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이직 끝에 내게 맞는 옷을 입었다
오랜 시간을 돌아 내게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여전히 매일이 새롭고 어렵고 배울 것이 투성이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성장하는 '그' 느낌이 재밌다. 잘하고 싶어지고 잘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진다. 퇴근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샤워하면서도 잠들기 전까지도 머리가 바쁘게 돌아간다. 스위치를 온전히 꺼도 되는 주말에도. 근데 재밌다.
흔히들 말하는 '평생직장'으로도 볼 수 있었던, 노후가 보장되고, 안정적이고, 워라밸 좋고, 편안한 조직 분위기에, 실눈 뜨고도 할 수 있던 일을 했던 그때 나는 그 일이 내 일 같지 않았다. 하루에 8시간,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해가 지날수록 '시간을 버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배낭 하나 들고 전국 무전여행을 하는 것이 내 인생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 일을 계속해서 서른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흔의 나를 찾아주는 곳이 있을까? 내게 직장이 아닌 직업이 있을까? 성격상 일을 대충 하는 편도 아니고 주어진 일과 더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지만 마음 한쪽이 이상하게 허전했다.
그러다 누군가 내게 건넨 "주체적으로 살았으면 좋겠어. 하고 싶은 거 하면서."라는 말에 안정적이었던 그곳을 그만두고 다시 불안정한 삶으로 돌아갔다. 취업준비생. 대학 입시를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던 고등학교 3학년처럼 인생의 출발점에 다시 서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말 그것을 하고 싶은지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 답은 한 곳을 향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매일매일매일 불안했다. 공중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매일매일매일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제야 이 일을 하려고 오랜 시간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신기하게도 그동안 해왔던 모든 일이 거름이 되고 있다. 울면서 버텼던 교사 시절도, 예술이라는 단어 근처 어디라도 가고 싶어 헤맸던 시절도, 매일 전화를 받으며 손이 덜덜 떨렸던 시절도, 힘들어하면서 없는 시간을 쪼개 배워두고 공부했던 그 모든 것이... 다 연결된다. 그때 포기하지 않길 정말 잘했다고 내게 말해주고 싶다. 앞으로도 그러겠지. 넘어지고 그래도 다시 일어나고 실패하고 실수하고 깨지고 무너질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이제는 안다. 내가 보낸 시간은 어디 도망가지 않는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