적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당시 경찰청장은 UN인권위의 권고에 “모든 경찰복에 명찰을 달겠다.”고 답변했으나, 곧 “경찰 개개인의 인권도 생각해야 한다.”며 말을 바꿨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인권은 차등 적용되지 않는다.


옛날엔 없는데서 나랏님을 욕해야 했다. 공공장소에서의 반대의견은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고 억압의 대상이었다. 이제는 있는데서도 욕할 수 있어야 한다. 여야가 지겨우리만치 주창하는 소통은 국민의 의견을 가감 없이 듣는데서 나온다. 더군다나 차벽과 물대포가 없는 2차 민중총궐기에서 시민은 복면이 폭력의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무조건적인 강제와 억압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복면금지법은 더더욱 불통의 산물로 느껴진다. 시위대의 목소리도 듣지 않은 채 그들 얼굴의 복면을 벗기는 것만으로는 국민의 공감을 살 수 없다. 1∙2차 민중총궐기로 인한 사회의 혼란과 많은 이의 반발을 불러온 복면금지법에서 자성을 해야 할 쪽은 오히려 정치권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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