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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ph Mar 07. 2022

한국 생활 어떠냐는 말


우린 왜 딱 떨어지는 숫자 같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할까? 298이나 300이나 결국 숫자일 뿐인데. 한국살이 시작한 지 300일이 된 날이었다. 귀국 후 아직도 얼굴 못 본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니 ‘한국 생활 어때?’ 혹은 ‘왜 한국에 왔어?’라는 질문은 시간차를 두고 계속 대화의 주제로 남아있을 것 같다. 적어도 당분간은.



이제 질문을 받으면 완벽한 기승전결을 가진 스토리를 들려줄 수 있는 단계까지 왔지만 나는 준비된 듯한 인상을 주는 말하기를 경계하려고 애쓴다. 술 한잔 하며 푸는 오래전 막장 연애 썰이라면 모를까, 내게 여전히 너무나 중요한 현재 진행형 질문들에 대해 내가 오늘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지난달과 다를 게 없다면 그건 내겐 빨간불 신호다. 정체된 이야기는 고민이 멈췄다는 뜻이고, 정혜윤을 또 인용하자면 나는 내가 살리고 전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그 자체이기 때문에.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같은 질문을 받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건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아직 영국에 발 한쪽을 걸치고 한국이란 문턱을 완전히 넘지 않은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대화는 일종의 등가교환이니 처음 혹은 오랜만에 만난 사이라면 ‘영국’이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인 것도 분명한 사실이고 나는 그 편리성을 조금은 즐겼다.



오늘 문득 생각했다. ‘한국 생활은 어때’는 언제쯤 새삼스러워질까. 3년? 5년? 그 질문이 너무 새삼스러워 내게서 ‘영국’이 깨끗이 씻겨져 나갔을 때 ‘나’라는 이야기엔 무엇이 남아있을까. 그 이야기는 여전히 재미가 있을까? 시간이 얼마나 남지 않은 것 같아서 조바심에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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