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 economist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용원 Mar 23. 2023

금융위기는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가

미국(실리콘밸리은행, 시그니처은행, 퍼스트리퍼블릭 등)과 유럽(크레디트스위스) 은행들의 위기로 인해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글로벌한 수준의 금융위기는 과연 일어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여러 숫자로 만들어진 각종 지표들이 여러 위험신호를 감지해 내는 것 같아도 정말 그런 지표들이 제대로 예언을 했다면 사태가 지금까지 오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 대한 분석 정도는 가능하다. 그리고 은행업, 금융업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덧붙여진다면 이후 진행 상황에 대해 예측은 못 하더라도 판단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가장 핫한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에 대해서 살펴보자.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은 거칠지만 심플하게 요약하면 예금을 맡긴 사람들의 인출 요청을 은행이 수용하지 못함에 따라 발생한 현상이다. 아니 은행에 돈을 맡겼는데 찾을 수가 없다니. 이것이야말로 은행이 망했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전 세계 어느 은행이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거의 모든 예금주가 은행에 맡긴 예금 전액을 인출하겠다고 동시에 행동했을 때 버틸 수 있는 은행은 사실 없다. 


흔히 ‘뱅크런’으로 칭해지는 동시 다발적인 예금 인출 현상은 예금주가 행동을 멈추지 않는 한(물론 은행을 폐쇄하지 않는 한이지만) 해결책이 없다. 그래서 어떤 은행에 ‘뱅크런‘이 일어나면 해당 은행의 예금은 전액 보장하므로 인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책적 조치들이 취해지는 것이다. 예금주의 행동을 중지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조치에도 예금주들이 예금을 인출하겠다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면 은행은 파산할 수밖에 없다. 은행업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두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은행은 기본적으로 예금을 받아서 대출을 해주고 해당 자금의 이자율 차이(대출이자율 - 예금이자율)인 예대마진으로 돈을 번다. 이 구조는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굉장히 위험한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어떤 은행에 1억이라는 돈을 1년 동안 5%의 이자율로 예금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은행은 해당 자금을 5%보다는 높은 이자율로 대출해 주는 형태로 운용할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예금을 맡긴 사람이 한 달 만에 찾아와 예금을 해지하겠다고 한다. 자 그러면 은행은 그 1억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대출을 해준 사람을 찾아가 미안하지만 대출은 없던 일로 해야겠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은행에게 예금은 부채다. 그것도 즉시적으로 상환 요구를 받을 수 있는 부채이다. 통상적으로 예금의 만기는 짧고 대출의 만기는 길다. 이것이 은행업의 가장 기본적인 리스크이다. 


그러나 그러한 리스크가 현실에서 발현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만기가 있는 정기예금 외에도 언제든지 예금주가 꺼내쓸 수 있는 요구불예금(급여통장이나 생활비통장으로 흔하게 사용하는)에 있는 자금은 보통 그 자리에 있다. 대부분이 자신의 주거래은행을 통해 금융거래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주로 사용하는 계좌를 한번 만들고 나면 잘 바꾸지 않는다. 그리고 어제 거액의 예금을 가입한 고객이 오늘 예금을 해지하는 것은 은행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있는 일이지만, 은행 전체적으로 볼 때 그 금액이 그리 크지 않다면 사실 별일 아닌 일이 된다. 누군가는 또 돈을 맡길 것이고 은행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방법에 예금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많은 예금주들이 ‘동시적’으로 예금을 인출할 때 발생한다. 이 명제는 앞서 언급한 ‘많은 사람들이 주거래은행이나 계좌를 잘 바꾸지 않는다’는 것과 모순적이다. 맞다. 그래서 뱅크런은 그렇게 흔하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핵심은 ‘잘’ 바꾸지 않지만 바꾸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날까? 한국을 기준으로 시중은행에 돈을 맡기는 사람의 대부분은 돈을 돌려받지 못할 걱정을 하지 않는다. 은행에 돈을 맡기는 사람들의 마음은 전 세계가 동일하다. 은행에 돈을 맡겼으니 확정된 이자율(좀 적게 느껴지더라도)로 돈을 돌려받게 될 것이라는 마음 말이다. 가령 증권사에 돈을 맡기고 운용을 부탁하면서 원금 보장을 기대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겠지만 은행에 예금을 하면서 손실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뱅크런 현상의 이유를 알 수 있다. 은행에 맡긴 예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손실이 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일반적인 것이라면, 예금주들은 자신의 예금을 즉시 인출하려고 할 것이다.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과 관련해 실리콘밸리은행의 자산 운용이 다른 은행과 달랐다는 사실이 부각되지만 사태의 핵심적인 본질은 실리콘밸리은행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된 것에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실리콘밸리은행의 자산 운용이 일반적인 은행과 달리 대출이 아닌 채권으로 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상승하면서 은행의 위험이 커진 셈이지만 그 부분이 본질적인 파산의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확히는 실리콘밸리은행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빠르게 퍼진 것이 뱅크런과 파산의 이유라고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상황은 완전하게 끝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실리콘밸리은행 파산과 관련해 예금을 전액 보장하고 뱅크런 실현 가능성이 있는 은행 등에 대해 사전적 사후적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왜냐 하면 뱅크런을 일으키는 핵심적인 이유인 '신뢰의 붕괴'가 한번 일어난 이상 다시 '신뢰'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련해 크레디트스위스의 사례도 비슷하다. 크레디트스위스의 경우 위험하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뱅크런과 같은 사태로 연결될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최대 주주인 사우디국립은행이 추가로 유동성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하자 위험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인 것이 되어버렸고, 결국 스위스 중앙은행의 압박(?)하에 UBS가 크레디트스위스를 인수하는 형태의 조치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한번 붕괴된 '신뢰'는 단기간에 회복되지 않는다. 특히 최근은 미 연준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리고 있었던 시기다. 실리콘밸리은행과 유사한 케이스가 또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고 빠른 금리 인상에 따른 리스크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은행에 대한 각종 지표는 위기를 예측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참고는 그저 참고일 뿐이다. 다음은 J.P.Morgan의 Michael Cembalest가 3월 10일 발표한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다(출처 : https://am.jpmorgan.com/content/dam/jpm-am-aem/global/en/insights/eye-on-the-market/silicon-valley-bank-failure-amv.pdf).


위의 데이터에 따르면 이미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SIVB)과 위기에 처해있는 퍼스트리퍼블릭(FRC)과 시그니처은행(SBNY)은 예금 대비 대출+유가증권의 비율이 높은 상황이고 특히 실리콘밸리은행(SIVB)과 시그니처은행(SBNY)은 전체 예금 중 소매 예금의 비율이 낮은 편에 속한다. 쉽게 말해 받은 돈(예금) 대비 자금 운용(대출+유가증권)이 많았고, 예금 중에서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 소매 예금의 비율이 낮은 실리콘밸리은행(SIVB)이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위기 상황인 퍼스트리퍼블릭(FRC)과 시그니처은행(SBNY)의 상황도 설명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동일한 논리라면 위의 데이터에서 유사한 위치에 있는 WAL(웨스턴얼라이언스)이나 CMA(코메리카) 또한 위험한 상황인 셈이다. 물론 이후에 해당 은행에 문제가 드러날 수 있지만 아직까지 그러한 조짐은 없다. 중요한 것은 지표만으로 상황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표는 판단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참고자료일 뿐이다.


이는 크레디트스위스 사례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크레디트스위스 위기가 불거졌을 당시 기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활용해 보겠다.


크레디스위스는 다행히 현재로서는 건전성이 양호하며, 단기간에 파산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 은행의 유동성 상황을 나타내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지난해 말 144%에서 지난 14일 150%로 오히려 개선된 상황이다. 바젤3 규제가 요구하는 100%를 크게 웃돈다. 보통주자본비율(CET1)도 지난해 말 14.1%로 규제 기준(4.5%)를 넉넉하게 상회한다. 스위스 중앙은행이 “크레디트 스위스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에 부과되는 자본·유동성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강조한 이유다.

출처 : 2023.3.16., 한겨레, '세계 17위' 대형은행 CS도 위태...유럽으로 퍼진 파산 공포(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83966.html)


지표는 '신뢰'가 붕괴되는 상황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그리고 많은 경우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야 어떠한 문제가 있었다는 사후적인 지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신뢰'가 붕괴되는 상황은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는 '신뢰'가 붕괴되는 그리고 그러한 붕괴가 전 세계적 차원의 금융위기로 연결되는 상황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규모 있는 은행의 위기와 원만한(?) 해결의 실패이고 두 번째는 작은 규모의 은행들이 연쇄적으로 위기를 맞이하는 가운데 금융위기가 발생해 금융기관이나 시장에 유동성이 부족해지면 발권력을 동원해 위기를 예방하고 확산을 차단하는 '최종 대부자'인 중앙은행이 '최종 대부자'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두 번째와 같은 상황은 현재로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으로 빚어진 위기 사태에서 미 연준과 재무부는 해당 은행의 예금을 전액 보장하고 관련해 유동성에 위기를 맞은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관련된 조치들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뱅크런의 특성상 한번 위기가 발생하면 유사하다고 인식되는 은행들에 뱅크런이 전염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마 미국 당국은 한동안은 거의 모든 예금을 보장하는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와 관련해서는 이미 스위스 중앙은행이 UBS로 하여금 크레디트스위스를 인수하도록 함으로써 급한 상황은 넘겼다고 보아야 한다(참고로 UBS와 크레디트스위스는 스위스 1,2위 은행이다). 물론 벌써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인수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은 계속해서 위기의 불씨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규모 있는 은행의 경우 뱅크런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고 크레디트스위스와 같이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지난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했을 경우 반드시 원만하게 해결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원만한 해결은 최종 결과뿐만 아니라 진행 과정 또한 매우 중요한데 해결 시기나 방법은 결과만큼이나 중요하다.  


결국 규모가 어느 정도 큰 은행에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세계적인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규모가 큰 은행은 어느 정도의 은행일까? 미국 은행을 자산(2022년 12월 31일 연결 기준)을 기준으로 순위를 냈을 때 2천억 달러 이상 은행은 다음과 같다(출처 : https://www.federalreserve.gov/releases/lbr/current/default.htm 자료를 필자가 가공).


출처 : Federal Reserve Statistical Release(Large Commercial Banks)


이번에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이 16위이고 문제가 있는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이 14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만 봐서는 사실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그러면 상위 은행들의 자산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필자가 가공한 자료를 통해 살펴보자.


위의 미국 상업은행 자료는 자산 3억 달러 이상 은행들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아래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3억 달러 이상 미 상업은행의 자산을 100으로 보았을 때 2천억 달러 이상 미국 상업은행의 자산은 65.5에 해당한다. 대상을 좀 더 좁혀 상위 10개 상업은행을 대상으로 했을 때 이들의 자산은 55.8에 해당한다. 이는 미국 상업은행 자산의 상당수가 2천억 달러 이상 특히 상위 10개 은행에 집중해 있음을 의미한다.


출처 : Federal Reserve Statistical Release(Large Commercial Banks)를 필자가 가공

규모 있는 은행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객관화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자의적인 기준을 만들라면 필자는 미국 기준 자산 상위 10개 은행이라면 규모 있는 은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은 상위 10개 은행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이는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아직 어떠한 지뢰가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정확히는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부채를 기반으로 높아진 자산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 발생하는 금융위기 현상은 본격화되지 않은 느낌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좋을 때는 모든 것이 좋게 평가되고 나쁠 때는 모든 것이 나쁘게 평가되는 금융시장에서 지금은 '나쁠 때'에 가까워 보인다는 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테이퍼링은 주가를 어떻게 움직이게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